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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2012년 4월 취임 이후 첫 번째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형제경영’의 막차를 탔다. 5남 박용만 회장은 2012년 4월 4남 박용현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두산은 박두병 초대 회장의 유언대로 ‘형제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장자부터 돌아가며 경영권을 맡는 방식이다.
그러나 위기도 맞았다. 2005년 2남 박용오 회장에서 3남 박용성 회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른바 '형제의 난'이 발생했다. 장남 박용곤 명예회장이 박용오 회장에게 박용성 회장으로 자리를 넘기라고 지시했으나, 박용오 회장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박용오 회장 측의 투서를 불렀고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당시 부회장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두산의 형제들은 박용오 회장을 ‘배신자’로 낙인 찍었다. 그를 가문에서 제명했다. 박용오 회장은 4년 뒤인 2009년 성지건설의 경영난이 겹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용오 회장의 두 아들도 두산 가문에서 제명돼 후계구도에서 논외의 대상이 됐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질까? 포스트 박용만 시대에도 형제경영은 이어질까? 박용만 회장이 3세 경영의 마지막인 만큼 포스트 박용만 시대에는 4세들이 경영을 맡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형제가 아니라 ‘사촌경영’이 이뤄진다. 과연 그때에도 두산의 사촌경영은 여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해 두산이 기로에 섰다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많다. 두산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과 형제경영도 어려운 현실에서 사촌경영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 분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교차한다.
◆ 4세 경영 3강 구도에 박용만 아들 박서원 부상하나
두산은 일단 형제경영에서 사촌경영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정원(53) 두산 회장과 그의 동생 박지원(50) 두산 부회장, 박용성 전 회장의 아들 박진원(47) 두산 사장이 두산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기다리고 있다. 두산은 두산그룹의 지주사다.
그런데 최근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36) 빅앤트인터내셔널(빅앤트) 대표가 사촌경영의 후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1월 박서원 대표의 회사가 두산의 계열사로 편입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월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등의 소속회사 변동현황’에 따르면 두산그룹이 박서원 대표의 광고회사 빅앤트를 계열사로 편입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총수 단독이나 총수와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이 발행 주식의 3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의 경우 계열사에 포함된다. 빅앤트는 박서원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그룹 계열사 편입을 통해 박서원 대표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촌경영의 대열에 끼어들게 된 셈이다.
박용만 회장은 취임 직후 사촌경영을 위한 판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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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원 (주)두산 회장 |
박용만 회장은 취임 두 달 뒤인 2012년 5월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을 지주사인 두산 회장으로 임명했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 가문 3세의 맏이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아들로 4세 중에 가장 연장자다.
박정원 회장의 동생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 역시 같은 시기에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 세번째 주자인 박진원 사장은 지난해 9월 지주사 두산에 합류했다. ‘두산산업차량’과 ‘엔셰이퍼’가 지주사 두산에 합병되면서 두산산업차량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박진원 사장이 자연스럽게 두산의 산업차량사업부문 사장이 됐다.
이 세 명은 다른 사촌들에 비해 지주사 두산의 지분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 주식 133만7013주(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이고 박지원 부회장은 89만1321주(4.27%)를 확보해 뒤를 잇고 있다. 박진원 사장은 76만78주(3.64%)의 지분을 보유해 4세 가운데 세 번째로 많다.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 대표의 이력은 색다르다. 박서원 대표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 친구들과 함께 광고회사 빅앤트를 만들었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국제 5대 광고제를 석권하며 '광고천재'로 떠올랐다. 박용만 회장의 아들로 밝혀진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후광이 싫다며 독자적으로 광고회사를 운영해 왔다.
박서원 대표는 광고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때문에 박서원 대표도 두산그룹 사촌경영의 자리를 차지할 자격을 갖췄다는 시각이 많다. 대중적 인기와 경영능력을 겸비한 박용만 회장을 빼닮았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지주사 두산의 회장, 부회장, 사장을 맡고 있는 사촌들과 비교하면 그룹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아직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박정원 회장, 박지원 부회장, 박진원 사장이 40~50대의 나이이고 20년 이상 두산그룹의 요직을 거치면서 경영수업을 받아온 점을 고려하면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서원 대표가 경영을 했다고 해도 그가 운영했던 광고회사는 직원이 스무 명 남짓한 작은 조직이다.
