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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장 직선제의 빛과 그림자

김희정 기자 mercuryse@businesspost.co.kr 2014-03-27 15: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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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총장 직선제의 빛과 그림자  
▲ 이수성 제20대 서울대 총장(왼쪽)과 정운찬 제23대 서울대 총장(오른쪽) <뉴시스>

서울대는 해방 후 1946년 경성제국대학에서 이름을 바꿔 출발했다. 미국 육군 대위 출신이 초대 총장을 했다. 서양인 총장은 임기 1년 만에 물러나고, 2대 총장부터는 한국인이 임명됐다. 그 후 18대 총장(조완규, 1987-1991년 재임)까지 모두 정부가 임명했다.


1987년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낸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서울대는 총장 직선제를 도입했다. 1991년 서울대학교는 처음으로 교수들이 직접 총장을 선출했다. 19대 김종운 총장이 첫 직선제 총장으로 당선됐다.


다른 국립대학에도 직접 총장을 선출하는 직선제가 도입됐다. 교수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총장은 떳떳하게 대학을 대표할 수 있는 ‘정통성’을 얻게 됐다. 군사 독재시설 정부의 임명을 받아 얻은 ‘정권의 하수인’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정통성은 서울대 총장에게 정부의 간섭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대학을 운영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직선제 총장들은 치열한 선거 과정을 거쳐야 했다. 선거 공약으로 대학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대학 교수들의 다양한 의견이 선거를 통해 반영됐다. 이 과정에서 대학도 민주화를 실현해 냈다.


이 대목까지 총장 직선제는 확실히 장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부작용도 심각하게 나타났다. 먼저 선거를 통한 파벌조성의 폐해가 문제로 지적됐다.


한 지방 국립대 총장은 “치열한 선거 끝에 총장이 됐지만 반쪽짜리에 불과했다”며 “선거과정에서 반대편에 섰던 교수들과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고, 나를 지지했던 교수들의 부탁은 거부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선거가 구성원을 통합하는 역할이 아닌 파벌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경험적 발언인 셈이다.


한 대학 교수는 “교수 사회의 불신과 반목은 직선제에서 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지방 국립대 총장을 지낸 교수는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학연과 지연 등을 따져 친목을 도모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선거운동 과정에서 표계산을 할 때 이 사람은 고향 후배라 내 표라는 식으로 따지면서 문득 후회가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총장 직선제는 정치판과 똑같은 매커니즘을 대학에 심었다. 총장 선거 2년 전부터 경조사를 챙기고 조직을 만들어야 했다. 자연히 총장에 출마하려는 이들은 연구와 강의를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대 유수택 이사장은 2009년 “출마 예상자들이 장례식장이나 예식장을 다니는 등 총장 직선제는 폐해가 크다”고 말했다.


투표권을 가진 교수들과 접촉해 최대한 얼굴을 알리고 표밭을 다지기 위한 사전 선거운동인 셈이다. 4년의 총장 임기 중 절반이 지나면 슬슬 경조사를 돌며 출마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은 정설로 굳어졌다. 총장을 지낸 한 지방대 교수는 “해외 학회를 다녀올 때는 선물을 준비해야 했고 각종 경조사에 뛰어다니느라 경제적 부담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직선제 이후 두 번째 서울대 총장인 20대 이수성 총장은 결혼식 주례로 유명하다. 이 전 총장이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주례 없으면 이수성 교수에게 가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수성 교수의 마당발은 총장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5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큰 표 차로 승리했다. 당시 선거를 지켜 본 서울대 관계자는 “말로만 듣던 이수성의 정치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 판이었다”고 평가했다.


총장 직선제 체제에서 교수가 많은 단과대학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단과대학 교수를 총장으로 밀려는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났다. 실제로 서울대에서 직선제로 뽑힌 7명 중 3명이 공과대학 출신이라는 점이 이런 분위기를 입증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교수 수가 적은 단과대학 교수가 서울대 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합종연횡’ 같은 선거공학 전술이 반드시 필요했다.


서울대 23대 정운찬 총장은 인원이 적은 사회대학 교수라는 열세를 극복하고 총장에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평소 꾸준히 인맥관리를 해온 힘이 컸다. 정 전 총장도 스스로 “20여 년 동안 형제같이 지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어떤 도움을 받은 것일까?


김종인 교수는 2009년 월간지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백성학 회장이 서울대학교 병원장에게 의과대 교수 표가 정운찬 교수에게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박용현 서울대 병원장이 실제로 정 교수를 도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1200여명의 서울대 교수 중 의대 소속은 300여 명이나 된다. 이 사실은 2009년에 열린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 창업 50주년 축하연’에서도 언급됐다. 신동아의 보도에 따르면 백 회장은 “내가 앞장서서 정운찬 교수가 총장이 되도록 뛰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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