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래(63) 다우그룹 회장은 키움증권 회장이라는 직함이 더 익숙하다. 그만큼 김 회장의 금융인 변신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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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익래 다우그룹 회장 |
김 회장은 키움증권 회장이라는 금융인 이전에 국내 벤처업계의 살아있는 증인 가운데 한명이다. 국내 1호 벤처 큐닉스를 설립했다. 컴퓨터 벤처기업에 불과했던 다우기술을 23개 계열사가 포진한 다우그룹으로 키워냈다.
구멍가게 정도로 인식되던 벤처기업을 인터넷종합그룹으로 일군 힘이 금융인으로 변신을 또한번 성공하도록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 너무 솔직한 김익래, IBM을 박차고 나오다
김 회장은 말단 직장인 출신이다. 그는 한국외국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76년 한국IBM에 입사했다. 삼성과 현대 등 국내 대기업 도전에서 낙방했다. 하지만 한국IBM은 달랐다. 한국IBM은 그의 끼를 알아보고 면접장에서 바로 합격을 통보했다고 한다.
한국IBM은 당시 국내 대기업과 달리 기업가 정신을 높이 샀다고 한다. 김 회장과 잘 맞았던 셈이다. 그는 한국IBM에서 영업관리와 재무, 기획 등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김 회장의 한국IBM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2년8개월 만에 한국IBM을 박차고 나왔다. 너무 솔직한 탓이었다.
그는 홍콩 출장에서 극동지역본부 미국인 사장이 IBM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IBM이 건전하고 좋은 회사임에 틀림없지만 번 돈을 전부 본사로 가져가고 한국IBM이나 한국의 발전에 소홀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극동지역본부는 한국IBM으로 비밀 전문 하나를 내려 보냈다. 내용은 이랬다. “김익래는 IBM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다. 그의 동향을 살펴 정기적으로 보고하라.”
김 회장은 이 비밀 전문의 존재를 안 뒤 3개월 후 회사를 제 발로 나왔다. 그는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지만 1년 만에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또다시 직장을 잃게 된다.
◆ 국내 1호 벤처 ‘큐닉스’ 공동설립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김 회장도 그랬다. 두 번의 직장생활에서 실패를 맛 본 뒤 사업에 눈을 돌렸다. 국내 벤처회사 1호로 기록되는 큐닉스가 탄생한다.
그가 처음 시도한 사업은 반도체 칩 수입대행이었다. 이때 큐닉스 공동창업자인 이범천 한국과학기술원 박사와 이 박사의 스승 이용태 박사를 만나게 됐다.
세 사람은 큐닉스를 설립하면서 의기투합했다. 이용태 박사는 설립 자본금 1억 원 중 조금 더 많은 부분을 부담했고 이범천 박사는 교수직을 포기했다. 1981년 큐닉스가 설립됐고 김 회장과 이용태 박사, 이범천 박사가 큐닉스 지분을 각각 30%, 30%, 40%씩 보유했다.
큐닉스는 그 시절에 보기 드문 컴퓨터 관련 벤처회사였다. 당시 대세였던 애플 컴퓨터의 한글화와 함께 한글 프린터 모듈 개발에 착수했다. 이는 시장에서 히트를 쳤지만 큐닉스의 소프트웨어가 불법 복제되면서 쉽사리 성공가도에 오르지 못했다.
큐닉스에게 성공을 안겨다 준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당시 금성사는 미국 컴퓨터회사 TI가 개발한 컴퓨터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했다. 그런데 그 컴퓨터의 필수 소프트웨어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깔렸다. 김 회장은 금성사에게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국 대리점으로 큐닉스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금성사는 김 회장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다. 이제 국내 컴퓨터회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려면 큐닉스에 기술료를 지불해야 했다. 큐닉스는 마이크로소프트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했다.
◆ 동업 울타리 벗어나 다우기술 세워
1985년 이용태 박사가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무렵 남아있는 두 창업자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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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우기술은 1986년 설립된 컴퓨터 벤처회사로 현재 23개 계열사를 거느린 다우그룹의 모태가 됐다. |
이범천 박사는 큐닉스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 시장에도 진출해 컴퓨터를 제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고객사인 컴퓨터 회사들과 경쟁하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고 김 회장은 큐닉스를 떠났다. 김 회장이 큐닉스를 떠난 이유 중 하나는 혼자서 기업을 운영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김 회장은 1986년 화야산에 올랐다. 직원들과 함께 다우기술의 출범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김 회장은 화야산 정상에서 “다우기술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회사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앞으로 10년 후 기업 공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우기술은 사업영역을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정했다. 큐닉스와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당시 작은 회사가 승부를 볼 수 있는 분야가 소프트웨어 분야밖에 없다는 게 김 회장의 판단이었다. 김 회장 주머니 돈 2억 원에 한국종합기술금융에서 융자 받은 2억 원을 합쳐 자본금을 마련했다.
