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가 있었다. 금융계열사의 사장들이 대거 교체됐다. 삼성의 6개 금융계열사 사장 가운데 4명이 바뀌었다.
이 금융계열사 사장단 인사가 사실상 이재용 체제를 맞아 삼성 금융계열사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첫 단추였다. 이재용체제 삼성 금융의 일류화 책임을 어깨에 짊어진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이재용 체제의 삼성 금융계열사를 맡게 되었나?
◆삼성생명 김창수 사장 : 전보(삼성화재→삼성생명)
|
|
|
▲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
김창수(59) 사장은 해병대 출신이다. 그는 삼성화재 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삼성그룹이 청년을 대상으로 벌이는 토크콘서트 ‘열정락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매번 개최 장소가 바뀌는 열정락서가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그는 “강연 부탁을 여러 번 받아도 계속 거절했는데 해군사관학교는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군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었다”며 “절대 지지 않는 감투(과감히 싸움)정신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의 감투정신은 일에서도 발휘됐다. 그는 2012년에 삼성화재 사장으로 취임하며 처음으로 금융업에 발을 담갔다. 금융업과 관련이 없는 삼성물산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그가 과연 잘 해낼까 걱정의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도전했고 보란듯이 좋은 성과를 거뒀다.
당시 삼성화재는 성장이 정체된 상태였다. 김 사장은 사업다각화와 해외진출로 활로를 찾았다. 그 결과 국내 손보업계 최초로 중국에서 자동차보험 직판을 성사시켰다. 또 삼성화재 베트남 법인은 베트남 전체 29개 보험사 중 6위, 외국자본계열 중에서 1위를 달성했다. 국내에서도 26%의 점유율로 1위를 유지했다. 김 사장의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삼성생명 자산규모의 4분의 1에 불과한 삼성화재가 삼성생명과 비슷한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김 사장은 삼성화재를 단기간에 성장시키고 조직내부에 혁신문화를 전파하는 등 조직관리 능력이 검증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 사장은 이를 인정받아 삼성화재보다 규모가 큰 삼성생명 사장으로 이동하게 됐다.
김 사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삼성물산 수입관리과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4년 후 삼성비서실 인사팀으로 이동해 근무하다 다시 삼성물산으로 돌아왔다. 그 후 에스원 특수사업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또 삼성물산으로 돌아와 상사부문 기계플랜트본부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삼성물산 기계플랜트본부장 시절 ‘해외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카자흐스탄 발하시 화력발전소(2007년), 멕시코 만사니오 LNG터미널 인수기지(2008년), 호주 담수화사업(2009년), 인도네시아 조선소 건설 및 페리호 건조(2009년) 등 대형 프로젝트를 연달아 수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이재용 부회장이 장기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의 신흥시장에서 근무했던 시기와 겹친다. 이때 김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신임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삼성 내부에서 김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측근으로 통한다. 김 사장이 삼성화재에서 삼성생명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삼성의 금융계열사 맏형의 사업구조 개편을 책임지라는 의미가 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성카드 원기찬 사장 : 승진
|
|
|
▲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
원기찬(55) 사장은 본인을 소개할 때 ‘인사 끝판왕’이라는 표현을 쓴다. 1984년 삼성전자 입사 이후 30년 넘게 인사분야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이런 원 사장이 삼성카드 사장이 됐을 때 카드업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삼성의 금융계열사 사업구조 개편과 밀접히 관련 있는 인사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원 사장이 삼성전자에서 미국 전문가로 통하고, 삼성카드 사장이 된 뒤 곧바로 미국 출장길에서 올라 빅데이터 전문가들을 잇따라 만났기 때문이다. 삼성카드에 삼성전자의 DNA를 이식하고 글로벌 인재 영입을 통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 내려면 카드업계에 편견이 있는 인물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원 사장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인재확보와 혁신적 조직문화를 수립하는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연말 인사 때 “원 사장이 삼성전자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삼성카드에 접목해 혁신을 주도해 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DNA를 삼성카드에 이식하라는 주문이었다. 삼성의 금융계열사 중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업계 1위를 지켜왔지만 유독 삼성카드는 2인자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자는 의도도 포함됐다.
원 사장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업 경험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삼성전자는 제품을, 카드는 금융을 기반으로 마케팅 하지만, 고객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크게 다른 것이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1984년에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인사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미국에 지역전문가로 파견되었고 북미총괄 인사팀장도 맡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삼성전자에서 일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삼성물산에서 수출업무를 맡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 사장은 삼성전자 인사팀에 배정받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실망할 가족을 생각해 마음을 바꿔먹고 한 달을 버티니 일이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윌리엄 E.헨리의 시의 한 구절인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다”라는 문구를 좋아한다고 한다.