또 박서원 대표 앞에는 많은 사촌들이 버티고 있다.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 박태원 두산건설 부사장, 박형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박인원 두산중공업 상무 등 쟁쟁한 사촌들이 버티고 있어 두산그룹이 사촌경영으로 가더라도 그 순서는 한참 뒤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형제경영보다 어려운 사촌경영, 순조로울까
두산그룹이 과연 사촌경영을 할 수 있을지도 큰 관심이다. 형제경영 과정에서도 이미 한차례 피를 흘린 두산그룹이다. 그런데 형제경영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사촌경영을 과연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들게 한다. 대를 내려갈수록 후계자도 많아지고 결속력도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두산그룹은 3세경영 때 법조인인 장녀 박용언 씨와 막내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을 제외한 5남이 경영권을 차례로 승계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박용오 전 회장의 아들 2명과 다른 형제들의 딸을 제외하고도 9명이 사촌경영의 후보에 올라있다. 9명 모두가 두산 계열사에 자리잡고 있다. 이 9명이 모두 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를지, 어떤 순서로 몇 년의 임기를 지내야 할지 의견이 나뉠 수밖에 없다. 하나에서 열까지 분란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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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
형제에 비해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사촌들이 과연 군소리 없이 그룹 회장이라는 자리를 물려줄 지도 미지수다. 두산그룹 형제의 난도 박용오 회장이 그룹을 다 키웠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애써 키운 그룹의 회장 자리를 큰 형님의 한마디에 넘겨줄 수 없다는 불만이었다. 그런데 사촌의 경우 '제2의 박용오'가 나타날 가능성은 더욱 크다.
한때 재계 인사들은 두산그룹의 계열분리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승계구도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갈등을 막기 위해 계열 분리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형제경영을 가풍으로 여기며 ‘공동소유, 공동경영’을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 원칙이 과연 4세로 내려가 사촌경영에서도 여전히 유효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 포스트 박용만 시대는 언제쯤 열릴까
박용만 회장에서 그룹 회장 자리가 언제 4세에게 넘어갈 것인지도 주목된다. 박용만 회장의 임기는 아직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두산그룹의 회장 임기는 점차 줄어 왔다. 3세 중 장남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임기는 약 13년,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약 9년이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약 4개월, 박용현 전 회장은 약 3년 동안 그룹 회장 자리를 지켰다.
박용성 회장의 경우 형제의 난으로 인해 촉발된 비자금 및 횡령 수사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취임 4개월 만에 불미스럽게 물러났다. 2005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약 3년 동안 두산그룹 회장 자리는 공석이었으나 사실상 박용성 회장이 그 역할을 했다.
박용현 전 회장은 임기 동안 박용오 전 회장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 마음의 고통을 많이 받았다. 의사 출신으로 경영보다는 사회공헌 등에 더 관심을 쏟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용현 전 회장은 취임 직후 “온실에서 정글로 온 기분”이라며 부담감을 표현했다. 퇴임 직후엔 “정글에서 3년 만에 떠나게 되어 후련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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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
하지만 박용만 회장은 전임 박용현 회장과 다르다. 박용현 전 회장이 본업인 의사에 충실하며 그룹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박용만 회장은 1982년 두산에 입사한 뒤 동양맥주, 두산동아,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쳐 두산그룹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다.
또 두산그룹이 소비재 기업에서 지금의 인프라지원사업(ISB 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 중심의 글로벌 회사가 되기까지 수십 건의 인수합병에 관여하며 오늘의 두산그룹을 이끌어 왔다. 따라서 그룹 회장 자리를 짧은 기간에 넘겨줄 것 같지는 않다는 관측이 많다.
박용만 회장이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기에는 나이도 아직 젊다.
박두병 초대회장이 지병으로 사망한 후 두산그룹은 ‘정수창 전문경영인 체제’를 4년간 이어가다 박용곤 명예회장이 회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당시 나이가 50세였다. 이후 페놀 사태로 인해 2년 동안 회장직에서 물러나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도 13년 동안 회장직을 맡아왔다. 박용곤 명예회장이 퇴임할 때 그의 나이는 65세였다. 후임 박용오 전 회장의 경우 60세에 그룹 회장에 올라 69세에 물러났다. 박용성 회장은 66세에 올라 4개월 만에 형식적으로 퇴진했고, 박용현 전 회장은 67세에 올라 70세에 퇴임했다.
그런데 박용만 회장은 60세에 불과하다. 앞에 형님들이 그룹 회장에 오를 나이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두산그룹 전통을 감안하면 박용만 회장은 앞으로 최소한 5년은 더 그룹 회장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뒤에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4세들이 줄 서있다는 점이다. 4세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박정원 회장이 50대를 넘어섰다. 그렇기 때문에 박용만 회장이 4세경영을 위해 이른 나이에 그룹 회장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물론 박용만 회장이 형들보다 일찍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도 두산그룹에서의 영향력은 계속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박용성 전 회장도 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뒤 아직 이르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7년 초 두산중공업의 등기이사로 경영에 복귀한 사례도 있다. 박용성 전 회장은 2008년 중앙대 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두산그룹을 대표하는 인물로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