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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란 한국소비자원 시험검사국 식품미생물팀장이 7월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커피믹스제품 가격·품질 비교정보 생산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는 120년이 넘는다.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피했다가 처음 커피를 마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에서 6번째로 커피를 많이 소비한다.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이 전 세계 80개 나라를 대상으로 커피 소비량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지난 한해 동안 11만1906톤에 이르는 원두를 수입했다.
커피 1잔을 뽑아내는데 원두 10g 정도가 쓰이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인들은 지난해 111억9060만 잔을 마신 셈이다. 이를 전체 인구 4900만 명으로 나누면 국민 1인당 연간 228잔의 커피를 마신 것이다.
미국 브라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1~5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10만8051톤으로 9위에 올랐고 중국은 4만4천 톤을 수입하는데 그쳤다.
◆ 커피믹스 출시 30년 만에 시장 장악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커피가 출시된 해는 1970년이다. 이제 유리병에 든 커피는 찾아보기 힘들다. 커피믹스가 전국을 지배한다.
동서식품이 1976년 커피, 설탕, 프림을 함께 넣어 포장한 커피믹스를 내놓기 전 사람들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기 위해 다소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유리병에 들어있는 커피 알갱이를 퍼서 컵에 담은 뒤 프리마와 설탕을 넣어 섞었다.
가정집 찬장에 커피병과 함께 프리마가 함께 세트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유리병에 커피 알갱이가 들어있는 형태를 ‘솔루블(soluble)’ 커피라고 한다. 커피 ,설탕, 프림을 섞은 커피믹스 제품과 구별짓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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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믹스에게 자리를 빼앗긴 유리병에 든 인스턴트 커피 광고 |
커피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체 커피 소비량의 62.6%는 커피믹스다. 솔루블커피는 13.2%, 원두커피는 10% 수준이다.
그러나 커피믹스도 시장에 나온 초창기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97년까지만 해도 솔루블커피 소비량이 커피믹스보다 5배나 많았다.
1990년대 대부분의 회사에서 커피타기는 여직원의 몫이었다. 부서마다 경리업무와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는 여직원이 있었다. 흔히 ‘미스 김’ 등의 호칭으로 불렸던 이들이 담당한 일 가운데 하나가 커피를 타는 것이었다.
이들이 솔루블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첨가하는 과정에서 2:2:1니 2:1:2니 하는 비율이 나왔다. 따라서 누가 커피를 타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랐고 “커피를 맛있게 탄다”는 칭찬도 들었다.
커피믹스의 소비량은 1997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20~30%씩 늘어 2005년 드디어 커피믹스가 솔루블커피를 추월했다. 커피믹스가 시장에 등장한지 29년 만에 솔루블커피를 역전한 것이다.
커피믹스의 약진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IMF사태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기에 한가롭게 커피 비율을 맞출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며 “IMF 구조조정이 커피믹스 시대를 연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여직원이나 부하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부당한 행동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며 “스스로 타 먹을 수 있는 믹스커피의 판매량이 늘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 남양유업, 카제인나트륨 논란으로 시장 진출 성공
남양유업은 2010년 커피믹스시장에 뛰어들며 ‘카제인나트륨’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남양유업은 TV광고를 통해 “화학합성물인 카제인나트륨을 빼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카제인나트륨이 뭔지도 몰랐던 소비자들은 남양유업의 홍보에 귀를 기울였다.
동서식품은 당시 커피믹스 시장의 84%를 점유하고 있었는데 카제인나트륨이 우유에 들어있는 천연 단백질과 별 차이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 근거로 유럽과 미국에서 카제인나트륨이 문제없이 쓰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동서식품은 비방광고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민원을 제기했을 뿐 남양유업처럼 TV광고로 대응하지는 않았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당시 광고를 집행했다면 남양유업 광고비의 두 배 이상을 써야 카제인나트륨의 무해성을 알릴 수 있었고 이는 제품가격 상승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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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유업이 커피믹스를 출시하며 내놓은 광고 |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남양유업의 광고가 식품위생법 위반이라는 견해를 냈고 그뒤 남양유업의 카제인나트륨 광고는 100일 만에 중단됐다.
그러나 카제인나트륨의 유해성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그 덕분에 남양유업은 시장진출 6개월 만에 네슬레를 제치고 커피믹스시장에서 2위로 올라섰다. 2011년 1월 1.7%에 불과하던 시장점유율을을 그해 6월 11.3%로 끌어올렸다.
