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해양오염방지대응전문위원회(PPR)는 18일부터 22일까지 올해 첫 회의를 연다.
이 회의에서는 2020년 1일 실행되는 새 배출가스 규제에 관해 세부지침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항만국 통제(PSC, 자국 항만에 입항하는 외국 선박의 국제기준 준수 여부 점검), 배출가스 세정 시스템의 구체적 기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2020년 새로운 규제를 이행할 지 여부는 5월 국제해사기구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가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해양오염방지대응전문위원회가 미리 기술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이번 회의에서 안건을 결론짓지 못하면 논의는 규제가 이미 시행되고 난 뒤인 내년으로 미뤄질 수도 있다.
국제해사기구의 한 임원은 트레이드윈즈와 인터뷰에서 "짧은 시간에 논의하기에는 다뤄야 할 이슈가 많지만 만약 이번 회의에서 기술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으면 내년 1월 업계가 혼돈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슈로는 스크러버(황산화물 세정장치) 관련 기준의 개정 여부가 꼽힌다. 새 환경규제를 준비하기 위해 국제해사기구는 2015년 마련된 스크러버 관련 지침을 다시 살펴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스크러버는 선박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을 정화하는 장치다. 국제해사기구가 2020년부터 황산화물 배출량을 더 엄격히 제한하기로 하면서 LNG추진선, 저유황유 사용과 함께 대응책의 하나로 꼽힌다.
다만 가격이 싸 가장 많이 쓰이는 개방형(Open-loop Type) 스크러버는 바닷물로 배기가스를 씻어낸 뒤 다시 배 밖으로 내보내다 보니 해수를 오염한다는 논란을 낳고 있다.
그러나 국제해사기구는 아직 스크러버의 세부적 종류를 구분하지 않는다. 선사들로서는 배에 어떤 종류의 스크러버를 달아야 할지, 스크러버를 포기하고 LNG추진 방식으로 발주해야 할지 등을 놓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선박을 발주하면 인도시점은 2020년 이후가 되는데 배를 인도받을 때가 되면 새로운 지침이 나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선사들은 새로운 환경규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환경규제와 관련한 혼란은 선주들로 하여금 새 환경규제에 대응하는 선박 건조 투자를 미루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214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 그쳐 지난해 1월보다 40% 줄었고 지난해 월 평균 발주량에도 다소 못 미치는 등 증가세가 주춤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3사는 선주들이 배 주문을 망설이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조선3사는 지난해 상선 수주를 늘리며 회복기에 접어들었으나 이런 흐름이 이어지려면 올해 선사들의 발주량이 중요하다.
조선업계에서 오래 근무한 한 관계자는 "업황이 살아나고는 있지만 마냥 낙관하기는 어렵고 지금이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올해 얼마나 많은 배를 새로 수주할 수 있을지가 조선업 부활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일에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13쪽 짜리 보고서를 통해 "국제해사기구가 일관되고 분명한 규제기준을 빨리 개발할수록 관련 산업과 행정이 받을 경제적 충격도 덜해질 수 있다"며 "이는 시급한 문제"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새로 마련될 기준은 선주들이 기술적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를 돕고 몇 년 안에 추가적 조치를 해야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현재 국제해사기구는 스크러버 배출수의 샘플링과 모니터링 기준 및 질산염 농도 측정기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스크러버가 고장난 배가 계속 고유황유를 연료로 써 항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결함을 수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지 등을 두고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