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에 60조 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은 반면 메모리 투자는 크게 축소하는 쪽으로 전략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가 평택에 짓고 있는 새 반도체공장도 기존 계획과 달리 메모리가 아닌 시스템반도체 전용 생산공장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3일 삼성전자 관계자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구체적 투자계획과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생산투자에 60조 원을 들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지는 했지만 세부적 내용을 결정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 투자는 앞으로 10년을 보는 중장기 계획이기 때문에 아직 확정하기 어렵다”며 “시장 상황에 맞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관심은 삼성전자가 평택 반도체 공장단지에 곧바로 새 시스템반도체 공장 건설을 시작할 지에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30일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을 위해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사업장을 방문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은승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등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을 만났다.
문 대통령이 평택에 시스템반도체공장을 지을 계획이 있는지 묻자 정 사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 제1반도체공장에서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아직 추가 시설투자를 벌일 수 있는 여유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평택 제2반도체공장도 내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 반도체공장 단지를 첨단 메모리반도체 전용 생산기지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꾸준히 시설투자를 확대해왔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반면 메모리 시설투자는 대폭 줄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이런 전략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4월30일 콘퍼런스콜에서 “반도체 수요 전망치가 낮아진 데 대응하기 위해 생산라인 재배치 등 최적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출하량보다 수익성 확보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메모리반도체 일부 생산라인 가동을 조절하거나 중단해 출하량을 줄이는 감산계획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1월 말 열린 콘퍼런스콜에서도 올해 메모리반도체 증설투자를 벌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 공격적 시설투자를 지속해 반도체 공급과잉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런 전략이 지금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실적에 타격을 주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김선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지난 2~3년 동안 생산 확대에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을 했지만 투자성과는 상대적으로 아쉬웠다”고 바라봤다.
삼성전자가 평택 제2반도체공장을 완공한 뒤 계획대로 메모리반도체 생산설비를 들인다면 반도체 공급과잉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현재 진행중이던 메모리반도체 시설투자 계획을 일시적으로 전면 중단하고 평택 제2반도체공장도 시스템반도체 전용 공장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문 대통령에게 내놓은 약속대로 평택에 시스템반도체 생산을 위한 새 공장을 짓는다면 인프라와 건물 공사를 시작하고 실제 양산체제를 갖추기까지 수 년에 이르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사업 육성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생산능력 확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적극 앞당기려 할 공산이 크다.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경쟁사인 TSMC가 5나노 등 차기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공장에 29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가 발빠른 투자로 대응해야 할 이유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평택 제1반도체공장의 여유공간까지 시스템반도체 생산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평택 제1공장의 남은 공간과 제2공장에서 어떤 제품을 생산할 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평택 반도체공장을 시스템반도체 생산에 활용하는 것은 단기간에 시스템반도체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메모리반도체 공급과잉의 위험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평택 제2반도체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진 제1공장과 비슷한 크기로 추정되는 만큼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생산능력을 단기간에 크게 끌어올리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 반도체 공장단지에 제3공장과 제4공장을 지을 만큼의 여유부지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