김 회장은 정몽헌 현대전자 사장을 찾아갔다. 큐닉스 시절 금성사를 대뜸 찾아갔던 이력이 있는 김 회장이었다.
당시 현대전자는 미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한국 대리점 운영회사였다. 대형 컴퓨터 운영체제인 유닉스(Unix) 판매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닉스는 한글버전이 출시되지 않아 사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었다. 현대전자는 6개월 안에 한글화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유닉스를 판매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정 사장을 찾아가 6개월 안에 유닉스 한글버전을 개발하겠다고 약속하고 4억8천만 원짜리 계약을 따내게 됐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돈 한푼 벌지 못했던 다우기술은 순식간에 흑자로 전환했다.
김 회장은 유닉스 한글화 프로젝트를 계기로 외국 유명 소프트웨어의 한글화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우기술은 유닉스에 이어 썬솔라리스와 인포믹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등의 한글화 작업도 진행했다.
김 회장은 한글화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외국 유명 소프트웨어회사를 대상으로 열심히 영업했다. 이 때문에 다우기술은 매출과 이익이 급증했지만, “기술개발보다 돈벌이에 급급한 회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 인터넷종합그룹, 다우그룹의 탄생
다우기술은 소프트웨어 한글화 작업의 성공에 힘입어 인터넷 솔루션, 전자상거래, 시스템통합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다우기술이 성공가도만 달린 것은 아니다. 1991년 한글VGA카드를 개발하면서 하드웨어 시장에도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1994년 비지오 오버레이 보드를 개발했지만 역시 결과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하드웨어 시장에서 실패는 다우기술이 소프트웨어 사업에만 전념하도록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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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4월29일 경기도 죽전 다우 본사 준공식에서 김익래 회장이 당시 이희범 STX중공업 회장,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
김 회장은 화야산 정산에서 한 약속도 지켰다. 1997년 8월 다우기술은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당시 다우기술 주식 기준가가 7만2천 원으로 발표되자 증권사 객장은 술렁거렸다. 다우기술이 기업간(B2B) 사업을 주력으로 했던 탓에 그 이름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우기술은 이미 일개 벤처회사에서 인터넷종합그룹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우기술은 1992년 IT서비스기업 다우데이터 설립을 시작으로 계열사를 늘려나갔다.
2000년 키움닷컴증권을 설립해 금융업에도 손을 뻗쳤다. 증권전산 프로젝트를 담당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온라인 증권거래 시스템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전산 프로젝트는 그런 점에서 키움증권의 토대가 됐다.
김 회장은 2004년 한국판 실리콘밸리 죽전디지털밸리디지포트 개발 및 분양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시행사 다우와키움과 시공사 다우와키움건설을 설립했다.
김 회장은 2000년 키움닷컴을 설립하면서 다우기술 경영에서 손을 뗐다. 신규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벤처기업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다우기술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벤처기업은 이제 더 이상 구멍가게가 아니다”며 “규모가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다우데이타를 지주회사로 23개 계열사를 지배하다
김 회장은 2001년부터 다우그룹 회장직을 맡으면서 계열사들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운영하고 있다. 다우그룹은 IT 금융 콘텐츠 건설 분야에 5개 상장계열사와 18개 비상장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주요 계열사로 다우기술, 다우데이타, 다우인큐브, 한국정보인증, 사람인, 알바인, 키움증권, 키움증권 인도네시아, 키움저축은행, 키움자산운용 등이 있다.
김 회장은 지주사격인 다우테이타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다우데이타 지분 37.8%과 다우기술 지분 1.34%를 보유하고 있다. 다우데이타는 사실상 그룹 내 지주사다. 다우기술(37.85%), 다우인큐브(49.3%), 사람인(6.3%) 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우기술 역시 키움증권(47.7%), 다우와키움(81.5%), 사람인(30.35%), 알바인(74.7%), 다우재팬(100%)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다우데이타와 다우기술 등 두 회사를 장악하고 이 두 회사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