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취임 70일 만에 총리에서 물러났다. 이 총리는 사실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을 안게 됐다.
이 총리는 이임식에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이 총리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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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전 국무총리 |
이 총리는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총리 이임식에서 “짧은 기간 최선을 다했으나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 무척 아쉽게 생각하며, 해야 할 일들을 여러분께 남겨두고 가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또 “최근의 일과 관련해 우리 사회, 우리 국가의 현실과 장래에 관해, 그리고 특히 공인으로서 다해야 할 엄중한 책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으며 오늘은 여백을 남기고 떠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지난 2월 국무총리에 임명되며 충청권을 대표하는 여권의 ‘잠룡’으로 급부상했다.
이 총리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출입기자들을 향해 막말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으나 무사히 이를 통과해 국무총리에 올랐다.
이 총리는 반부패 척결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사정정국을 주도했다. 그러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천만 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엄청난 후폭풍을 겪었다.
이 총리는 이로써 1980년대 대통령 단임제가 실시된 뒤 가장 짧은 임기 동안 재임한 총리로 남게 됐다.
이 총리는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행정과 치안에서 두루 공직경험을 쌓았다. 제15대 국회에 입성해 16대 재선에도 성공했다.
이 총리는 3선에 나서지 않고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돼 선출직 공직자로서 보폭을 넓혔다.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한 데 반발해 지사직을 전격사퇴했으며 그 뒤 다발성골수정 판정을 받는 등 야인생활을 이어갔다.
이 총리는 2013년 4.24 재보선에 나서 정계에 복귀에 성공한 뒤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올랐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얼어붙은 여야 대치정국에서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박영선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인 뒤 기업으로부터 불법자금 수수의혹 외에도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잦은 말 바꾸기와 거짓말로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 총리는 이날 이임식을 마친 뒤 총리실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정부서울청사를 떠나던 도중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