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애초부터 현대로지스틱스를 팔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매각을 추진했던 현대로지스틱스가 일본 오릭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다. 현대로지틱스에 눈독을 들이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헛물만 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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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최근 일본계 사모투자전문회사(PEF) 운용사 오릭스코퍼레이션과 현대로지스틱스에 2천억 원의 자본을 유치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맺었다. 양해각서에 오릭스가 2천억 원을 현금으로 제공하고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 30% 가량을 넘겨받는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과 오릭스는 앞으로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투자 계약과 주주 간 협약을 맺고 회사의 성장 방안을 함께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과 오릭스의 자본유치 협상이 극비리에 진행되면서 현대로지스틱스에 대한 인수 의사를 밝힌 기업들을 헛물을 켠 꼴이 됐다. 현대그룹은 매각 주관사로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를 선정하면서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롯데그룹을 비롯해 GS그룹과 베어링PEA 인수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특히 롯데그룹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인수 가격을 제시하면서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롯데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의 경영권 지분 62%에 대해 3500억 원을 낼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현대그룹이 경영권 지분 가치에 부채 4천억 원 등을 포함해 1조 원 정도를 요구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현대그룹이 현대로지스틱스의 투자유치를 해내자 애초 매각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구계획을 이행하라는 외부의 압박에 매각하는 시늉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업계에서 나온다.
현대그룹은 애초 현대로지스틱스를 기업공개(IPO)해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금 상황이 급속히 나빠진 데 이어 신용등급까지 강등되면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게 되자 매각을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매각 협상에 들어가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러 애초부터 현대그룹이 매각의사가 없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 회장은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할 경우 경영권 지분 62%를 모두 잃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 투자를 유치하기로 하면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으로 이어지는 현대그룹의 수직지배구조도 유지된다.
다만 유치한 자본금이 기업들이 제시한 인수 가격에 훨씬 못 미치면서 현대그룹의 부채 줄이기는 그만큼 더뎌질 수밖에 없게 됐다.
오릭스가 자본 유치를 통해 보유하게 된 경영권 지분 30%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릭스가 STX에너지의 경영권 지분을 팔았듯 큰 차익을 남기고 팔아넘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오릭스는 2013년 STX그룹에 3600억 원의 자본을 수혈한 뒤 STX에너지의 공동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STX에너지 경영권 지분을 점차 늘렸고 이를 GS그룹에 팔아 큰 차익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