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의료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원격진료를 도입해 의료계 반발을 넘을 수 있을까?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도서, 벽지, 원양선박, 교도소, 군부대 등 의료 사각지대에 한정해 의사와 환자 사이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정책이 '스마트진료'라는 이름으로 올해부터 추진된다.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그러나 의료계는 "정부가 ‘의사와 환자 사이’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지만 이는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어 정책 시행까지 넘어야 할 벽이 만만치 않다.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정책이사는 "처음부터 원격의료를 허용하면 의료계의 반발이 심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책을 살펴보면 진료는 원격으로 받지만 약은 직접 약국을 방문해야만 받을 수 있도록 한 모순도 있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대면진료가 아닌 상태에서 얼마만큼 정확한 진료가 이뤄질 수 있을지를 두고도 의문이 든다"며 "환자의 건강권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대면진료의 원칙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언론에서 해외사례를 들며 원격의료의 필요함을 주장하지만 그 사례는 대부분 넓은 영토를 지닌 국가에서 대면진료가 어려워 의사들이 나서서 원격의료가 필요하다고 나서는 사안”이라며 “정부의 원격의료 강행의 근본적 이유는 원격의료 수가를 대면지료보다 낮게 책정해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는 그동안 사회적 논의에만 머물던 의사와 환자 사이 원격의료가 제한적이나마 첫 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송승재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회장은 “원격의료는 원격방문간호, 원격응급의료, 원격자문 등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의 협진, 그리고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원격진료, 원격모니터링 등 다양한 유형으로 제공 가능하다”며 “시진, 촉진, 타진, 청진이 필요한 복부검사를 예를 들어 의료계가 반대 목소리를 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만성질환과 같이 환자 정보를 꾸준히 기록하며 관리하는 질환은 원격 모니터링이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보건정책과 사회적 수요에 따라 원격의료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국민들이 편익을 누리면 자연스럽게 산업적 의미도 부여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원격의료를 아예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보건의료위원회 정책위원을 맡고 있는 신현호 변호사는 “환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의료인들이 원격의료에 반발하는 실질적 이유는 의료계의 서열이 고착화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고속철도 등 교통의 발달로 서울대학교병원이나 삼성의료원 같은 대형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이동하는 사람이 늘어나 지역 병원이 타격을 입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원격의료 자체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병원이 서열화 되는 것을 보완하고 지역 병원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의료계에서 우려하고 있는 의료전달체계를 훼손하는 정도의 전면적 원격의료를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현재 발표된 것보다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