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오전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KB국민은행 노조 조합원들이 총파업 선포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만약에 은행원이 임금 및 단체협상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파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하면 은행 노동자들에게는 단체행동권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8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을 가득 채운 분위기를 놓고 박홍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박 노조위원장은 기자가 “직원들 사이에서 파업 명분을 놓고 확실한 공감대가 만들어진 건 충분히 알겠는데 사회적 명분을 얻었는지를 놓고는 다소 이견이 있을 것 같다”고 질문하자 “모든 노동자는 노동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지니고 있다”고 잘랐다.
7일 밤 9시부터 밤샘 집회가 이어졌지만 학생체육관은 활기가 넘쳤다.
체육관 내부는 물론 복도와 화장실 앞, 체육관 외부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19년 만의 파업으로 외부의 시선이 따가운 만큼 분위기가 다소 무거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곳 학생체육관은 평소에는 ‘서울 SK 나이츠’ 농구단의 홈구장으로 사용된다. 좌석 수는 7700여 석이다. 노조는 농구 코트 위에도 1500석의 좌석을 설치했다.
좌석 대부분이 들어찬 데다 복도와 건물 밖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인원을 더하면 회사 측이 제시한 5500여 명보다는 노조 측이 제시한 9천여 명에 가까워 보였다. 화장실마다 줄도 길게 늘어섰다.
박 위원장도 "처음엔 한 1천 명 올까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종종 대열 이탈을 만류하는 노조의 방송도 나왔지만 우려만큼 이탈은 많지 않아 보였다.
대부분은 전날 저녁 버스를 통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준비해온 간식 등으로 허기를 달래고 복도에 침낭과 텐트 등을 설치해 밤을 보냈다. 아침은 도시락, 컵라면 등으로 때웠다. 좌석에 여유가 많지 않아 들고 온 고무매트 위에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도 많았다.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꽁꽁 싸맨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언론의 취재는 부담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파업에 참가한 대다수 직원들이 익명을 전제로 해도 인터뷰를 피했다.
KB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아무래도 다들 부담스러워 해서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 매체에서 ㄱ씨, ㄴ씨 등으로 보도하겠다고 했지만 인터뷰에 응하려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전모(남)씨는 “조합원이라서 당연히 가야하는 걸로 생각하고 왔다”며 “힘 없는 신입행원과 여성행원을 향한 차별적 관행을 고치자는 노조의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전모씨는 회사가 근태등록을 파업 참가로 하라고 한 점을 놓고는 “노조에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하지 않고 그냥 왔다”고 말했다.
대전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40대 초반의 김모(여)씨는 “지점 차원에서 다 같이 오자고 해서 몇몇을 빼고 많이 왔다”며 “파업에 참가한 이유가 천차만별이지만 분명한 건 떠밀려서 온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본점 직원들은 영업점 직원보다 파업 참가율이 낮았다.
본점 직원 가운데 일부는 영업 일선에서 있을 수 있는 고객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됐다. 본점 사무실에서 영업점에 걸려오는 전화를 돌려 받는 일도 맡았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30대 후반의 이모씨(남, 본점 근무)는 “부서 혹은 본부 차원에서 가려면 다같이 가고 그게 아니면 다같이 영업점 공백을 메꿔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며 “(파업에 가지 않아) 영업점 일을 대신해 싫은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 파업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쟁점들이 타결돼 이번 한 번으로 끝났으면 한다”며 “본점 직원들이 파업에 안 간 게 아니고 영업점 공백 때문에 못 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KB국민은행은 전국 영업점 1058곳의 문을 모두 열었다. 기존 인원이 전원 출근한 곳도 있었고 절반 이상 빠져 상대적으로 인력이 크게 준 곳도 있었다. 다만 본점에서 인력이 투입돼 일상업무에서 큰 지장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