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숫자가 사람들 눈에 먼저 들어오겠지만 현재 상태를 잘한 것처럼 내보이지 말라. 이 숫자들을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나갈지 좀 더 노력하자.”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사회적가치위원회 위원장은 21일 서울 종로구 SK빌딩에서 열린 사회적 가치 측정 설명회에서 계열사들의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를 보고했을 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 말 가운데 이 당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SK그룹 주력 3개 계열사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 성과가 제시됐다. 기업집단이 자신들이 생산한 사회적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해 공식 발표한 것은 SK그룹이 세계에서 처음이다.
지난해 예고한 대로 기업활동의 결과를 금액 기준으로 측정해 발표하면서 최 회장은 SK그룹을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거듭 나도록 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이 위원장에게 언급한 마이너스 숫자는 SK이노베이션의 '성과'를 지칭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사회적 가치 항목 가운데 ‘비즈니스 사회성과’ 부문에서 지난해 1조1884억 원 규모의 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4563억 원 규모의 손실을 냈음을 알렸다.
비즈니스 사회성과란 제품·서비스 개발과 생산, 판매를 통해 발생한 사회적 가치로 환경과 사회, 거버넌스 부문 등이 평가항목이다.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석유회사이고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회사다. 생산물을 내놓을수록 환경오염이라는 비용이 뒤따를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어렴풋이 하고 있다.
하지만 SK그룹은 최 회장의 주문에 따라 스스로 그 비용을 수치화해 공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영업이익 2조1176억 원을 냈지만 환경 등에 손상을 입혀 사회에 1조1884억 원 규모의 손실을 야기했다고 '고백'했다. SK하이닉스는 20조8438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4563억 원 규모에 이르는 폐기물,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했다.
이 기업이 공개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었고 사실상 이를 수치화까지 해 공개할 의무도 없다.
실제로 이형희 위원장은 이를 공개하기까지 내부에 우려가 있었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이렇게 큰 마이너스 효과를 낸다고 말해도 되는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다”며 “소비자들이 저 회사 나쁜 회사 아니냐고 비난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이 측정결과를 과감하게 밝힌 것은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란 강한 의지와 ‘앞으로의 개선을 지켜봐달라’는 자신감으로 풀이됐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유도하려면 보상이 있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명확한 가치 측정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될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돈으로 설명해야 행동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충격적 숫자가 나왔다면 그를 제대로 받아들여야 거기에 걸맞는 노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SK 관계자는 전했다.이날 수치 발표를 계기로 계열사들이 더욱 적극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다.
이 위원장은 “단순한 퀴즈라 하더라도 점수를 매기면 이를 더 잘 받기 위해 노력하고 전력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측정결과 마이너스적 요소가 나왔다면 점수를 더 좋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수치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사회적 가치 측정에서 큰 폭의 사회적 비용의 감소를 이루겠다며 공정과 제품 등에서 여러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공정에서 발생되는 폐열과 소각열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았고 친환경 연료로 공정을 전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나 소재 사업에 힘을 싣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불순물을 처리하는 ‘스크러버 장치’를 개조해 물 사용량을 크게 줄였다. 공정을 개선해 삼불화질소(NF3)와 육불화황(SF6) 배출 저감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사회적가치 측정결과 발표는 ‘잘한 것을 인정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긴 마라톤을 시작하는 출발점에 섰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도 측정시스템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