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낸드플래시 반도체 생산설비의 대규모 증설을 위한 M15 반도체공장의 시설투자를 늦추고 메모리반도체업황 회복을 기다리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128단 4D낸드 공정을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투자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30일 외국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SK하이닉스가 개발한 128단 4D낸드 기술의 잠재력을 놓고 업계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28단 기술을 적용한 낸드플래시는 2020년부터 다양한 제품 형태로 출시되면서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콘퍼런스콜을 통해 4분기부터 96단 4D낸드 제품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고객사 인증을 거쳐 내년 상반기에 128단 제품의 판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96단 낸드플래시가 시장에서 자리잡자마자 곧바로 차세대 공정을 적용한 제품을 내놓는 것은 반도체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앞세우겠다는 의지가 담긴 전략으로 분석된다.
128단 4D낸드는 SK하이닉스가 6월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새 낸드플래시 공정기술로 기존 72단과 96단 낸드플래시보다 생산성과 반도체 성능을 모두 크게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이석희 사장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시설투자계획도 128단 낸드플래시를 중심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가 시장 예상을 뒤엎고 삼성전자 등 주요 경쟁사보다 먼저 128단 제품 양산에 성공한 만큼 생산비중을 최대한 빨리 확대해야 시장 선점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콘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낸드플래시 생산을 계획보다 축소하고 청주 M15 반도체공장의 추가 증설시기도 수요 상황을 고려해 재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완공된 SK하이닉스의 M15공장은 낸드플래시 생산을 위한 전용 공장으로 72단과 96단 낸드플래시 중심의 시설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이 사장이 M15공장 가동을 축소하고 투자를 늦추기로 한 것은 최근 낸드플래시 공급과잉이 지속되며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사업 적자폭이 커진 데 대응하려는 목적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상반기에만 낸드플래시사업에서 2조 원 가까운 적자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M15공장 투자 확대에 따른 고정비 부담이 반영됐고 낸드플래시 가격도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생산과 투자 축소는 단기적으로 공급과잉을 줄여 반도체업황 개선에 기여하며 수익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투자에 사용하려던 비용과 공간을 아끼게 돼 향후 128단 4D낸드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할 여력이 더 커지게 된다.
SK하이닉스의 투자 축소가 단기 실적 개선과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모두 기여할 수 있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기업과 고객사의 낸드플래시 재고가 정상화되고 수요가 반등하는 시기에 맞춰 128단 낸드플래시 생산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며 공급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 SK하이닉스의 128단 4D낸드 메모리반도체 솔루션. |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재고 수준은 연말쯤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적기에 128단 공정 중심으로 전환해 시장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도시바메모리,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등 반도체기업은 모두 상반기에 낸드플래시사업에서 업황 악화의 영향으로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반도체기업들이 일제히 낸드플래시 감산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 사장이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투자를 미루더라도 경쟁사와 비교해 뒤처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SK하이닉스가 계획대로 2020년부터 128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 확대에 힘쓴다면 고객사들에 기술력을 주목받으며 시장 지배력을 키울 기회를 맞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부터 128단 기반의 모바일 낸드플래시를 고객사의 5G스마트폰에 공급하고 새 공정 기반의 기업용 SSD도 내년에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