이 기간 네슬레는 점유율이 2% 감소하는데 그쳤지만 동서식품은 시장점유율이 84.8%에서 77.1%로 7.7% 떨어졌다. 남양유업은 동서식품 고객을 뺏어오는 데 성공한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절대적 과점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출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노이즈 마케팅 논란에도 불구하고 초반 공격적 마케팅 전략이 남양유업의 성공적 시장안착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 커피믹스시장 규모 축소, 인산염 논란은 재미 못봐
남양유업의 카제인나트륨 논란은 남양유업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늘렸지만 커피믹스시장 전체 규모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 이전에 커피믹스시장은 매년 4~5%씩 성장했는데 카제인나트륨 논란 이후 2011년 0.6% 성장에 그쳤고 2012년 0.1% 역성장했다.
한국식품안전연구원은 2012년 3월 뒤늦게 카제인나트륨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결을 내려 이 논란은 마무리됐다.
남양유업은 2013년 신제품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누보’를 내놓았는데 이번에 ‘인산염’ 공세를 펼쳤다.
남양유업은 “프림에 들어있는 인산염은 과잉섭취하면 골다공증 우려가 있다”며 “한국인들은 일일권장량보다 훨씬 많은 인산염을 섭취하고 있어 커피에서만큼 줄여보려고 누보를 선보였다”고 광고했다.
그러자 한국소비자연맹은 인산염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토론회를 마련해 남양유업과 동서식품을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정진 동서식품 마케팅팀장은 “인산염의 안정성은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라며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에 대해서도 소비자 불안심리를 가중시키는 마케팅을 해왔고 이것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 첨가물 안심하세요”라는 소책자를 펴내 “식품첨가물이 몸에 독이 되어 쌓인다는 잘못된 정보가 국민불안을 조장하고 있지만 인체에 유해한 가능성이 0.0001%라도 있으면 정부는 인증을 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인산염이 식약처의 인증을 받은 식품첨가물이므로 안전하다는 뜻이다.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 논란 만큼 인산염 공세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커피믹스 시장점유율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동서식품이 82%, 남양유업은 11.7%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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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시판중인 1회용 커피믹스 한봉지의 절반 가량이 설탕인 것으로 조사 됐다. |
◆ 커피믹스의 절반은 설탕
커피믹스는 다른 한편으로 ‘건강의 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커피믹스의 절반이 설탕인데도 대부분은 영양성분 함량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아 비교하고 구매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7월 구매비율이 높은 커피믹스 12개 제품을 대상으로 성분검사를 벌인 결과 봉지당 설탕 함량이 평균 50%(5.7g)에 이르러 설탕 과다섭취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설탕 함량이 가장 높은 제품은 동서식품 '맥스웰하우스 오리지날 커피믹스'(7.0g)였고, 가장 낮은 제품은 이마트가 자체개발한 PB(Private Brand) 상품인 '이마트 스타믹스 모카골드 커피믹스'(4.9g)였다. 나머지 10개 제품의 설탕 함량은 5.1~6.6g으로 나타났다.
'맥스웰하우스 오리지날 커피믹스'의 경우 하루 2잔만 마셔도 세계보건기구(WHO)의 1일 설탕 섭취권고량(50g)의 30% 수준을 섭취하게 된다.
카페인 함량도 제품별로 최대 2배 가까이 차이났다.
한 봉지당 카페인 함량이 가장 높은 제품은 '이마트 스타믹스 모카골드 커피믹스'(77.2mg)였고, 가장 낮은 제품은 동서식품의 '맥심 화이트골드 커피믹스'(40.9mg)였다.
이마트 스타믹스 모카골드 커피믹스'의 경우 하루 2잔만 마셔도 우리나라 카페인 1일 최대섭취권고량인 400㎎(임산부 300㎎)의 40% 가량을 섭취하게 된다.
커피믹스 한 봉지당 열량은 1일 영양소 기준치(2천㎉)의 2.7%, 총지방과 포화지방은 1일 영양소 기준치(51g, 15g)의 2.9%와 9.3%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소비자원은 "설탕 및 카페인 함량 등에 대한 표시가 없어 영양성분 함량 표시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며 "가공식품으로 카페인이나 설탕 과다 섭취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