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경배 HMM 대표이사 사장이 중장기 성장 발판을 마련할 투자 세부전략을 조만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선복량에서 HMM을 압도하는 글로벌 선사들이 해운 역량을 강화할 뿐 아니라 해운 외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만큼 HMM도 서둘러 성장전략을 구체화해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높은 상황이다.
▲ 김경배 HMM 대표이사 사장이 중장기 성장 발판을 마련할 투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체적 방안을 도출하기까지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HMM의 오너 공백기가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에 따른 변수까지 안고 있다는 점에서 김 사장이 HMM의 중장기 로드맵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주목된다.
1일 비즈니스포스트 취재를 종합하면 김경배 사장이 HMM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HMM은 벌크선과 자동차운반선(PCTC) 쪽으로 선대를 늘려 해운업 내 사업다각화를 일부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주요 선사들처럼 해운 외 분야로도 사업을 넓히는 데는 여전히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 HMM이 4월 내놓은 ‘2030 중장기전략’은 주력인 컨테이너 사업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컨테이너 선복량 규모를 2024년 92만TEU(84척)에서 2030년 150만TEU(130척)까지 늘리는 한편 컨테이너선 서비스 네트워크 확장, 노선 다변화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담았다.
이밖에 건화물, 유조선 등 벌크선 선복량을 2024년 4월 630만DWT(36척)에서 2030년 1228만DWT(110척)까지 확대하며 국내외 전략 화주를 대상으로 영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HMM은 이와 관련해 상반기 중으로 구체적 방안을 내놓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투자 전략의 세부 사항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HMM 관계자는 "늦어도 상반기 중으로 세부 투자전략을 발표하려 했지만 검토할 게 많아 약간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HMM의 투자 전략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주목하고 있다. 사업다각화를 포함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이지만 쉽게 방향을 잡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김 사장의 고심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HMM이 경영을 주도할 소유주를 찾고 있는 형편이란 점은 김 사장이 투자전략을 수립하면서 적극적 사업다각화를 펼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HMM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은 회사를 하림그룹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협상이 결렬되며 HMM은 오너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에 처했다.
김 사장으로서는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긴 하지만 주인을 찾기 전에 막대한 투자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HMM은 투자전략을 수립할 때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에 따른 영향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HMM이 소속된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는 동맹 내 최대 선사인 하팍로이드가 2025년 탈퇴를 예고하며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몰렸다. 해운사들은 전세계 규모의 운항 일정을 맞추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해운동맹을 결성하고 화주를 상대로 영업력을 높이고 있다. 하팍로이드의 동맹 이탈로 디얼라이언스 소속 선사들의 경쟁력이 낮아질 공산이 큰 셈이다.
해운업계와 증권업계에서는 선복량 증가를 위해 선대 투자를 확대하는 방식의 투자전략은 선사에 독이 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해운 이 복합 물류를 통해 위험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선사들 사이 운임 공조 기조는 대형 컨테이너 선사들의 선박 인도와 화물 확보 정도에 따라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현 시점에서 선복량 확대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봤다.
HMM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글로벌 주요 선사들은 해운 분야 외에 항공, 물류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 최대 선사인 스위스 MSC는 최근 이탈리아 제노바공항 지분 15%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MSC는 코로나19 이후 물동량이 급등하며 컨테이너 노선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뒀는데 이를 활용해 예인선과 자동차운반선(PCTC) 등 해운업 내 이종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뿐 아니라 항공기와 물류 회사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세계 6위 선사인 일본 ONE의 출자사 MOL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본사를 둔 물류회사 앨리스테어그룹 지분 25%를 사들였다. 매입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앨리스테어그룹은 동남 아프리카 8개 나라에 사무실을 두며 콩고와 잠비아에서 생산된 구리, 코발트 등 핵심 광물 자원을 해안의 수출항구까지 트럭으로 운송하는 물류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항구에서 통관, 창고운영, 화물 관리 등도 한다.
▲ HMM의 컨테이너선. < HMM >
MOL은 1926년 일본 최초로 일본과 아프리카 동해안의 운송 항로를 개척한 뒤 100년 가까이 아프리카를 오가는 해상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OL로서는 해상과 육상 운송을 통합해 시너지를 노린 행보라 할 수 있다.
시노다 도시노부(Toshinobu Shinoda) 유럽·아프리카 담당 수석전무이사(Managing Executive Officer)는 보도자료를 통해 “앨리스테어그룹은 지역의 선도적 광물·인프라 물류기업으로 성장해왔다”며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입지를 확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글로벌 선사들이 해운 외 분야로도 사업을 넓혀가려 하는 이유는 해운업의 높은 변동성에 따른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운업은 10년이 넘는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오는 대표적 사이클 산업으로 꼽힌다. HMM의 사례만 보더라도 현대상선 시절 불황기인 2011~2019년 적자를 지속하며 누적 결손금이 4조5207억 원까지 불어나 부분 자본잠식에 이른 적이 있다.
그런데 2020년부터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해운 운임이 급등하자 결손금을 모두 털어내고 15조 원 규모의 현금을 쌓아둘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깊은 불황의 기억을 안고 있는 선사들로서는 호황을 누리고는 있지만 그 뒤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만큼 사업다각화를 통해 해운업의 변동성을 완화하려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