금융당국이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칼을 빼 들었다. 김 전 회장의 미술품 구입 및 특별 퇴직금과 고문료를 점검하고 있다. 지난 17일 징계 때 문제로 삼지 않았던 부분이다. 금융업계는 이를 놓고 금융감독원과 김 전 회장이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의중도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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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전 회장 |
금융감독원은 최근 하나캐피탈과 하나금융지주를 제재하면서 김 전 회장의 미술품 구매 문제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금융권 관계자들이 30일 전했다. 하나금융지주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거액의 특별 퇴직금과 고문료를 받은 것도 점검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은 김 전 회장 임기 때 하나은행이 미술품을 지나치게 많이 사들였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4천여 점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미술품 거래에 임직원 출신 관계자가 있는 회사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전 회장이 2012년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특별 퇴직금 35억 원을 받은 것도 도마에 올랐다. 하나금융지주에 최고경영자가 물러날 때 퇴직금을 받는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회장 퇴임 후 2년 계약직 고문을 맡으면서 고문료 5억 원을 받은 것도 금융감독원의 주의를 끌고 있다. 다른 대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는 퇴직 후 6개월~1년간 고문 대우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를 놓고 “하나캐피탈 사건으로 김 전 회장에 관련된 징계가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미술품 구매 등 각종 의혹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며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금융감독원은 왜 김승유를 다시 노리나
금융감독원의 이번 조사는 이미 한 번 결론을 낸 문제에 다시 불을 붙인 격이다. 김 전 회장이 미래저축은행 부당자금 지원 문제로 지난 17일 경징계를 받았을 때도 미술품 구매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2011년 퇴출 직전이던 미래저축은행을 유상증자로 지원하도록 김종준 당시 하나캐피탈 사장(현 하나은행장)에게 지시한 혐의로 지난 17일 ‘주의적 경고(상당)’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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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준 하나은행장 |
당시 금융감독원은 김 전 회장이 미술품을 사들인 것과 징계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김 전 회장의 미술품 구매 의혹은)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약 2주가 지난 현재 금융감독원의 입장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미술품 구입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줄곧 확인했다”며 “현재 제재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태도가 달라진 이유를 놓고 금융감독원은 해석의 차이라고 일축했다. 한 관계자는 “당시 큰 틀에서 봤을 때 우리가 의심했던 상황은 아니었다는 뉘앙스로 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금융감독원이 김 전 회장과 기싸움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지시로 미래저축은행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중징계를 받은 김 행장이 관례를 깨고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이 공개적으로 금융감독원에 불만을 토하며 김 행장의 ‘지원사격’에 나선 것에 따른 조치라는 해석이다.
금융감독원은 김 전 회장에게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대신 김 행장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상당)’를 내렸다. 업계는 김 행장이 곧 퇴임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반적으로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행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행장은 징계 직후인 지난 20일 경영 공백을 이유로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3월까지 물러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시기에 김 전 회장이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는 “금융감독원이 한 사안에 관해 여러 번 검사할 정도로 한가한 조직인가”라며 “지금껏 그렇게 한 예를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게 내린 징계는 어차피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놔뒀다”며 “행장까지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감독원은 김 전 회장의 말에 대해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발언을 놓고 “(그가) 행장 임기를 놓고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자숙하지 않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금융감독원이 하나금융에 김 전 회장 색깔 지우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당분간 금융감독원은 사실상 아직 하나금융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의 힘을 빼려고 할 것”이라며 “김 행장의 버티기를 지원하면서 여전히 힘을 쓰려는 김 전 회장과 기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금감원-김승유 다툼에 김정태 ‘어부지리’ 노리나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거취를 놓고 금융감독원과 김승유 전 회장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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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
김 회장은 공식적으로 김 행장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는 쪽에 힘을 실어줬다. 하나은행은 은행장 자리가 빌 경우 경영 공백이 생기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라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이런 결정은 대내외 어려운 금융환경 아래 자칫 경영 공백이 조직의 피해로 직결될 수 있다는 내부의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회장이 금융감독원의 손을 빌어 김 전 회장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 회장은 이번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보면서 하나금융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할 시간을 벌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전 회장은 2012년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에서 ‘왕회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다. 김 전 회장이 이런 힘을 발휘하는 중심에 김 행장이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김 행장은 김 전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최측근 인사다. 그를 통해 김 전 회장이 하나금융지주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회장은 최근 들어 하나금융에 김 전 회장의 영향력 줄이기를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다. 김 회장은 김 전 회장의 다른 측근인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을 경질했다. 또 김 전 회장 관련 인사들로 채워졌던 주요 계열사 사장도 물갈이했다. 때마침 김 전 회장이 고문에서 물러나는 시기와 맞아 떨어진 인사였다.
김 회장으로서 금융감독원이 김 전 회장과 김 행장을 압박하는 상황이 불리하지만은 않은 셈이다. 이번 기회에 김 전 회장의 하나금융 영향력이 더욱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회장이 마냥 기다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사안 때문에 금융감독원과 하나금융의 갈등이 깊어지면 김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카드 합병이나 나아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합병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회장이 적절한 순간에 김 행장을 주저앉히는 등의 조치를 통해 금융당국과 화해를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