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성훈 삼성증권 사장이 서울 모 음식점에서 피해 투자자를 만나 이번 사태를 설명하고 사과하고 있다.<삼성증권> |
2007년 세계 최대의 장난감 회사 마텔(Mattel)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들이닥쳤다.
중국 공장에서 만든 장난감에서 기준치 이상의 납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인체에 유해한 납 성분이 아이들의 손과 입이 닿는 장난감에 들어있다는 것은 마텔이 60여 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 사건이었다.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로버트 에게트는 눈앞이 캄캄했지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사과 동영상을 즉각 홈페이지에 띄우고 방송에 출연해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로부터 받은 조사결과를 낱낱이 알리는 한편 리콜 요령을 상세히 소개했다.
자발적으로 자체 조사범위를 넓혀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파악된 장난감들에도 2차, 3차 리콜을 진행했고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진단 시스템을 강화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에게트 최고경영자가 위기를 풀어갔던 방식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점은 ‘진심’이 담긴 사과였다.
당시 에게트 최고경영자는 사과문을 통해 “아이를 네 명 가진 아빠로서 부모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안전한 장난감을 위해 한 길을 걸을 것이며 추가적 문제가 발견된다면 어떤 작은 문제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고에 따른 사후수습에 구두가 닳도록 뛰어다니고 있는 구성훈 삼성증권 사장을 두고 진정성이 엿보인다는 말이 조금씩 나온다.
구 사장은 피해 투자자 구제방안의 틀이 잡히자마자 투자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과를 하고 있다.
구 사장을 비롯한 임원 27명은 모든 구제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한을 정하지 않고 사과 방문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11일 오전11시까지 591건의 피해투자자가 접수됐다.
삼성증권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입은 피해자들에게는 최대 보상을 결정했다. 구 사장은 ‘보상방안 설명회’에서 “적극적 보상 의지를 담았고 최대한 폭넓은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이번 사고가 벌어진 초기에 대응을 잘못했다는 비난을 거세게 받기도 했다.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과문에 본인을 비롯한 임원진의 관리 실수가 전혀 언급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구 사장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질책했고 원승연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담당 부원장 역시 9일 브리핑에서 삼성증권 경영진의 사과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구 사장은 지체없이 "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구 사장 처지에서 억울한 일일 수 있다는 동정론도 나온다. 그가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삼성증권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삼성증권의 우리사주조합 배당 시스템은 20년 동안 고치치 않아 낡아있었고 구 사장이 이를 미리 알고 손봤어야 했다고 몰아부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구 사장은 도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워낙 사상 초유의 사건인 만큼 대표이사 차원의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삼성증권 사태를 온몸으로 막는 모습에서 평소 차분하고 진솔한 성격이 나타난다는 말이 나온다. 내부 직원들은 구 사장을 ‘선비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구 사장은 삼성자산운용 대표 시절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법을 알리기 위해 직접 광고모델을 맡기도 했다. 당시 구 사장의 진솔한 대화법이 화제가 됐었다.
구 사장은 단기 투자가 횡행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광고모델에 나섰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구 사장이 사고가 마무리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심'을 놓치지 않고 사과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한다면 추락한 삼성증권의 신뢰가 다시 되살아날 수도 있다.
"신뢰에 가치로 답하다."
삼성증권의 브랜드 슬로건이다. 이제 무너진 신뢰에 '진심'으로 답할 때가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