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기아차 대표이사를 맡을 때 자동차의 디자인을 앞세운 경영으로 성공해 전문경영인 못지않은 능력을 입증했다.
정 수석부회장의 ‘디자인경영’은 꾸준히 현대차의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폴크스바겐그룹 출신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이를 직접 구현하고 있다.
▲ 루크 동커볼케 현대기아차 디자인최고책임자(왼쪽),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 |
27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는 연구개발본부 산하 조직으로 디자인담당이라는 부서를 두고 있다.
디자인담당은 현대디자인센터와 기아디자인센터, 디자인지원담당 등을 거느리고 있다. 사실상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디자인을 총괄한다.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이 이 조직을 이끈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2018년 10월 말에 실시된 인사에서 현대디자인센터장을 맡다가 디자인담당 임원에 선임됐다. 직책 이름은 디자인최고책임자(CDO)다.
기존에 현대기아차의 디자인을 총괄했던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현대기아차 디자인경영담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동커볼케 부사장이 후임자를 맡게 됐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2015년 말 현대차에 영입됐다.
현대차에 입사하기 이전에 폴크스바겐그룹 산하의 영국 고급 수제자동차 제작기업 벤틀리의 수석 디자이너를 맡으며 '스타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명성을 얻었다.
1990년 프랑스 자동차기업 푸조에서 처음으로 자동차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는데 1992년 폴크스바겐그룹 아우디로 이직한 이후 20여 년 동안 스코다와 람보르기니, 세아트 등에서 브랜드 선행디자인과 디자인 총괄을 맡았다.
현대차그룹이 피터 슈라이어 사장에 이어 동커볼케 디자이너까지 영입한 것은 그만큼 디자인경영에 힘을 싣고 이를 실행에 옮길 적임자를 적극적으로 찾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앞으로 현대차의 새 디자인 철학을 구현하는 데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18년 부산모터쇼에서 10년가량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이었던 ‘플루이딕 스컬프쳐’보다 한 단계 진보한 정체성과 지향점을 담은 ‘센슈어스 스포티니스’를 발표했다.
센슈어스 스포티니스는 비례와 구조, 스타일링, 기술의 4가지 기본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뼈대로 하며 현대차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가 미래로 연결될 감성적 혁신을 지향하는 디자인이라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현대차의 새 디자인 철학을 실무영역에서 구체화하는 인물은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 전무다.
이 전무는 벤틀리에서 일하다가 2015년 5월에 현대차로 영입된 인물로 동커볼케 부사장과 마찬가지로 현대차에 합류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이 전무는 한국 출신의 자동차 디자이너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블록버스터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범블비’ 차량인 카마로의 외장을 직접 디자인해 유명세를 얻었다.
이 전무는 1969년 생으로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트센터디자인대학의 자동차 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페라리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인회사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와 독일 포르쉐 디자인센터에서 경험을 쌓았다.
1999년 선임디자이너로 제너럴모터스(GM)에 입사한 뒤 미국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카마로와 콜벳스팅레이 등의 콘셉트카 디자인을 주도하며 주목을 받았다.
2010년 폴크스바겐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뒤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스코다 등에서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으며 2012년 말부터 벤틀리의 외장과 선행디자인 총괄을 맡았다.
이 전무는 최근 현대차가 시장에 새로 출시하는 차량 발표회에 직접 나서 디자인에서 중점을 뒀던 요소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디자인센터장으로서 입지를 빠르게 다지고 있다.
이 전무는 그의 직속 상사인 동커볼케 부사장과 벤틀리에서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다.
벤틀리 플라잉스퍼와 컨티넨탈GT, 벤테이가 등은 그가 동커볼케 부사장과 함께 디자인한 차량들이다.
현대차그룹의 디자인을 이끄는 폴크스바겐 출신 디자이너는 또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2006년 직접 영입한 피터 슈라이어 사장도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맡다가 현대차그룹에 영입된 인물이다.
슈라이어 사장은 기아차의 최고디자인책임자로 수 년 동안 일하며 K시리즈로 유명한 기아차의 세단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랑이코’로 잘 알려진 K시리즈 세단의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슈라이어 사장은 2018년 9월 말 실시된 인사에서 신설된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을 맡고 있다. 기존에 디자인 업무만 담당했는데 앞으로 현대기아차를 포함해 그룹 계열사의 주요 제품 디자인 방향을 총괄하는 쪽으로 업무가 확대됐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