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갑횡포와 횡령·배임' 논란에 휩싸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배하는 대한한공과 한진칼에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실행하려면 금융위가 먼저 10%룰 등이 규정된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자 대응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가 국민연금을 대상으로 10%룰을 완화해주는 것이 가장 좋지만 당장 시행령 개정이 어렵다면 유권해석으로라도 스튜어드십코드 적용에 한정해 예외를 인정받을 방법을 복지부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가 모색한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는 사항을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다"며 "국민연금 운영위원회와 함께 관련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금운영위원회는 금융위에 일시적으로 적극적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를 위해 지분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꿔야 하는지와 경영참여 목적일 때 단기 차익 반환 의무의 예외를 적용받을 수 있는지를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172조 5항과 시행령 제198조에 따르면 법령, 정부 인허가 등 불가피한 때나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인정한 때는 단기 매매차익 반환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규정도 있어 시행령 개정 없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적용할 여지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영참여 목적으로 기업 지분을 10% 이상 소유한 주요 주주는 신고일 기준으로 기업 주식을 매수한 뒤 6개월 안에 그 주식을 팔았을 때와 기업 주식을 매도한 뒤 6개월 안에 그 주식을 사들였을 때 얻은 단기 매매차익을 기업에 돌려줘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현재 제도 아래에서도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른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큰 문제가 없다고 바라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코드는 기본적으로 장기투자에 목적을 두고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10%룰에서 요구하는 단기 매매차익 반환 문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으로 장기적 수익성을 높이고 주주권 행사에 독립성과 투명성을 향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국민연금에 2018년 7월 도입됐다.
스튜어드코드십에 따른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는 사내이사 해임, 사외이사의 신규 선임, 정관이나 자본금 변경 등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제안할 권한을 말한다. 재임하고 있는 이사의 연임 반대 등 단순 의결권 행사는 일반 주주권으로 분류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적극적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필요성을 강조한 데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대한한공과 한진칼에 스튜어드십코드를 충실히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현행 자본시장법과 시행령 아래에서는 단기매매차익 반환 등을 규정한 '10%룰'이 걸림돌이 돼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수탁자책임전문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과 의결권 행사를 검토해 자문하는 조직으로 의견에 강제력은 없지만 완전히 배제하기도 힘들다.
증권가에서는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대한항공과 한진칼뿐만 아니라 낮은 배당 성향을 보인 기업들도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만한 기업으로 대한항공과 한진칼 외에 대림산업, 현대그린푸드, 남양유업 등도 꼽았다.
현대그린푸드, 남양유업은 2018년 4월 이미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배당성향이 낮고 합리적 배당정책 공개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한다는 이유로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밖에 국민연금이 지분을 5% 넘게 들고 있는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지주, 현대미포조선 등도 배당여력이 충분하지만 2017년 이익을 전혀 배당하지 않아 스튜어드코드십 행사의 대상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