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화 전략을 통해 과거 저가 이미지를 털어내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탈출구로 보이지만 십년 넘게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를 단번에 바꾸기 쉽지 않은데다 이미 현대기아차에 맘을 돌린 중국 소비자들의 관심을 단기간에 다시 끌어오기에는 가야할 길이 험난해 보인다.
▲ 이병호 현대기아자동차 중국사업총괄 사장.
13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시장이 위축되면서 글로벌 완성차기업이 너나할 것 없이 고전하고 있지만 현대기아차의 시장 지위는 상대적으로 더 쪼그라들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에 따르면 1~8월 기준 중국 자동차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합산 시장 점유율은 4.4%에 그친다.
2014년만 하더라도 두 회사의 합산 시장점유율은 9%를 보였지만 5년 만에 점유율이 반토막났다.
같은 기간 시장 점유율이 절반 이상 줄어든 곳은 르노와 푸조시트로엥(PSA) 등 프랑스 브랜드 뿐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현대기아차가 마주한 현실은 엄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기아차는 이미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해결책 모색에 집중하고 있다. 5월 현지공장을 각각 1개씩 가동 중단하며 생산능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고정비 부담을 줄였다.
하지만 판매량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은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다. 현대기아차가 ‘중국 중장기 전략 태스크포스팀(TFT)’을 최근 출범한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태스크포스팀을 이끄는 이병호 사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 사장은 지난해 11월 실시된 현대차그룹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중국사업총괄을 맡았다.
기존에 중국사업 사령탑을 맡았던 설영흥 상근고문이 비상근고문으로 물러나는 상황에서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라 부담감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설 고문은 현대차그룹의 중국 진출 초기부터 20년 이상 현지시장 개척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7월 조직을 개편해 이 사장으로 하여금 부진의 탈출구를 찾는데 힘을 실어줬다.
현대차그룹은 기존에 중국사업총괄 아래 중국사업본부를 두고 본부 아래 다시 중국지주사와 현대기아차의 생산판매법인을 뒀는데 중국사업본부를 없애고 중국지주사 아래에 생산판매법인을 두는 방식으로 틀을 바꿨다.
이 사장은 중국사업총괄과 중국사업본부장, 지주사 총괄 등의 직책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본부의 해체로 자연스럽게 본부장 직함도 뗐다.
앞으로 이 사장이 주력해야 할 것은 중국사업을 정상화하겠다는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 내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앞길은 험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쉽게 결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올해 3월부터 중국형 신형 싼타페인 4세대 ‘셩다’를 팔고 있지만 첫 두 달만 5300대가량 팔았을뿐 이후에는 월별 판매량이 1천 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략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인 ix25의 신형 모델과 코나 전기차 등으로 라인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중국 현지기업들이 현대기아차의 강점이었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앞서는 상황이라 상황을 낙관하기 힘들다.
과거와 같이 라인업 강화라는 카드만 내밀어서는 여태껏 추구했던 ‘양적성장’의 길을 다시 밟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신용평가는 과거 중국시장을 놓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 사태 이후 현대기아차의 실적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지기업의 성장 등으로 신차효과가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가 결국 중국 현지기업보다 확실한 우위에 설 수 있는 상품 경쟁력을 갖추는 것부터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아우디만큼은 아니라도 일본 토요타와 같이 현지 브랜드보다 확실하게 상품성이 좋다는 이미지를 구축해야만 고급차와 현지기업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완성차업계는 바라본다.
현대차그룹이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중국 현지 진출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런 시장 흐름을 따라잡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정부의 친환경차 육성 움직임에 발맞춰 현지공장 일부를 친환경차 전용라인으로 탈바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앞으로 3년 안에 중국사업을 반등할 해법을 찾겠다는 목표를 제시해놓은 만큼 앞으로 이 사장의 행보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은 1956년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사업본부장과 중국영업사업부장, 베이징현대 총경리 등을 지낸 중국사업 전문가로 꼽힌다.
중국사업에 투입되기 전에는 현대차 글로벌커뮤니케이션실장, 해외마케팅실장, 연구개발지원사업부장 등 다양한 보직을 두루 거쳤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