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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세 명의 대표이사. 왼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 |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LG전자와 LG상사에 각자대표 체제를 도입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삼성전자의 각자대표 체제를 의식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삼성전자는 2013년 3월 권오현 부회장이 부품 부문을, 신종균 사장이 IT모바일 부문을, 윤부근 사장이 소비자가전 부문을 총괄하는 3인 각자대표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체제를 앞서 도입한 곳은 LG화학이었다. LG화학은 2012년 3월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박진수 부회장이 석유화학 부문을, 권영수 사장이 전지사업 부문을, 박영기 사장이 정보전자소재 부문을 맡는 3인 각자대표 체제를 출범했다.
삼성전자와 LG화학은 전문경영인이 각 사업부문별로 각자 대표이사로 맡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사업부문 별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또 각자대표 가운데 한 명이 회사 전반을 총괄하는 CEO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똑같다.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이, LG화학은 박진수 부회장이 CEO 역할을 함께 맡고 있다.
선택은 똑같았지만 두 회사가 받은 성적표 결과는 사뭇 달랐다.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연이어 경신하며 각자대표 체제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LG화학은 각자대표 제도 도입 이후에도 좀체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원조의 체면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합격점 받은 삼성전자의 ‘쓰리톱 체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28조6900억 원, 영업이익 36조7800억 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의 실적이었다. 지난해 3분기에 매출 59조 원 매출과 영업이익 10조1600억 원을 거둬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4분기에도 매출 59조2800억 원에 영업이익 8조3100억 원을 달성해 나름대로 선방했다.
삼성전자의 이런 실적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조직개편을 통한 체질개선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하면서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전문경영인 책임경영을 한 것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각자대표 체제를 고민한 것은 2012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2012년에도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삼성전자의 2012년 매출은 201조1000억 원이었고 영업이익은 29조493억 원이나 됐다. 당시 업계는 삼성전자가 곧 매출과 영업이익 ‘200조-30조 클럽’의 반열에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됐다. 매출 200조 원을 넘긴 거대기업을 대표이사 한 사람이 총괄해 맡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 수 있는가 하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각 부문은 웬만한 10대 그룹의 그룹 실적을 상회하는 성과를 냈다. 휴대폰을 담당하는 IT모바일(IM)부문은 2012년 108조5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같은해 롯데그룹의 전체 매출 82조 원보다 무려 26조 원이나 많았다.
삼성전자는 당시 최지성 부회장과 권오현 부회장의 ‘투톱 체제’로 운영됐다. 최 부회장이 완제품(DMC)부문을 맡고 권오현 부회장이 부품(DS)부문을 담당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최 부회장이 2012년 6월 미래전략실로 이동하면서 권 부회장 홀로 삼성전자를 책임지게 됐다. 이에 따라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삼성전자는 일단 2012년 말 완제품 부문을 둘로 나눴다.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에게 각각 소비자가전(CE)부문과 IT모바일 부문을 맡겼다. 윤 사장과 신 사장은 당시 대표이사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독립적으로 사업부문을 경영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이런 과정을 통해 3인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했다. 윤 사장과 신 사장을 모두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각 사업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대표이사의 권한을 부여해 책임경영을 더욱 강화했다”고 말했다. 곧 삼성전자의 사업 부문별 3인 각자대표 체제는 과도기를 거쳐 구축되는 과정을 거쳤다.
◆ ‘원조의 힘’ 보여주지 못하는 LG화학
LG화학은 삼성전자보다 먼저 3인 각자대표 체제를 도입했다. LG화학은 2011년 12월 전지사업본부를 신설하고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지낸 권영수 사장을 사업본부장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LG화학은 석유화학사업본부와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 전지사업본부 3개 사업부문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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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화학을 이끌고 있는 세 명의 대표이사. 왼쪽부터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화학 사장, 박영기 LG화학 사장 |
이어 2012년 3월 주총을 통해 3인 각자대표 체제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LG화학은 주총 이후 이사회를 열어 박진수 부회장과 박영기 사장, 권영수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세 사람은 이미 석유화학부문과 정보전자소재부문, 전지부문을 각각 독립적으로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존에 LG화학을 혼자 이끌어왔던 김반석 부회장은 2012년 11월 대표이사직을 유지한 채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만 맡기로 했다. 대신 박진수 부회장이 CEO 역할도 겸하기로 했다. LG화학의 3인 각자대표 체제는 지난해 3월 김 부회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하면서 완성됐다. 삼성전자와 똑같은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각 부문별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만큼 책임경영 강화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이 사실상 삼성전자보다 먼저 3인 각자대표 체제를 도입했지만 성과는 그렇게 좋지 않다. 2012년 LG화학은 매출 23조2630억 원, 영업이익 1조9103억 원을 달성했다. 2011년에 비해 매출은 2.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2.2%나 줄어들었다. LG화학은 당시 “세계적 경기 침체로 석유화학부문과 전지부문의 수익성이 둔화됐지만 전반적으로 업황이 부진한 점을 고려했을 때 선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2013년 매출목표를 전년 대배 6.9% 증가한 24조8600억 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LG화학은 지난해에도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매출은 23조1436억 원을 기록해 목표 달성은커녕 2012년보다 줄었다.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8.8% 줄어든 1조7430억 원에 그쳤다. LG화학은 경기 회복이 지연된 데다 지난해 원화 강세로 실적 개선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과를 놓고 업계는 기업의 규모가 커진 만큼 각자대표 체제는 그에 걸맞은 책임경영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드시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성과는 제도가 아니라 CEO 개개인의 역량 문제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로마가 제국으로 나아갈 때 카이사르는 오히려 황제의 통치가 더 타당하다고 봤다”며 “책임과 권한의 적절한 분배의 문제이지 어떤 제도가 효과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