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회장 인선 여전히 안갯속, 또 '정치인' 개혁방점 '학계' 14년 만에 '관료'?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5-08-21 16:20:26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국민성장펀드에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 결과물인 3500억 달러 펀드, 거기에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까지.' 이재명정부 들어 한국산업은행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산업은행 회장 인선은 깜깜이다. 흔한 하마평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 한국산업은행이 2개월 넘게 회장 대행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점. <비즈니스포스트>
산업은행 회장은 지금껏 관료, 학계, 정치인, 금융인 출신이 돌아가며 맡았다. 이재명정부 초대 산업은행 회장에 어떤 출신이 오느냐는 향후 5년 동안 산업은행의 핵심 사업방향을 가늠할 잣대가 될 수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5대 시중은행이 참석한 가운데 ‘석유화학 사업재편 간담회’를 열었다.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은행권 지원의 뜻을 모으기 위한 자리였는데 향후 산업은행의 역할이 막중한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은행은 국내 산업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정책 금융공공기관으로 그동안 국내 부실산업 재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상황이 현재보다 악화해 구조조정이 본격화한다면 과거 조선, 해운산업 재편 때처럼 산업은행이 부실기업 떠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은행은 이재명정부 들어 10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 한미 관세협상 타결 과정에서 나온 3500억 달러 규모의 펀드 조성 등 막중한 역할 맡았는데 석유화학산업 재편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하나 더 안은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산업은행 회장은 여전히 공석이다.
강석훈 전 회장이 6월 초 퇴임한 뒤 수장 공석 상황이 2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하마평조차 나오지 않으면서 공석이 장기화하는 모양새다.
어느 쪽 출신 인사가 다음 산업은행 회장으로 올지도 미지수다.
산업은행 회장은 과거 관료 출신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2014년 산업은행-산은지주-정책금융공사가 합병해 지금의 산업은행이 출범한 뒤로는 관료 출신이 회장으로 온 적이 없다.
2014년 교수 출신인 홍기택 전 회장을 시작으로 금융인 출신인 이동걸 전 회장, 동명이인이자 경제학자인 이동걸 전 회장, 교수 출신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강석훈 전 회장까지 학계, 정치인, 금융인으로 회장이 바뀌는 동안 관료 출신은 없었다.
산업은행 회장은 통합 출범 이후 국내 주요 산업 재편을 담당하는 요직으로 평가되며, 정권 창출에 기여한 경제전문가가 자리를 거머쥘 때가 많았는데 그게 누구든 당시 산업은행의 현안에 적합한 인사로 평가됐다.
가장 최근 산업은행을 이끈 강석훈 전 회장은 경제학자이자 정치인 출신으로 윤석열정부의 주요 공약이었던 본점 부산 이전을 염두에 둔 인사로 여겨졌다.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본점을 옮기기 위해서는 산업은행법 개정 등 정치권 설득이 필요했는데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갈등 사안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정치인을 발탁한 것으로 풀이됐다.
그 전 이동걸 회장은 진보 경제학자 출신으로 임기 내내 소신 있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실제 외부 학계 인사는 제도권 밖에서 혁신의 목소리를 내다 영입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전 회장은 산업은행 회장에 오른 뒤 내부와 다른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변화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약 이재명정부 첫 산업은행 회장으로 관료 출신이 온다면 산업은행은 2011년 취임한 강만수 전 회장 이후 14년 만에 관료 출신을 회장으로 맡게 된다.
관료 출신은 안정성을 바탕으로 갈등 조율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힘 있는 관료라면 신사업 등에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실제 강만수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뒤 산업은행장을 역임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석유화학 사업재편 금융권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석유화학 사업재편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쉽사리 다음 산업은행 회장을 예상 못하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뒤 이례적으로 이전 정부 인사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하고 철도기관사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기용하는 등 파격인사를 시행했다.
최근에도 업계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찬진 변호사를 금융감독원장으로 선임하면서 깜짝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재명정부가 지난 주 금융당국 수장 인선을 마친 만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금융공공기관 수장 인선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나온다.
현재 산업은행뿐 아니라 한국수출은행장도 공석이고 신용보증기금과 예금보험공사는 각각 이달 말과 올해 11월 수장 임기가 끝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는 만큼 회장 자리를 오랜 기간 비워두는 것은 정권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요인일 수 있다”며 “금융당국 수장 인사의 윤곽이 나온 만큼 국책은행과 금융공공기관 수장 인사에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