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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가 지난해 9월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락랜드 보울더스 대 뉴어크 베어스 경기에 나섰다 |
“허민은 우리나라에서 ‘너클볼’을 잘 구사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에 대한 ‘야신’ 김성근 감독의 평가다.
너클볼은 투수가 무회전으로 던지는 공이다. 공이 어떻게 들어올지 타자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서 마구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이 공을 제대로 던지는 투수도 찾기 드물다. 그런데 프로야구 투수도 아닌 허 대표를 김 감독이 국내 최고의 ‘너클볼 투수’로 인정한 셈이다.
허 대표는 오직 너클볼 던지는 법을 배우는 데만 10만 달러(약 1억1천만 원)를 썼다. 게임회사 네오플을 2008년 넥슨에 넘긴 뒤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던 시절이다. 그는 너클볼을 배우기 위해 필 니크로에게 거액을 바쳤다. 필 니크로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선수로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이 오른 너클볼 투수다.
허 대표는 “어깨 부상 후 다시 마운드에 서려면 너클볼만이 살 길이란 생각에 니크로를 찾아갔다”며 “한 달 동안 밤낮없이 너클볼 훈련만 받았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야구를 하기 위해 서울대에 들어가 야구부에 가입했으나 어깨 부상 때문에 시합에 출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허 대표가 야구광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는 “야구단을 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고 야구가 하고 싶어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말할 정도다.
네오플로 성공을 거둔 뒤 허 대표는 학교 선배를 통해 서울대 야구부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1천만 원을 훌쩍 기부하기도 했다. 학교 선배는 허 대표가 기부한 사실을 학교에 알리려고 했으나 허 대표가 만류했다고 한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진짜’라는 것이다.
허 대표의 ‘야구사랑’에 정점을 찍은 일은 역시 2011년 국내 최초의 독립구단인 고양원더스의 창단이다. 그는 “고양원더스를 만든 것은 내 방식의 사회 기부”라고 말했다.
당시 한국야구협회는 독립구단을 만들려고 하면서 허 대표에게 10억 원을 투자하면 원금을 수익으로 보전하는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허 대표는 KBO의 제안을 물리치고 구단 운영비를 모두 부담하겠다고 했다.
야구 관계자들은 2012년 한해 동안 고양원더스 운영에 들어간 돈이 4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양원더스는 해외의 독립구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감독과 선수들에게 파격적 대우를 해주고 있다.
독립구단이 활성화된 일본의 경우 선수들은 시즌이 아닐 때 다른 직업 활동을 하며 돈을 번다. 또 코칭스태프도 감독을 포함해 3~4명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허 대표는 김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 11명을 고양원더스에 데려왔다. 겨울 전지훈련은 물론 경기가 없는 기간의 개인 훈련비도 지원한다. 지난해 프로구단으로 떠난 선수 5명에게 1인당 1천만 원의 격려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여기에 쓰인 돈은 전부 허 대표의 주머니에서 나갔다.
허 대표는 단순히 취미생활이 아니라 야구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욕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2007년 현대 유니콘스가 재정 위기를 겪자 직접 한국야구협회를 찾아 하일성 전 사무총장과 구단 인수를 놓고 면담했다. 인수가 무산된 뒤에도 제9구단인 엔씨 다이노스 창단을 놓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과 상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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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가 지난해 8월29일 미국 캔암리그의 락랜드 보울더스와 입단 계약을 맺은 후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프로구단은 1년 운영비가 최소 200억~300억 원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적자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그런데도 허 대표는 프로구단 인수를 추진했던 것이다. 그는 “(프로구단을) 운영하고 싶었던 이유는 야구단도 흑자가 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흑자를 낼 요인으로 ‘재미있으면 돈을 내는 시스템’을 들었다. 그를 수천억 원대 자산가로 만든 게임 ‘던전 앤 파이터’에서 활용했던 부분유료화 제도가 성공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뭐든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면 끝이다”라며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하면 되레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는 말했다.
허 대표의 프로야구단 인수나 신설에 대한 욕심은 여러 이유로 무산됐다. 아무래도 재력 등에서 기존 구단을 운영하는 대기업 구단주들과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 탓인지 허 대표는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 프로야구단을 해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고양 원더스를 창단하고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고 사재를 털어넣는 것들이 모두 허 대표가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겠다는 욕망을 실현해 가는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허 대표는 국내 프로구단 인수가 어렵다면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구단을 인수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그는 "다저스나 양키스를 인수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현재의 허 대표의 재력으로 보면 현실적 목표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허 대표는 메이저리그가 어렵다면 마이너리그의 구단을 인수하고 싶다는 욕망을 간절히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허 대표를 잘 아는 인사는 "허 대표의 야구에 대한 사랑이 야구단을 운영해도 충분히 사업적으로 가능하다는 확신을 만들었고 한국 프로야구단이 어렵다면 미국 프로야구단 인수해 보려는 시도를 하도록 하는 것같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구단주에서 한 걸음 나아가 미국 독립구단의 ‘프로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8월29일 미국 캔암리그 소속 락랜드 보울더스에 선수로 입단했다. 다음달 2일 뉴어크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3이닝 동안 5실점을 기록하며 ‘너클볼 투수’ 데뷔까지 했다.
당시 한 야구전문가는 베어스와 경기를 치른 허 대표가 구단에게 받을 돈은 약 130 달러(15만 원) 수준일 것이라고 계산했다. 허 대표는 부동산 임대료로만 매년 100억 원을 받는다. 그런 그에게 15만 원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락랜드 보울더스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경기를 한국에 중계하고 관련 상품을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등 허 대표를 마케팅에 이용했다. 한 미국 기자는 “허 대표의 독립구단 데뷔전은 이벤트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 대표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메이저리그 데뷔’라는 더 큰 꿈을 드러냈다. 허 대표는 경기가 끝난 직후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너클볼 스승인) 니크로가 47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며 “최소한 그 나이까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