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겸 넥슨 지주회사 NXC 전 대표. 유족이 상속세로 물납한 지분을 지주사 NXC가 자사주로 되사 소각하겠다고 밝혀 '상속세 대납' 뒷말이 나오고 있다. <넥슨> |
[비즈니스포스트] 참 신박한 그림이 그려졌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겠다.
창업자가 사망하자, 유족들은 이전부터 갖고 있었거나 상속받은 지분으로 상속세를 물납했다. 물납이란 일정 요건이 충족될 경우 상속세를 현금 대신 유가증권(회사 주식 등)이나 부동산으로 낼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상속세 물납 이후에도 창업자 배우자는 1대 주주 지위였고, 그 지위로 이후 총수 자리에 올랐다. 자녀가 상속받은 지분까지 합치면, 총수 가족 지분율이 70%에 육박한다.
상속세 물납 전 90%를 훌쩍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긴 했지만,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몇 년이 지난 뒤, 총수 가족이 상속세로 물납한 지분 일부를 회사가 자사주로 되샀다. 개정 상법에 따라 회사는 취득한 자사주를 곧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총 발행주식이 줄어들며 총수 가족들의 지분율이 다시 높아진다.
회사가 이런 식으로 총수 가족들의 상속세 물납으로 정부가 보유 중인 지분을 야금야금 되사 상법에 따라 소각하기를 반복한다면?
총수 가족들의 지분율은 다시 원래 수준으로 높아지고, 총수의 회사 장악력도 원래 상태로 복원된다.
총수 가족 쪽에서 보면, 참 신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정' 내지 '경제 민주화' 잣대로도 그럴 것이냐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사 NXC는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겸 NXC 전 대표 유족들이 2023년 상속세를 납부할 때 물납해 정부(재정경제부)가 갖고 있는 회사 지분 일부를 자사주로 되샀다고 지난 11일 공시했다.
총 발행 주식의 6.68%에 해당하는 18만4001주를 1조227억 원에 되샀다. 주당 가격은 555만8천 원으로 산정됐다.
NXC는 이번에 취득한 자사주를 상법에 따라 오는 6월 중 전량 소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고 김 창업자 유족들은 2023년 상속세를 납부하며 4조7천억 원어치 규모의 NXC 지분(85만2190주.총 발행주식의 29.3%)를 물납했다. 고인이 남긴 재산의 대부분이 NXC 주식이라는 점 등이 감안됐다.
당시 고 김 창업자의 유산은 10조 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배우자와 자녀들이 수조 원대에 달할 상속세를 내기 위해 물려받은 지분의 상당 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물납으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당시 NXC는 언론에 “상속인이 제출한 상속세 신고에 대해 세무당국이 적법하게 (가치)평가를 진행했으며, 그에 따라 상속인들은 상속세 납부의 일환으로 NXC 주식 일부를 정부에 물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물납 후에도, 동일인 및 동일인 관련자는 약 70%(69.34%)에 상당하는 지분율을 유지하기 때문에 NXC의 최대주주로서 회사의 안정적 경영권은 유지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고 김 창업자 유족들의 상속세 납부 이후, 창업자 가족의 NXC 지분율은 98.64%에서 69.34%로 줄었다. 고 김 창업자 배우자
유정현 이사가 33.35%, 두 자녀가 각각 17.16%씩, 두 자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와이키즈가 1.69%를 소유했다.
고 김 창업자 배우자는 이후 대기업집단 넥슨의 동일인이자 NXC 이사회 의장이 돼 실질적 총수 구실을 하고 있다.
이번 거래로 정부 보유 NXC 지분율은 23%대로 낮아진다. 하지만 NXC가 이번에 취득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는 순간 정부 보유 NXC 지분율은 다시 25.68%로 올라간다.
유 의장과 자녀 등 총수 가족들의 지분율도 그만큼 높아진다.
앞서 정부는 고 김 창업자 유족들로부터 물납받은 NXC 지분을 매각하고자 2023년 말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공개 매각 절차를 여러 차례 추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4조 원대에 달할 정도로 덩어리가 큰 데다, 총수 가족 지분이 70%에 육박해 지분을 사가도 사실상 경영 참여를 할 수 없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급기야 NXC가 총수 가족의 상속세 물납 지분을 자사주로 되사준 것을 정부가 고맙게 여기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물납으로 받은 것(553만4천원)보다도 더 비싸게(555만8천원) 팔았다는 의미에서 아주 좋은 매각 사례"라며 "넥슨 측이 외화자금을 가져와 매입했고, 가격도 물납 시 산정된 가격을 상회해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고 김 창업자 유족들과 NXC가 '뒷말' 걱정 없이 이 그림을 계속 그려갈 수 있게 된 꼴이다.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 원칙이 확립된 것도 호재다.
앞서 NXC는 2024년에도 총수 가족 지분 4851억 원어치를 사준 적이 있다.
자사주 취득 목적에 대해서는 당시는 물론 이번에도 '주주가치 제고'를 앞세웠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회사(NXC)가 총수와 가족들의 상속세 물납 지분을 자사주로 되사 소각하는 그림을 앞으로도 계속 그려갈까.