원 사장의 행보를 놓고 여전히 전망이 엇갈린다. "인사 출신들은 조직 전체를 꼼꼼하게 관리하는데 일가견이 있어 인사출신의 꼼꼼함을 카드업계에 접목시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반대로 ”해외매출이 거의 없는 금융분야에 삼성전자식 경영을 적용한 해외진출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도 있다.
◆ 삼성화재 안민수 사장 : 승진
|
|
|
▲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 |
안민수(58) 사장은 지난달에 삼성화재 주식을 4억 원어치나 사 화제가 됐다. 삼성생명 재직시절에 성과급으로 받은 주식을 퇴임하며 모두 처분하고 그 돈으로 삼성화재 주식을 산 것이다. 그는 “그만큼 삼성화재에 전념하겠다는 뜻”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안 사장은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해 198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비서실로 이동해서 일하다가 1994년 삼성생명 자산운용을 담당하면서부터 계속 삼성생명에서 근무했다. 뉴욕투자법인장, 투자사업부장, PF운용팀장, 자산운용본부장을 거쳐 2011년 삼성생명 부사장이 됐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삼성화재 사장으로 발탁됐다.
삼성그룹은 안 사장에 대해 “지난 3년간 삼성금융사장단 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아 금융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 수립과 시행을 원활하게 지원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그룹 내 몇 안 되는 운용전문가라는 평을 듣는다.
안 사장은 삼성생명 자산포트폴리오 운용팀 상무 시절 나쁜 뉴스가 나오면 바로 투자수익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깨닫고 오전 7시에 출근하자마자 블룸버그, CNN 등이 보내주는 뉴스 이메일을 40통 넘게 읽던 노력파다.
안 사장은 영업을 거치지 않았다는 약점을 의식해서인지 사장 취임 이후 지방을 돌아다니며 영업현장을 방문하는데 힘쓰고 있다. 서울 본사 사무실을 지키는 일이 1주일에 한두 번 될까 말까 할 정도라고 한다.
또 수시로 점심 도시락 미팅을 하며 일을 상의한다. 격의없는 분위기에서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삼성화재의 한 관계자는 “운용전문가로 알려진 안 사장의 현장행보에 대해 신선한 접근이라며 공감하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 삼성증권 김석 사장 : 유임
|
|
|
▲ 김석 삼성증권 사장 |
김석(60) 사장이 좋아하는 걸그룹은 ‘티아라’다. 삼성증권의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그는 직원들과 격식없고 자유로운 대화를 좋아한다. 직원들과 함께 야구를 관람하기도 한다.
김석 사장은 2012년 초에 삼성증권 사장으로 취임해 올해로 3년차 사장이다. 이번 인사에서 4대 금융계열사 사장 중 유일하게 유임에 성공했다. 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사업 구조개편을 통해 2012년 한 해에만 1천억 원의 비용을 절감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지난해부터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동양증권 등이 재정악화에 시달리다 매물로 나오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삼성증권은 선방했다는 평가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9년 홍콩에 위치한 체이스맨하탄은행에 입사해 1992년 체이스맨하탄은행 아시아지역 총책임자가 됐다. 삼성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한국에 들어와 1994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재무담당 이사로 삼성에 입성했다.
이후 삼성구조조정 본부 구조조정팀 상무, 삼성카드 영업본부장, 삼성증권 IB사업본부장, 삼성증권 홀세일 총괄 부사장을 거쳐 2010년 삼성자산운용 사장에 임명됐다. 비공채 출신 중 처음으로 삼성 계열사 사장이 됐다.
삼성자산운용은 2007년 자산운용업계 1위 자리를 뺏기고 4년간 2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김 사장이 취임한 뒤 1위 탈환에 성공했다. 그는 상장지수펀드(ETF)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것을 비롯해 펀드 수익률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해외 마케팅에서도 성과를 냈다. 중국국부펀드 위탁운용사 선정, 니코코디알 위탁운용사 선정, 중국상재증권과 합작 등의 실적을 거뒀다.
김 사장은 매주 월요일에 삼성증권 임직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삼성그룹의 블로그에 소개된 문자메시지를 그대로 옮겨보면 ‘♧행복한 출근길♧ 말에는 자기 최면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제일 잘나가~♪ 스스로 최면을 걸어볼까요? -사장 김석-’ 과 같다.
김 사장은 삼성그룹 안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상당히 관계가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사장은 이 부회장이 지난 2012년 야구장을 찾을 때 동행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비서실 근무 인연으로 이 부회장에게 금융과 관련해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
|
|
▲ (왼쪽부터) 삼성생명 김창수 사장, 삼성카드 원기찬 사장, 삼성화재 안민수 사장, 삼성증권 김석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