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업무별로 급여를 다르게 주는 직무급제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노동단체의 반발 등을 고려하면 직무급제의 확산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2019년 11월27일 서울시청 옆 무교로에서 열린 '서울지역공무직지부 전조합원 임·단협 교육'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직무급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공기관 급여체계를 기존의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바꾸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공공기관 상당수는 같은 근속연수이면 같은 급여를 지급하는 호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호봉제는 성과 반영률이 낮고 인건비 부담도 크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근속연수 기준으로 급여를 결정하는 만큼 정규직에게 유리하고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불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직무급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직무급제는 근속연수나 직급과 관계없이 업무 책임과 강도, 난이도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주는 제도를 말한다. 호봉제보다 성과를 반영하기 쉬운 체계다.
공공기관 가운데에서는 석유관리원이 2019년 6월 직무급제를 처음 도입했다. 그 뒤 새만금개발공사, 산림복지진흥원, 재정정보원이 뒤따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도 2020년 초에 직무급제 도입을 결정했다. 직원 수 1천 명 이상인 대형 공공기관 가운데에서는 처음이다.
그밖에 공공기관 10여 곳이 현재 직무급제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공공기관 수는 2019년 기준 339곳이다. 이를 고려하면 직무급제를 선택하거나 검토하고 있는 기관의 수는 아직 적은 편이다.
다만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에 힘을 싣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도입폭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한 토론회에서 “연공서열대로 급여가 단순하게 올라가는 구조는 맞지 않는다”며 “향후 새로운 직무급제 도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는 직무급제와 관련된 연구용역과 정부 토론회 등이 진행돼 왔다. 2019년 11월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도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이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2020년 경영평가에 가점을 주기로 했다.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도 직무급제 선도기관에 주는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가 민간기업에도 직무급제를 장려하고 있기 때문에 모범적 사례로 공공기관의 직무급제 도입에 더욱 힘쓸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제도 개편에서 시험대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지금도 공공기관 40여 곳에서 직무급제 도입에 필요한 직무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대형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이 소속된 노동단체들은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노동단체들은 업무의 강도와 난이도를 평가하는 기준을 확실하게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꼽고 있다. 직무급제가 자칫 임금 삭감의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은 14일 성명서에서 “경제사회노동위 공공기관위원회가 출범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았다”며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일방적으로 추진할 뜻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