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저녁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 장소인 울산시 동구 한마음회관에서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현대중공업 노조원 1천여 명을 비롯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광장에 모여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고 그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4천여 명의 경찰이 배치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 30일 현대중공업 노조뿐만 아니라 여러 노동조합이 현대중공업의 임시 주주총회를 저지하기 위한 파업 투쟁에 합세했다. <비즈니스포스트>
한마음회관에는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현대차, 대우조선해양, 전국플랜트건설 노조,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등 여러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수천 명이 31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를 막기 위해 모였다.
노조측은 이날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모두 5천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노조원들이 집회를 여는 한마음회관 주변은 4천여 명의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으니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1만 명 가까운 이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셈이다.
회사쪽에서 경찰에 노조원들의 퇴거를 요구한 상황이라 조합원들은 경찰력 투입을 가장 경계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유혈사태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박근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은 이날 단상에 올라 “현중(현대중공업) 자본이 물적분할을 강행하겠다면 여기 모인 노동자들의 피를 밟고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투쟁!”이라는 구호와 함께 부부젤라를 불며 박 지부장의 연설에 호응했다.
한마음회관으로 들어서는 모든 길목은 사실상 노조가 봉쇄했다. 특히 회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노조들이 천막을 치고 상주인원을 대기시켜 혹시 모를 경찰의 진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노조는 경찰력이 투입되지 않고 주주총회가 미뤄지더라도 사측이 물적분할 의지를 완전히 꺾을 때까지 파업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마음회관 광장 뒤편의 샛길을 통해 진입할 수 있는 공터에는 투쟁의 장기화에 대비해 노동자들이 쳐둔 텐트들이 있다.
이곳에서 휴식하던 현대중공업 노조의 한 조합원은 ‘1박2일 투쟁을 준비했냐’는 기자의 말에 “1박2일 투쟁이라고 하지 말아달라”며 “투쟁은 2박3일이나 3박4일, 혹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이 조합원은 “우리의 투쟁이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에 용기를 얻고 있다”며 “사측이 물적분할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기 전까지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당수 조합원들은 노조원의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찰이 조합원 해산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회사쪽이 법적 조치를 끝낸 상황이라 경찰이 언제든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날 울산지방법원 제22민사부는 현대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낸 한마음회관의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노조가 한마음회관을 적법하게 점유할 권한이나 근거가 있다고 할 만한 사정이 없다고 봤다.
현대중공업은 예정대로 주주총회를 연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주총 장소 변경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31일 당일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주주총회 장소를 변경할 계획은 없다”며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장소에서 주주총회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마음회관 뒤편 공터에 세워진 텐트. <비즈니스포스트>
물론 주주총회 장소가 변경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노조도 대비를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또 다른 주주총회 장소로 거론되는 울산 남구의 울산대학교 캠퍼스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해뒀다.
집회 현장에서는 한마음회관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울산 라한호텔(구 현대호텔)이나 전하체육센터 등으로 주주총회 장소가 바뀔 수 있다며 여기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나왔다.
현대중공업은 31일 울산 한마음회관 1층 예술관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현대중공업을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과 사업자회사 현대중공업으로 물적분할하는 안건을 승인받는다.
노조는 한국조선해양이 11조2096억 원의 자본과 1639억 원의 부채를, 현대중공업이 6조1793억 원의 자본과 7조576억 원의 부채를 나눠 지니게 되는 분할계획안이 재무적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물적분할을 막기 위해 주총장 봉쇄라는 실력행사에 나섰다.
물적분할이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가 아들인 정기선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발언대에 올라선 한 노동자는 “자본은 한국조선해양을 통해 정씨 부자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부채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지게 된다”며 “재벌의 배를 불리기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물적분할안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