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둘러싸고 지역 내 갈등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삼성SDI 투자유치를 명분으로 이 부회장의 선처를 요구하는 쪽과 이에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가 엇갈린다.
삼성SDI는 정작 투자를 검토한 적이 없는데 총수의 예민한 사안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군산에서 삼성SDI 생산라인을 유치하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국정농단에 연루돼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는데 선처 여부를 놓고 군산에서 찬반 여론이 비등하다.
먼저 움직임을 보인 곳은 군산상공회의소(군산상의)다. 이들은 20일까지 이 부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모아 재판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군산상의는 탄원서에서 “전기차 클러스터 완성을 이루기 위해 국내산 전기차 배터리기업인 삼성SDI의 군산 유치가 절실하다”며 “이 부회장이 전북에 삼성SDI 생산라인을 건설해 군산과 전북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9일 군산상의가 연 서명운동 설명회에는 전라북도와 군산시 관계자들도 참석해 삼성SDI 투자유치의 필요성 등을 공유했다.
군산시는 현대중공업 조선소 가동중단, 한국GM 군산 공장 폐쇄 등으로 지역경제에 잇따라 된서리를 맞았다. 이에 새만금에 조성되는 재생에너지·모빌리티·전기차 클러스터에 전기차 배터리업체인 삼성SDI를 유치해 이를 만회하겠다는 구상이 나온다.
그러나 탄원 서명운동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군산경제와
이재용 부회장 재판은 관련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전북안전사회환경모임,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민주노총군산시지부, 군산농민회, 군산녹색당, 정의당군산당원협의회 등 군산지역 11개 단체와 정당들은 12일 서명운동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해 범범행위를 저질러 수많은 기업이 피해를 보고 국민 세금이 증발했다”며 “이런 재판에 영향을 주기 위해 군산경제 살리기를 끼워넣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군산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첨예한 대립이 벌어졌지만 정작 군산지역의 생산시설 유치 의사는 삼성SDI의 기업전략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지역의 자발적 유치활동에 삼성SDI가 난색을 내비치는 이유다.
삼성SDI는 현재 국내에서 새로운 생산거점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 않다. 기존 울산 공장과 천안 공장에서 시장 변화에 따라 증설을 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삼성SDI는 최근 BMW와 10년 동안 3조8천억 원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유럽 생산기지인 헝가리 공장의 증설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내에서 공장을 신설하기에는 여력이 마땅치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군산지역이 삼성SDI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과거 삼성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이 나왔던 것과 관련이 있다.
삼성그룹은 2011년 국무총리실, 농림축산식품부, 지식경제부, 전라북도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새만금지역에 태양광, 풍력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 계획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1단계 사업에만 7조6천억 원, 2040년 3단계 사업까지 모두 합하면 20조 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신산업추진단을 해체하고 태양광사업에서도 손을 떼면서 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2016년 10월 박상진 당시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은 전북지역 국회의원과 간담회에서 새만금 투자의 철회를 공식화하면서 “대체 아이템을 약속할 수 없지만 다음에 큰 사업 기회가 있다면 최우선적으로 새만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태양광과 삼성중공업의 풍력 등의 사업은 정리했으나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만금에 삼성SDI를 유치하려는 시도가 지속해 온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일이 있기 전에도 군산지역에서 삼성SDI에 생산거점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회사의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