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계열 보험사들이 보험업황 악화라는 ‘보릿고개’를 순조롭게 넘어가면서 앞으로 보험업계 구도의 재편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의 선두권 회사들이 상반기에 대부분 업황 악화 및 저금리 기조에 영향을 받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사 3곳의 상반기 순이익은 1조1819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1.3% 감소했다. < pixbay> |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사 3곳의 상반기 순이익은 1조1819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1.3% 감소했다.
이른바 ‘빅3’ 가운데 교보생명만 상반기에 순이익이 15.8% 늘었고 삼성생명(-47.7%)과 한화생명(-61.8%)은 순이익이 급감했다.
손해보험업계의 상위권 회사인 삼성화재(-36.0%)와 현대해상(-36.1%), DB손해보험(-31.1%)도 모두 상반기에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금융지주 소속 보험사들은 대부분 순이익 규모가 늘어나거나 순이익 감소율이 소폭에 그쳐 선방하면서 오래동안 각 업권의 ‘빅3’로 굳어진 판도를 깨뜨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의 생명보험 계열사인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는 상반기에 합산 순이익 1653억 원(지분율 감안)을 거둬 한화생명(934억 원)을 제치고 순이익 기준 3위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아직 자산규모 등 덩치에서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 자본 건전성 등은 이미 생명보험업계 ‘빅3’와 견줄만 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메리츠화재가 돌풍의 주역으로 꼽힌다.
최근 인보험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온 메리츠화재는 상반기에 국내 손해보험사 가운데 유일하게 순이익이 늘었다.
메리츠화재의 상반기 순이익 규모는 1587억 원으로 상반기에 실적이 크게 뒷걸음질한 삼성화재(4261억 원)와 DB손해보험(2063억 원), 현대해상(1639억)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들이 업황 악화 속에서도 실적을 선방한 이유는 확실한 영업망과 자본력을 갖춘 금융지주가 든든한 ‘뒷배’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퍼져있는 은행 및 증권사의 점포 등을 통한 영업망을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자본 건전성이 위험하더라도 금융지주의 자금지원 가능성도 매우 높다.
신용평가사들이 보험사를 대상으로 한 신용평가를 실시할 때도 상대적으로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에 우호적 등급을 매기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NH농협손해보험은 8월 농협금융지주로부터 16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지원받기로 했다.
금융지주라는 ‘뒷배’가 없는 다른 보험사들이 업황 악화 속에서 높은 금리를 지불하고 채권을 발행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미래 먹거리 확보에도 금융지주 소속 보험사들이 더욱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들은 보험시장 경쟁이 최근 치열해지면서 획일화된 기존 보험상품 및 서비스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수익을 거두기 어려워진 만큼 다양한 신사업 및 이종산업과 협업하는 경영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정보기술(IT)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이를 활용한 인슈어테크(IT+보험)가 새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는데 금융지주가 수년 동안 핀테크 역량 강화에 그룹 차원에서 공을 들여온 만큼 상대적으로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위가 금융지주의 핀테크 기업 지분투자 제한도 완화하면서 그룹 차원에서 핀테크기업을 인수해 보험 계열사의 인슈어테크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게 됐다.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보험사 인수합병 기회를 엿보고 있는 만큼 인수합병을 통한 업계 재편 과정에 금융지주 보험사들이 중심에 서게 될 가능성도 높다.
생명보험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KDB생명에 이어 안방보험이 동양생명·ABL생명을 매물로 내놓을 것으로 점쳐진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인수해 합병하면 자산규모 53조 원 규모의 대형 생명보험사 수준이 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