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는 생전에 ‘논어’를 항상 옆에 두었다.
그는 평생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주저하지 않고 논어를 꼽았다. 이 창업주는 논어를 통해 인간관계는 물론 사업의 기본인 ‘신(信)’을 배웠다.
그래서일까? 삼성그룹 최고위 경영자들 가운데도 논어 탐독파가 제법 있다.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대표적이다.
윤 사장은 취임 첫 날 '신뢰 없이는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 담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로 고객중심 경영을 화두로 제시했다.
'무신불립'은 논어 '안연편'에 수록된 공자의 말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열심히 읽는 책 가운데 하나로 논어를 든다.
◆ 책을 넘어서는 책, '논어'의 힘
논어는 동아시아권에서 고전 중의 고전, 책을 넘어서는 책이다. 학문의 대상이자 치세의 원칙, 삶의 지침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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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
논어 번역서와 관련 서적이 출판시장에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처럼 많은 이들이 논어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인부터 경영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성공한 리더들 가운데 유독 논어 예찬론자가 많다. 아니,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논어를 읽고 성공한 것일 수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가장 좋아하는 책도 논어다. 시 주석은 연설문과 기고문에서 고사성어를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논어가 특히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시 주석은 지난해 7월 한국을 방문해서도 논어의 한 구절인 '무신불립'을 인용해 한중간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논어가 성공한 리더들의 고전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그만큼 해석의 폭이 넓고 깊기 때문이다. 유교를 비판하는 이들도 논어에 대해서만큼은 다양하고 풍부한 해석을 내놓는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논어’ 자로편의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란 구절을 들어 통일담론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논어를 “시작도 끝도 없는 경구”라며 끝없이 즉흥연주가 이어지는 재즈에 비유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지난 15일 ‘논어한글역주’의 만화버전인 ‘도올만화논어’(통나무출판사) 전 5권을 완간했다. 청소년이 논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해한 만화책이다.
시중에 나온 ‘논어’ 번역서는 100종이 넘는다. 원본에 충실한 논어를 읽고자 한다면 동양고전연구가인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의 ‘논어집주’(전통문화연구회)가 입문서로서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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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모리 가즈오, 그가 논어에서 배운 것들' |
김형찬 고려대 교수가 번역한 논어도 한자에 자신없는 초보자들이 읽어내리기 좋은 책으로 추천된다.
원전에 충실하기보다 우리시대의 관점에서 새롭게 논어를 읽을 수 있는 책들도 많다. 김도련 국민대 교수의 ‘주주금석 논어’(웅진지식하우스)나 배병삼 교수의 ‘한글세대가 본 논어’(문학동네)를 들 수 있다.
지난 2월 출간된 미나기 가즈요시의 ‘이나모리 가즈오, 그가 논어에서 배운 것들’(카시오페아)은 논어를 읽고 인생이 바뀐 기업인 이나모리 회장의 20년 기업경영을 통해 경영적 관점에서 새롭게 논어를 들여다본 책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전자회사 교세라의 명예회장으로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27세에 맨손으로 창업해 일본 전자업계에서 굴지의 회사를 키워낸 그는 “젊은 시절 공자의 논어를 배운 게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며 “과학이 발달한 문명사회에서 돈 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인간의 도(道)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의 차이
‘장자’는 논어에 비해 성공한 리더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원전 자체가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우화형식이어서 난해하기 때문이다.
또 논어가 현실지향적 삶의 덕목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반면 장자사상은 현실도피적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돈기에 제왕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쳤다. 장자는 세상의 권력을 찾아다니기보다 무위자연 속에서 인간본성과 우주론에 침잠했다.
장자는 근심의 근원인 자기의 육체와 정신을 버리고 '허정'(虛靜), '염담'(恬淡)의 심경에 도달해 자연의 법칙에 따름으로써 자유와 독립을 얻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라고 본다. 세계의 중심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밖에서 초연하게 노니는 삶이다.
출판시장에서 장자도 여러 권의 역서가 나와 있지만 완역본을 읽기는 쉽지 않다.
해설서를 읽는 편이 처음 읽기에 쉽다. 올해 1월 출간된 전호근의 '장자강의'(동녘)는 대중강연을 통해 오랫동안 장자를 강의한 저자가 해설과 함께 장자의 핵심사상을 짚어주는 책이다.
앵거스 그레이엄의 '장자 사유의 보폭을 넓히는 새로운 장자 읽기'(이학사)도 서양인의 관점에서 장자의 사유를 들여다본 점에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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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 강의' |
논어와 장자는 둘 다 불후의 고전임에 틀림없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 완전히 다른 지향점을 제시한다. 공자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면 장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성찰하는 법을 가르친다.
공자와 장자는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렇게 다르다.
논어의 위령공편에서 공자는 자공에게 “서(恕)가 아닐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其恕乎己! 所不欲, 勿施於人)고 말했다. 공자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원치 않는지를 살펴 타인을 대하라는 것이다. 사고의 출발점은 ‘나’다.
같은 상황에서 장자의 해법은 다르다. 지락편에서 장자는 공자가 제시한 서(恕)의 한계를 지적한다. 장자는 공자의 입을 빌어 안연에게 노나라의 바닷새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바닷새가 노나라 교외에 내려앉자 임금은 새를 위해 좋은 음악과 음식으로 잔치를 베풀지만 새는 슬픔 속에 사흘만에 죽고 만다는 이야기다.
“이는 자신을 기르는 식으로 새를 길렀을 뿐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탓이다.”(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장자는 ‘나’가 아닌 남이 원하는 것을 그에게 행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지난해 9월 재밌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샤오뤄무의 ‘공자처럼 출근하고 장자처럼 퇴근하라’(한스미디어)라는 책이다.
세상에 나가 성공하려면 논어를, 자유로운 자신의 삶에서 충실한 행복을 맛보려면 장자를 읽어야 할까? 저자는 일과 삶의 두 축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은 균형을 잡기가 녹록치만은 않아 보인다. 공자를 만날지, 장자를 만날지는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