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반도체기업을 겨냥한 중국 정부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메모리반도체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 공유를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외국언론을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
로이터는 5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중국당국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며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당국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판매법인을 방문하는 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당국이 D램과 같은 메모리반도체 가격담합 혐의를 제기하며 해외 반도체기업을 압박해온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모두 중국당국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구체적 내용과 관련한 언급을 피했다.
노근창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메모리반도체 가격 협상에 직접 개입하며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기업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바라봤다.
중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점점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스마트폰업체 등 제조사들이 약 2년동안 계속된 반도체 가격 상승에 부담을 느껴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중국이 현지 메모리반도체기업을 단기간 키우기 위해 생산 투자를 포함해 기술 확보까지 다방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점도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국언론은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가격 인하를 넘어 현지 반도체기업과 기술을 공유하라는 요구를 내놓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증권사 번스타인을 인용해 "중국당국이 반도체기업들에 직접 기술 지원을 요구해도 놀랍지 않다"며 "반도체 가격 인하 압박을 협상카드로 쓰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을 포함한 D램과 낸드플래시업체들은 수십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로 생산 설비를 모두 갖춰놓았지만 실제로 대량 양산을 시작하는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기업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아 왔던 공정 기술력과 양산 노하우를 중국업체들이 단기간에 따라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최근 칭화유니그룹의 반도체공장을 직접 방문해 "미국과 한국 반도체기업들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력히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반도체기업을 겨냥한 중국 정부의 압박이 일시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 칭화유니그룹의 반도체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시진핑 중국 주석. <신화통신> |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출하량의 20% 정도를 생산한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 공장에서 전체 D램의 절반 정도를 양산하며 최근 증설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모두 중요한 생산 거점인 만큼 중국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중국 정부의 압박에 두 손을 들고 기술을 제공한다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마지막 퍼즐이 맞춰져 중장기적으로 강력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이 해외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한 압박의 강도를 낮추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실질적 타격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닛케이는 시장조사기관 IHS를 인용해 "중국이 자체 반도체 기술 확보에 고전하자 사실상 해외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