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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3자녀. 왼쪽부터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결정이 던진 메시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삼성그룹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가장 유력했던 시나리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3자녀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경영하는 것이었다.
이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계열사를 맡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과 유통부문을,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패션과 광고부문 계열사를 경영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하지만 이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결정으로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이 이 부회장 쪽으로 급격히 기울면서 삼성그룹 3세 경영권 승계구도에서 이부진 이서현 자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 이재용의 지배력 강화, 이부진 이서현의 미래
삼성물산과 합병을 통해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된 제일모직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합병을 통해 이재용-합병 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력을 구축하게 된다.
이 부회장은 합병 뒤 지분이 16.5%로 낮아지지만 최대주주로서 위상은 변함없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은 현재 7.75%의 제일모직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합병 이후 지분율이 5.5%로 낮아진다.
지분구조상 이 부회장 3남매의 후계구도가 당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 예상대로 이 부회장이 합병 삼성물산을 통해 전자와 금융을 지배하고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를, 이서현 사장이 현재 제일모직 패션부분과 제일기획을 경영하는 구도다.
그러나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은 지금처럼 계열사들을 맡아 경영을 하더라도 지배력을 갖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이건희 회장 3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등기이사에도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 사장은 서울시내면세점사업 입찰을 위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사장과 손을 잡는 등 공격적 경영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사장은 경영능력면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 사장이 호텔신라 대표이면서도 보유지분이 없다는 사실이다. 호텔신라는 삼성생명이 7.3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삼성전자(5.11%), 삼성증권(3.06%), 삼성SDI 등 삼성그룹 계열사가 17.50%의 지분을 들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사장이 지금과 같이 호텔신라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앞으로도 동력을 잃지 않으려면 호텔신라 지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 사장은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제일모직 외에도 삼성SDI 지분 3.90%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14일 의무 보호예수 기간이 만료됐다.
이 사장이 삼성SDI 지분을 팔아 호텔신라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다음달 18일 의무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는 제일모직 지분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맡고 있는 이서현 사장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서현 사장이 삼성그룹에서 패션과 광고부문에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지분확대가 필수적이다.
이서현 사장은 이부진 사장과 마찬가지로 제일모직과 삼성SDI 지분을 현재 각각 7.75%와 3.90%를 소유하고 있다. 이서현 사장은 제일기획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제일기획은 삼성물산(12.64%), 삼성전자(12.60%), 삼성카드(3.04%) 등이 대주주다.
이 때문에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이 보유한 지분으로 각각 경영을 맡고 있는 계열사의 지분과 맞교환을 통해 경영권을 확보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후계구도는 결국 누가 어느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느냐에 따라 정해질 것”이라며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 지분을, 이서현 사장은 제일기획 지분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은 만큼 두 사람의 경영권 승계는 가능성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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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 삼성물산 상사부문, 제일모직 패션부문의 운명
이재용 부회장 3남매의 후계구도에서 남은 또 다른 변수 가운데 하나는 삼성물산의 상사부분과 제일모직 패션부분의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제일모직 윤주화 사장은 "이번 합병은 회사의 핵심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해 글로벌 리딩 컴퍼니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인간의 삶 전반에 걸친 토탈 프리미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최치훈 사장도 "패션, 바이오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삼성물산이 보유한 글로벌 오퍼레이션 역량과 제일모직의 특화역량을 결합해 사업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의 합병은 2014년 기준으로 매출 34조원의 거대기업의 탄생을 예고한다. 사업분야도 건설부터 상사, 패션, 리조트, 식음료 등 안 걸치는 데가 없을 정도다. 두 회사는 합병을 통해 핵심사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2020년 매출 60조 원의 청사진도 내놓았다.
하지만 덩치가 너무 크고 각 사업부문간 연관성도 강하지 않다. 사업만 놓고 보면 합병 당위성이 별로 없다.
이번 결정이 사실상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서 중요한 사업부분은 유지하되 그렇지 않은 경우 사업부문을 떼어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삼성물산의 상사와 건설부문에서 여러 변수가 생겨날 수 있다. 건설부문은 삼성중공업이나 삼성엔지니어링 재편과 맞물려 ‘새 판 짜기’에 들어갈 수 있다.
상사부문의 경우 이부진 사장이 2010년부터 상사부문 고문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곳이다. 이 사장이 주력하고 있는 신라면세점사업과 연관성도 있다.
이 사장이 삼성물산 상사부문에서 역할을 확대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사장도 상사분야에 관심을 쏟고 임원들로부터 수시로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 관련 중요 사항을 보고받는 등 상사부분도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사부문은 삼성물산의 최근 실적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제일모직이 사실상 상사부문에서 출발한 기업이라는 점과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사업 전반에 대한 장악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물산에서 상사부문의 분리독립은 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제일모직 패션부문이 통합 삼성물산의 우산 아래 남을 지 미지수다. 패션부문은 대외적으로 이서현 사장이 얼굴역할을 맡고 있다. 제일모직이 사업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시도할 경우 패션부문을 따로 떼 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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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부진 사장(왼쪽)과 이서현 사장 |
◆ 이부진 이서현, 계열분리할까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 자매가 삼성그룹에 계속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할지 주목된다.
당장은 삼성그룹 안에서 각자 맡은 사업부문에서 역할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 3세 승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지분인데 이부진 이서현 자매의 영향력은 미미하다”며 “두 사람은 당분간 각자의 사업부문에서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이부진 사장의 경우 호텔사업에서, 이서현 사장의 경우 패션부문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서 계열분리에 나설 수 있는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
더욱이 이건희 회장이 와병중이지만 생존해 있고 어머니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도 건재하다.
하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끝낸 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의 계열분리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과거 삼성그룹에서 이건희 회장 체제가 시작될 당시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각각 제지사업과 백화점사업을 들고 나왔다.
이재용 부회장 3남매가 계열분리에 나설 경우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를, 이서현 사장이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차지할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부진 사장이 삼성물산의 상사부문을, 이서현 사장이 제일기획을 물려받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런 결정에는 홍라희 리움 관장의 뜻이 절대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 관장은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인 상황에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