자금 동원 능력은 충분하다. 해마다 수천억 원씩의 영업이익이 쌓이고 있고, 현금화할 수 있는 국내외 투자 자산도 많다.
NXC는 지난해에도 연결 기준으로 9609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기준 회사 자산가치는 19조3467억 원으로 평가됐다.
NXC는 이번에도 국외 투자 자산을 매각해 자사주 취득 자금으로 썼다. 업계에 따르면 NXC는 벨기에 현지법인이 투자한 펫푸드 업체 등을 매각해 이번 자사주 취득 자금으로 동원했다. 구 부총리의 "외화자금" 언급은 이를 가리킨다.
물론 1조272억 원 전부가 외화자금은 아니다.
NXC는 아직도 국내외 투자 자산이 많다. 노르웨이 유아용품 전문업체 스토케, 미국 레고블록 회사 소호블릭스, 국내 최초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 일본 넥슨 등 NXC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가진 곳만도 전 세계적으로 100여 곳에 이른다. 반려동물 사료 업체와 인공 고기 개발업체도 있다.
모두 고 김 창업자가 생전에 투자해놓은 것이다.
| ▲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겸 NXC 전 대표 유족이 상속세로 물납한 지분을 회사가 자사주로 되사 소각하기로 한 것을 국민 눈높이에서 '공정' 잣대로 보면 어떤 평가가 나올까. 앞서 TKG태광 사례 때는 '세금 대납' 논란이 일기도 했다. <넥슨> |
서둘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총수와 가족의 상속세 물납으로 정부가 보유 중인 NXC 지분은 앞으로도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정부가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도 없다.
NXC와 총수 가족 쪽에서 보면, 필요한 기간만큼 정부에 맡겨둔 것이라고 간주해도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넥슨이 호실적 흐름을 잘 유지해 NXC 지분을 물납 당시보다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신호만 주면 된다.
김 전 창업자 유족들의 상속세 물납 시점 이후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등의 실적이 꼬꾸라졌던 것과 달리 넥슨은 호실적을 이어갔다. 덕분에 물납 때 산정된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되사주는 게 가능했다.
NXC가 정부 보유 지분을 자사주로 되사 소각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될 것도 없다. 이사회 의결과 주총 보고 등 법적 절차만 잘 준수하면 된다. 총수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고, 총수 가족의 지분율이 70%를 넘는다.
또 개정 상법은 자사주는 소각을 원칙으로 한다고 못박고 있다.
선례도 있다. TKG태광이 NXC와 같은 행보를 보여왔다.
2020년 박연차 전 태광 회장 사망 뒤, 유족 가운데 배우자와 세 딸은 회사 지분(18.3%)으로 상속세를 물납했다. 다만, 장남 박주환 회장은 상속세를 연부연납(세금 일부를 법정 기한을 넘겨 납부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 방식으로 지분율을 유지했다.
이후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물납받은 TKG태광 지분을 쪼개 팔았고, 회사가 자사주로 매입했다. 나머지 정부 보유 지분도 TKG태광이 자사주로 사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정 상법에 따라 TKG태광이 자사주를 매각하면, 총수(박 회장)의 회사 지배력은 그만큼 커진다.
NXC와 TKG태광 모두 법적으로 문제삼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정부 고민(물납받은 지분 매각)을 해결하고, 주주 가치 제고에 앞장섰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문제는 '국민 눈높이'이다. NXC가 이번처럼 정부 보유 지분을 자사주로 되사 소각할수록 총수 가족의 회사 지분율과 지배력이 높아지고, 이런 식으로 정부 보유 지분을 모두 처리하면 총수 가족의 지분율과 지배력이 상속세 물납 이전으로 복원되는 그림을 '공정하다'고 설명할 수 있는지가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자칫 오너 상속세 대납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TKG태광이 오너 가족들의 상속세 물납 지분을 자사주로 되살 때도 이런 논란이 일었다.
두 경우 모두 총수 가족 지분율이 높아, 주주 가치 제고는 곧 총수 이익 증대로 이어진다.
NXC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앞으로 (정부 보유 지분을 자사주로) 추가 취득할 것인지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신박하기는 넥슨 지배구조도 마찬가지다.
사업 회사(넥슨코리아)는 한국에 있고, 중간 지주회사(넥슨)는 일본에 있고, 총수가 직접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행사하는 지주회사 NXC는 한국(제주도)에 있다.
이에 지금도 넥슨의 국적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기도 한다. 넥슨이 일본 기업이고 일본 증시에 상장돼 있으니 일본 국적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사업 회사와 최상위 지주회사가 한국에 있고 총수가 한국 국적이니 한국 기업으로 봐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
국외 시장에 진출하거나 우리나라 정부 규제를 피해야 할 때 등에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의도를 갖고 설계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넥슨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우리나라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나라에선 한국 기업이고 한국 게임이라고 하고,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일본 기업과 일본 게임이라고 행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부작용도 있다. 한국에서 낸 이익을 일본으로 빼돌린다는 지적에 휩싸이곤 하는 게 대표적이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