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배송 기사와 밤새 불을 밝힌 편의점은 소비 편의를 넘어 '밤의 안전망' 일부가 됐다. 야간노동을 줄이는 것보다 밤에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방법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사진은 생성형 AI 챗GPT로 만든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새벽 골목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배송기사와 밤새 불을 밝힌 편의점은 물건을 전달하고 판매하는 역할에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시간에도 누군가는 골목을 오가고 누군가는 문을 열어놓고 자리를 지킨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도시의 또 다른 '눈'이 돼 어느새 도시를 움직이는 인프라이자 시민을 지키는 안전망의 일부가 됐다.
2024년 11월23일 0시40분쯤 부산 사상구의 한 아파트에서 새벽배송을 하던 쿠팡 배송기사는 화재를 발견하고 신고했다. 신고는 주민 대피와 조기 진화에 도움을 줬다.
이 일을 계기로 부산 사상경찰서는 2025년 1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와 지역사회 범죄예방 업무협약을 맺었다. 24시간 곳곳을 이동하는 배송기사가 범죄와 화재, 치매노인이나 아동의 야간 배회 등 위험 상황을 발견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2022년 부산에서는 새벽배송을 하던 기사가 위험에 처한 여성을 발견해 보호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추가 범죄를 막는 데 도움을 줘 경찰 표창을 받았다.
편의점도 이런 역할을 해내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는 2026년 4월 진주경찰서와 BGF리테일, GS리테일과 편의점 점포를 '아동안전지킴이집'으로 확대하는 협약을 맺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아동이 편의점으로 대피하면 점포에서 임시 보호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이다.
세븐일레븐도 경찰청과 협력해 아동안전지킴이집을 운영해왔다. CU 역시 편의점 결제단말기(POS)를 활용해 실종아동이나 위기 상황을 경찰에 신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새벽배송 기사가 있기 때문에 범죄가 줄어든다거나 24시간 편의점이 있기 때문에 도시가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인적이 거의 사라지는 시간에 골목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고 불을 밝힌 채 문을 열어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도시에는 하나의 편익이다. 새벽배송 기사와 편의점은 이렇듯 뜻하지 않게 '밤의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야간노동을 제한하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25일 야간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를 포함해 연속 7시간 이상 일하는 야간작업에 대해 하루 최대 10시간, 연속 최대 3일, 한 달 최대 12회 등의 기준을 두고 야간작업이 끝난 뒤 최소 11시간의 연속휴식을 보장하도록 했다.
법안의 출발점인 노동자 건강권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교대근무를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2A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생체리듬 교란을 비롯해 장기간 야간근무가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부담 역시 계속 지적돼 왔다.
▲ 쿠팡 직원이 야간배송을 하고 있다. <쿠팡>
하지만 야간노동이 위험하다는 것과 야간노동의 횟수와 시간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것이 가장 적절한 보호 방법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작 법의 보호 대상인 노동자 가운데서는 획일적 제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쿠팡 영업점 단체인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8월26일부터 28일까지 택배기사 33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작업시간을 법으로 제한하는 데 반대한 응답자는 95.9%였다. 야간배송을 월 최대 12회로 제한하는 방안에는 97.7%가 반대했다.
물론 이런 조사만으로 야간노동을 노동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당장의 소득 때문에 장기간 누적되는 건강 위험을 감수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줄이는 것 역시 국가와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일하지 못하게 하는 보호'에 앞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라고 믿는다.
야간노동의 횟수만큼이나 연속휴식 보장과 건강검진, 노동강도와 적정 물량, 대체인력 확보, 야간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등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야간노동은 새벽배송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물류센터와 제조업, 편의점, 숙박업 등 24시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밤에도 일한다. 이 노동을 획일적으로 줄였을 때 노동자의 건강뿐 아니라 소득과 산업 운영, 소비자 편의, 밤 시간대 사회적 기능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함께 계산할 필요가 있다.
야간노동을 줄이는 것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야간노동을 줄이는 것 자체가 노동자 보호라는 등식부터 세워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려면 '밤에 얼마나 덜 일하게 할 것인가'부터 정할 것이 아니라 '밤에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호할 것인가'부터 설계해야 한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