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의 오프뷰티 광장시장점에서 방문객들이 매장을 구경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8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안. ‘화장품 업계 팩토리아울렛’을 표방하는 오프뷰티 매장이 시장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보라색 박스형 진열대가 촘촘히 들어선 내부는 거대한 창고형 매장을 연상케 했다. 매장 안은 일본인과 서양인 관광객은 물론 다양한 연령대의 한국인들로 북적였다.
매장 곳곳에는 ‘최대 90% 할인’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진열대에는 설화수, 딥디크, 롬앤 등 익숙한 브랜드부터 ‘텐제로’ 같은 다소 생소한 브랜드까지 폭넓게 진열되어 있었다. 색조 화장품 코너에는 롬앤, 데이지크, 누즈처럼 젊은층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주를 이뤘다.
의정부에서 왔다는 50대 부부는 “남편이 할인 매장이 여기에 있다고 알려줘 함께 오게 됐다”며 “(남편이) 지나가다가 할인 문구를 보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광장시장 근처에서 근무한다는 50대 여성도 “점심시간에 잠깐 들렀다”며 “호기심에 들어왔는데 예상보다 규모가 크다”고 언급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오프뷰티를 알게 됐다는 20대 여성 이 씨는 “롬앤, 깜빡 제품을 싸게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장바구니에는 롬앤 틴트와 깜빡 속눈썹 제품이 담겨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조선미녀’ 브랜드 제품이 특히 인기였다. 매장 한쪽에서는 조선미녀 제품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오프뷰티는 대명화학의 뷰티 유통 계열사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창고형 뷰티 편집숍이다. 브랜드사와 직거래 시스템을 통해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애고, 최대 90%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다.
지난 5월 서울 광장시장 1호점을 시작으로 망원동과 인사동, 안암동 등 서울 주요 지역에 잇따라 직영점을 열었다. 전국으로 매장을 확장한 이후 가맹 사업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 화장품 색조 코너에 진열돼 있는 롬앤과 키르시 제품들. <비즈니스포스트> |
오프뷰티의 핵심은 ‘직거래’다. 브랜드사는 재고 부담을 줄이고, 마케팅 역량이 부족한 중소 브랜드는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기회를 얻는다. 매장에 진열된 대부분의 제품은 패키지 리뉴얼, 생산량 조절, 유통 채널 조정 등으로 발생한 ‘전략적 재고’다.
매장 직원은 “유통기한 임박 제품은 전체의 약 30%에 불과하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둘러보니 유통기한이 넉넉한 상품들이 훨씬 많았다.
일각에서는 오프뷰티가 ‘재고는 곧 손실’이라는 유통업계의 오랜 고민에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사업 모델은 이랜드의 ‘팩토리아울렛’을 연상케 한다.
팩토리아울렛은 이랜드 계열 브랜드의 재고 상품을 직매입해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오프뷰티 역시 뷰티 업계의 아웃렛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오프뷰티의 사업 구조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재고 소진형 아웃렛 전략’은 과거 여러 유통 기업들이 도전했다가 쓴 맛을 본 영역이다.
대표적으로 롯데는 2015년에 인천 1호점을 열고 이듬해 서울 가산 2호점을 추가하며 ‘팩토리아울렛’ 사업에 뛰어들었다. 개점 초기에는 대규모 할인 행사로 소비자 유입에 성공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온라인 쇼핑몰과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소비 흐름이 옮겨가면서 실적이 급격히 하락했다. 결국 모든 점포가 문을 닫았다.
이랜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3년부터 팩토리아울렛 모델 확장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운영 중인 매장은 3곳에 불과하다. 연내 10여 개 점포를 추가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개장은 사실상 어렵다고 평가된다. 성공 여부는 가격에 더불어 소비자 수요에 맞는 제품을 얼마나 꾸준히,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프뷰티 역시 유통 구조 측면에서는 기존 아웃렛 모델과 유사하다. 다만 중저가 중심이던 기존 전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명품 브랜드까지 포함하는 라인업으로 뷰티 유통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특히 합리적인 가격에 고가 브랜드 제품까지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 관심을 끄는 요소다.
▲ 유통기한 임박 제품을 90% 할인에 1+1 프로모션을 더해 판매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하지만 이러한 전략이 장기적으로 유효하려면 ‘트렌드 반영’이란 조건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단순한 가격 할인과 브랜드 이름만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뷰티 소비자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실제로 현장에서 확인한 일부 제품은 색상이나 제형 면에서 최근 소비자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오프뷰티 광장시장점에서 판매하는 틴트 제품들은 대부분 색이 짙고 매트한 제형이었다. 최신 트렌드인 맑고 투명한 광, 자연스러운 발색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블러셔 역시 지나치게 웜톤이나 쿨톤으로 극단적 생상이 많아 일상에서 사용하기 부담스러워 보이는 제품이 적지 않았다.
기초 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소한 브랜드들이 많아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시된 할인가가 실제로 얼마나 저렴한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가격이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소비자가 ‘이걸 왜 사야 하는지’를 납득하지 못하면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직매입 방식이 가져오는 인력 부담도 과제로 지적된다.
오프뷰티 광장시장점은 총 5명의 직원이 교대 근무를 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3~4명이 매장을 운영한다. ‘아웃렛’을 표방하는 창고형 매장의 특성상 판매와 계산, 검수, 재고 정리 등 다양한 업무를 소수 인력이 전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프뷰티 광장시장점에 근무하는 한 여성 직원은 “최근 손님이 부쩍 늘어 바빠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해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