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내수 시장에서 적극적인 수성에 나섰다. 4개월째 시장 점유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자, 새로운 가격 할인 정책을 내세워 점유율을 방어하려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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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멤버스 확대 개편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현대차 곽진 판매사업부장 겸 전무. |
지난 3일, 현대자동차는 자사 멤버십 프로그램 ‘블루멤버스’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개편안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재구매 고객은 자동차 가격의 3%(한도 200만원)까지를 할인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타 제조업체인 한국GM, 쌍용, 르노삼성, 그리고 수입차 업체들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한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그간 천하통일의 기세를 뽐내며 국내 자동차 시장을 호령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 현대·기아자동차 점유율 휘청
현기차 합산 시장점유율은 지난 8월 78.6%로 떨어진 뒤로 좀체 80퍼센트 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3일 업계 발표에 따르면 11월 현대자동차의 내수 점유율은 45.6%(5만4천302대), 기아자동차는 32.7%(3만8천952대)로 합산 78.3%를 기록했다.
이른바 ‘마이너 3사’는 선전했다. 한국GM은 11.8%, 쌍용자동차는 5.5%, 르노삼성은 4.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한국GM과 쌍용차로서는 올해 월간 판매량 최고기록을 갱신한 성적이다.
특히 쌍용차는 올해 누적 내수 증가율이 무려 35.6%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GM을 제외한 나머지 3사가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고, 한국GM의 성적도 1퍼센트 대에 그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수치이다.
쌍용차의 성장 비결은 발빠른 시장 대응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자동차시장은 SUV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소에 따르면 SUV는 북미에서는 43.3%, 중국에서 27.3% 등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SUV는 2년 연속 차급 판매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완성차업체는 올해 들어 9월까지 모두 20만6348대의 SUV를 팔았다. 이는 승용차와 RV(레저용차량)를 합산한 전체 판매량 중 24.6%였다.
SUV 시장이 승용차 시장에 비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11월 SUV 시장에서 마이너 3사는 나란히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GM은 전년대비 27.4%, 르노삼성은 77.3%, 쌍용차는 46.0% 성장했다. 이 중 쌍용차는 체어맨을 제외한 전 라인을 SUV로 채움으로써 시장 트렌드에 응답했다. 뉴코란도C, 렉스턴 등의 SUV를 전면에 내세운 쌍용차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각 모델별 전년 대비 판매량이 뉴코란도C는 22.7%, 렉스턴은 58.7% 증가했다. 코란도 투리스모는 무려 1659.8%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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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 제조사의 11월 전년대비 내수시장 판매량 증감폭 |
◆ 현대차 국내 시장에서 너무 ‘오만’했다.
타사들이 약진하는 동안 현대기아자동차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현대차의 11월 SUV 판매고는 전년 대비 1.8%, 기아차는 4.2% 성장하는 데 그쳤다. 현대차의 경우 대표 모델인 싼타페와 베라크루즈는 각각 -12.1%와 -28.1% 성장률을 보였다. 투싼ix가 14.9% 늘어나 부진을 만회하지 않았더라면 마이너스 성장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현대차의 이러한 부진은 오만의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기아자동차 인수 이후 부동의 1위를 지켜 오면서 현대차는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다.
현대차는 그간 국내 소비자를 홀대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미국에서는 단순 표기 오류로 인한 연비 과장 논란이 일자 즉시 사과 및 보상 방법을 공식 발표했으며 뉴욕타임스 등의 유력 일간지에 사과 광고를 게재했다. 국내에서 싼타페 누수 논란이 일었을 때, 현대차는 누수 피해 차주들이 분통을 터뜨릴 만큼 오랫동안 문제 자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가 파장이 커지자 한 달여 만에 대책을 발표했다.
분노한 소비자들에게 공식 사과문을 내놓기까지는 2개월 가까이 걸렸다. 양국간의 법규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출용 차량에는 더 진보된 에어백을, 내수용 차량에는 구형 에어백을 장착한 것은 2011년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홀대받은 국내 소비자들은 현대차에 대한 불신으로 응답했다. 일례로 싼타페의 경우, 지난 6월 본격화된 누수 논란으로 ‘수타페’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이후 아직도 명예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상의 SUV 동호회에 싼타페와 코란도C, 스포티지R 중 어느 차량을 구입할지 고민이라는 글을 올린 한 소비자는 ‘싼타페를 선택하면 나머지 두 차량의 단점을 모두 커버하는데, 가격과 누수 건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고자동차 포털 사이트 보배드림에 올라온 ‘절친한 친구가 수타페를 샀습니다’라는 글에는 ‘당해보면 알겠지요’, ‘습한 걸 좋아하시나보네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 홀대받은 국내 소비자 현대차 불신으로 응답
불량으로 리콜 등을 거치는 차량은 많지만, 모든 리콜 대상 차량에 소비자들이 이토록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싼타페의 경우 현대차의 늑장 대응으로 파장이 커진 사례이다. “현대차가 처음부터 차주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상황이 나빠지진 않았을 지도 몰라요. 우리가 원하는 건 안심하고 차를 타게 해달라는 거지, 현대차가 망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현대차가 사실을 덮기에만 급급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싼타페 동호회 ‘디엠 러브’의 운영자 강신석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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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싼타페는 차량 누수 때문에 수타페라는 오명을 얻었다. |
시장 점유율 80퍼센트회복을 위한 자구책으로 내놓은 블루멤버스 포인트 개편도 따져보면 안이한 대책이다. 최대 적립 한도인 3%까지 포인트를 적립받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6회 재구매해야 하는데, 멤버십 포인트의 유효 기간은 5년이다. 일반적인 경우 5년간 자동차를 6회나 교체하기란 쉽지 않아, 실질적인 혜택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타사의 12월 프로모션과 비교하면 블루멤버스의 혜택은 더욱 효용이 의심스러워진다. 한국GM은 ‘쉐비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을 통해 차량별 최대 200만원의 할인을 제공한다. 쌍용차도 체어맨W 고객에게 280만원 상당의 4륜구동 시스템을 무료 장착해주며 개별소비세 100만원을 지원한다. 수입차 업체들도 적극적 할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혼다코리아는 프리미엄 CUV크로스투어는 700만원을, 시빅 하이브리드는 600만원을 할인해 판매한다. 피아트-크라이슬러 코리아도 200만원부터 최대 800만원까지의 할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비해 재구매 횟수가 적립되어야 200만원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블루멤버십 제도는 적극적인 가격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보기는 어렵다.
자동차 시장에서 선택의 폭이 늘어나면서 현대·기아자동차를 이탈한 고객들이 타 브랜드 차량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현기차가 지금까지의 오만을 내려놓고 전심전력으로 소비자를 공략하지 않는다면 점유율 80퍼센트선 회복의 날은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