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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AI로 뚝딱 찍어 보내는 '공장형' 글·그림·명절 인사를 사절한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28@businesspost.co.kr 2025-10-20 10: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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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기자로써 '개인적으로' 어떤 의문이나 호기심을 갖고 컬럼이나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고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장식할 지를 놓고 머리를 쥐어뜯는 경우가 많다.

단어 선택은 물론 수식어와 형용사를 넣을 지 말 지를 놓고 고민하며 썼다가 지우고 빼고 다시 넣고 바꾸기를 반복한다.
 
이동전화 문자메시지나 SNS(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등)를 통해 안부를 묻거나 명절 인사를 전하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의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담백하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말을 담기 위해 애쓴다. 문자 만으로 할 지, 이모티콘이나 그림을 더할 지 등을 놓고 고민을 하기도 한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AI로 뚝딱 찍어 보내는 '공장형' 글·그림·명절 인사를 사절한다
▲ 생성형 AI 활용 대중화 흐름에 따라 AI 남용 병폐도 커지고 있다. 짜증 유발을 호소하기도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혹자들은 30년 이상 기자로 기사와 컬럼을 써왔으니 이제는 술술 쓰겠다고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20~30자짜리 인사 문자를 보낼 때도 썼다가 지우고 다듬기를 반복할 때가 많다.

세계 최고봉들을 줄줄이 오른 산악전문가가 북한산 자락을 오를 때도 숨을 몰아쉬고 힘들다고 했다. 장편소설을 여러 편 펴낸 유명 소설가는 신문에 기고할 원고지 10매 분량 글의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해 국민체조를 여러번 한 적이 털어놨다.

화가는 하얀 캔버스에 첫 붓질을 할 때까지 머리를 쥐어뜯고, 국민체조를 하며 마음을 다잡는 과정을 얼마나 반복할까.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글과 인삿말과 그림은 거칠고 투박해도 가슴에 와 닿는다. 마음이 전해지고, 웃게 만든다.

그럼 이런 과정이 생략된 글, 인사 문자, 그림은? AI에 맡겨 뚝딱 만들었다면?

SK텔레콤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KT 휴대전화 무단 소액결제와 해킹, 국가정보자료관리원 대전 본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 따른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를 겪고 추석 명절을 보내며 경험한, AI 남용 짜증 사례를 털어놓고 싶었는데, 들머리가 길었다.

내 무능력 및 새로운 기술 흐름에 대한 적응 장애 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리 '개인적으로'란 전제를 달았다.

이른바 사태, 사건, 사고 등이 일어나면, 기자들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찾아, 그리고 드러난 게 팩트인 지와 전부인 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해당 분야 전문가를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보통은 시민(독자)들의 의문과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다른 기자들보다 날(아직 알려지지 않은) 거를 건지려고(취재하려고) 애쓴다.

올해 들어 잇따라 터진 통신망 해킹과 국가정보자료관리원 대전 본원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 따른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 때다.

각 사태 때마다 학계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로부터 이메일과 문자메시지가 쏟아졌다. 해당 건에 대한 기고 요청부터 제보·분석성까지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글이 첨부됐다.

한 사람이 기사 형식의 분석성 글을 하루 2~3 건씩 보내오기도 했다. '이 글을 기반으로 기사를 작성하거나 글 내용을 자신 이름의 멘트로 써도 된다'는 식의 친절한 안내까지 달렸다. 화려한 긴 약력 소개와 사진도 첨부됐다.

관심 가는 글에 담긴 내용을 확인하다 '전문가'들이 보내온 글 가운데 상당수가 AI에 맡겨 작성됐을 수 있고, 글 내용의 팩트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일 수 있다는 알게 됐다.

한 글에 담긴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한 질문에 "언론 보도 내용을 전제로 분석됐을 텐데"라고 무책임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전례 없는 통신망 해킹 및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를 기회삼아 자신을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그랬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AI 남용 사례로, 병폐가 클 수도 있다.

우선 기자를 취재에 나서게 만드는 의문과 호기심의 싹을 자른다. 지인들과 독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거나 호기심을 보여 취재를 해볼까 하다가도, 비록 AI 짓이라고 해도 한 입 베어먹힌(누군가의 글을 통해 이미 디지털화된) 모습을 보는 순간 흥미를 잃게 된다.

참고로, 기자들은 물 먹은(남이 먼저 쓴) 기사를 뒤따라 쓰거나 베끼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다.

해당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 꺾인다. 이후 그로부터 오는 글이나 제보는 읽히지 않고 삭제되기 십상이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AI로 뚝딱 찍어 보내는 '공장형' 글·그림·명절 인사를 사절한다
▲ '지브리 그림체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켠에선 식상함 하소연도 커지고 있다. 오픈AI 챗GPT의 신규 이미지 생성 기능 안내 영상 갈무리.

추석 명절을 앞두고서다.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대화방(단체 대화방 포함)을 통해 명절 인사가 쏟아졌다.

매끄러운 인삿말에 깔끔하게 그려진 그림까지 곁들여졌다. 기계로 찍어낸 송편 만큼이나 깔끔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별 느낌이 없다. 특히 나와의 연결 점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올 추석에 당신이 받은 무난하지만 매끄러운 메시지는, 사람 대신 AI가 대신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추석 인삿말'이나 '부모님께 감사 메시지' 같은 간단한 요청 만으로 멋진 인삿말 문장이 만들어진단다. 챗GPT 같은 대규모 AI 모델은 물론 국내 주요 포털과 메신저 앱에도 인삿말 자동 생성 기능이 탑재돼 있다고 한다.

한 직장인은 "평소 연락하기 어려운 거래처나 상사에게 보낼 때 격식과 부담 없는 표현을 찾느라 애먹었는데, AI가 제시해주는 문장을 참고하니 훨씬 수월하다"는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간단한 명절 인사도 AI가 대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뒤돌아 보니, 명절에 직접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거나 손편지를 쓰는 대신 전화 통화로 대신하고, 또다시 전화 통화 대신 문자메시지나 SNS로 인삿말과 쿠폰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도, AI로 찍어낸 인삿말을 받는 것만큼이나 낯설었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다.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전화 통화조차 어색할 정도로 서먹한 사이라면, 차라리 인사를 챙기지 말자고 하고 싶다.

괜한 짓을 하느라 에너지 낭비와 탄소 배출을 늘리고 기후변화를 키우는 게 안타깝다. AI로 인삿말을 만들고 문자메시지나 SNS로 보낼 때 상상 이상의 엄청난 전기가 소모된다.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호소한다.

'전문가로써 기자들과 언론에 의견과 제보를 주고 기자들의 전화를 받아 취재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고마운 일이나, AI 남용으로 기자들의 의문과 호기심의 싹을 자르는 행위는 제발 삼가해주시라'고.

제발, AI로 찍어낸 글과 그림이나 인삿말 등은 가능하면 홀로 감상하며 즐기시길. 신기하고 쌈박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스팸이자 짜증 유발 요인이라는 점을 알아주시길.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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