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기자 wisdom@businesspost.co.kr2017-09-14 17: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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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회사와 힘겨루기에서 밀리고 있는 것일까?
현대중공업 노조는 현대중공업에서 신설법인 3곳이 분할되면서 덩치가 크게 줄어 힘이 빠진 데다 최근 회사의 유급 순환휴직 방침도 막아내지 못했다.
▲ 백형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14일 “노동조합이 4월 제기한 ‘단체협약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이 11일 서울지방법원에 의해 기각됐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법원은 결정문에서 “존속회사의 사업부문이 분할돼 신설회사가 되면 두 회사의 조직과 구성이 크게 달라져서 단체협약 내용을 그대로 승계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분할 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원 수에서 분할회사 소속이 된 조합원은 최대 10% 안팎에 그친다면서 “1만4천 명으로 구성된 현대중공업 노조와 최대 1500명 정도인 분할법인이 체결할 단체협약은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 승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결정문에 적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4월 회사를 존속법인인 현대중공업과 신설법인인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 등 4개의 법인으로 인적분할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은 현대중공업에서 분할된 신설법인 3곳의 조합원들이 분할 전 현대중공업에서 적용받던 단체협약을 그대로 승계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는데 이 소송이 기각된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3월 말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4사가1노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조규약을 개정하면서 회사가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결국 현대중공업 노조가 쪼개지면서 몸집이 줄어들게 됐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현대중공업 기업분할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매번 노동자들의 단체협약을 포괄적으로 승계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권리와 힘이 약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최근 회사의 인력 구조조정 방안에 반대하면서 부분파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회사는 11일부터 조선사업부 직원을 대상으로 순환휴직도 강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부 일감부족을 들어 9월11일부터 1인당 5주씩 7차례에 걸쳐 2018년 5월까지 순환휴직을 실시하고 있다. 휴직에 들어가는 직원은 월평균 임금의 70%를 받게 된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실무교섭과 통합교섭 등에서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을 입증하지 못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채 직원들로부터 개별동의를 받아 휴직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회사가 인적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한 전 단계를 밟은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순환휴직이 시작된 이상 중단되기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
정부는 조선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입증하면 휴업수당 등을 지원해준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정부의 기준보다 경영상황이 좋아 휴업이 아닌 휴직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휴업은 회사가 회사의 경영상 이유로 시행하는 만큼 노동자에게 임금 일부를 지원하는 것을, 휴직은 사용자가 노동자의 종업원 지위는 유지하지만 일정 기간 그 직무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사용자의 처분을 말한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추석 전에 2016·2017년 통합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을 마무리하기로 했지만 최근 이뤄진 교섭에서 진전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형록 현대중공업지부장 등 현재 현대중공업 노조집행부의 임기는 11월30일이면 끝나 9월 말, 10월에 임원선거가 진행된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회사와 임단협에서 성과를 보지 못한 채 현재 노조집행부마저 물러나게 되는 셈이다. 이때문에 노조가 향후 임단협의 주도권을 회사에 넘겨주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회사는 노조가 기본급 20% 반납에 동의하지 않자 기본급 반납안을 거두는 대신 무급 순환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방안을 최근 내놨는데 향후 노조가 이런 방침에 동의해 기본급 반납 등에 울며 겨자먹기로 동참하게 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