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9-01-28 14: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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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가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최대 19.9% 확보한다. 2014년 에쓰오일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에 올라선 뒤 4년 남짓한 시점에 또 다시 한국 정유회사에 큰 규모로 투자했다.
아람코는 석유화학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 국내 정유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탈석유화정책’에 발맞추면서 배당금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 아민 알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
28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아람코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입에 약 1조8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지주가 2018년 말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공개 추진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아람코는 지분 취득에 관심을 보였다.
사전기업공개(프리IPO) 방식으로 취득하는 방안도 아람코가 먼저 현대중공업지주측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획대로 지분 매입이 이뤄지면 아람코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19.9%를 확보해 2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지분율에 맞춰 이사 수를 배정받아 현대오일뱅크 경영에도 참여하게 된다.
아람코가 국내 정유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2014년 말에 에쓰오일 지분을 추가로 매입한 뒤 약 4년여 만이다.
아람코는 2014년 말에 한진에너지가 보유하고 있던 에쓰오일 지분 28.4%를 약 2조 원에 사들였다. 기존에 특수목적법인 A.O.C.B.V를 통해 지분 35%를 들고 있었는데 추가 매입으로 에쓰오일 지분율이 63.4%까지 높아졌다.
아람코의 한국 정유회사 지분 매입은 석유사업 비중을 줄이려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정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제1왕위 계승자(왕세자)는 2016년 4월에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을 개혁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비전 2030에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신에너지와 건설 등에서 새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과거에 원유 판매를 통해 수입을 대거 거뒀지만 셰일가스 생산 등으로 원유 가격이 낮아지자 재정 수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재정 확충을 위해 안정적 수익원을 찾고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산업과 시너지가 가능한 국내 정유업계를 관심있게 살펴온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정유기업으로 분류됐던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수 년새 석유화학분야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정유사업만으로는 더 이상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석유화학분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정유기업들은 정유를 가공한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데 일정 부분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데다 석유화학제품이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8년 5월에 롯데케미칼과 손잡고 중질유 석유화학시설(HPC) 설립에 함께 2조7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중질유 석유화학시설에서는 '석유화학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올레핀을 생산하게 된다. 올레핀은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의 소재로 쓰인다.
아람코가 최대주주인 에쓰오일은 석유화학기업으로 변신 속도가 매우 빠르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을 통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모두 4조 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울산에 석유화학공장을 만들었는데 2023년까지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등 고부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생산을 위한 스팀 분해시설 건설에 또 5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의 지분을 들게 되면 아람코는 석유화학산업에서 안정적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 정유기업들이 그동안 주주들에게 비교적 통 큰 배당을 했다는 점도 아람코가 눈여겨봤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오일뱅크는 2015년에 3064억 원, 2017년에 6372억 원을 현금으로 배당했다. 당시 배당성향(순이익 가운데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의 비율)은 각각 70%, 73.4%를 보였다.
에쓰오일도 2015~2017년에 모두 1조6884억 원을 배당했는데 평균 배당성향이 50%를 넘었다. 아람코가 에쓰오일에서 배당으로 받아간 금액만 최근 3년 동안 1조 원이 넘는다.
정유기업들이 앞으로도 기말배당뿐 아니라 중간배당까지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대오일뱅크 지분 확보는 아람코에게도 좋은 조건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