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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 2023-10-06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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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가 이제 손꼽히는 물 선진국이 됐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싱가포르=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에는 머라이언(Merlion)이 오늘도 힘차게 물을 내뿜고 있다.

머라이언은 머리는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인 가상의 동물로 싱가포르의 상징이다. 특히 마리나베이에 위치한 머라이언 상과 주변 고층건물이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은 성공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싱가포르의 상징인 머라이언 상이 분수로 제작된 일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싱가포르 도심지에서 물을 보는 일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도시 곳곳에는 분수와 녹지가 조성돼있는 데다 주요 볼거리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마리나베이 일대에 몰려있어 싱가포르를 담은 풍경 사진에는 대부분 물이 담겨있다.
 
[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의 머라이언 상이 물을 내뿜고 있는 모습. 마리나베이의 머라이언 상은 뉴욕의 자유여신상, 파리의 에펠탑처럼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비즈니스포스트>
하지만 싱가포르는 탄생 때부터 ‘국가’라는 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고민해야 했던 나라다.

특히 자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상수원이 부족해 수자원 문제는 늘 싱가포르의 주요 고민거리였다. 싱가포르의 수자원 수준은 한 때 세계자원연구소(WRI)가 선정하는 최악의 물 부족 국가 1위에 중동지역 국가들과 공동으로 선정됐을 정도였다.

싱가포르는 수자원 부족이라는 ‘워터리스크’를 안고 시작한 나라인 만큼 수자원 확보와 수질 관리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이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물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수자원 관리에서 우리나라 혹은 우리 기업들이 배울 점은 무엇일까?
 
[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 싱가포르의 주요 랜드마크로 꼽히는 마리나베이샌즈가 보이는 광장에서 분수가 나오는 모습. 싱가포르는 한 때 최악의 물 부족 국가였다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도시 곳곳에서 분수를 보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비즈니스포스트>
◆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나라, 싱가포르

“식수는 객실 내 별도로 마련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됩니다.”

싱가포르에 도착해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자 직원이 호텔 이용 방법을 설명하며 말했다. 호텔 내 시설 이용 등 다른 설명과 함께 무심하게 나온 반복적 설명이었지만 순간 놀라기에는 충분했다.

한국에서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식수는 물론 씻는 물로서도 현지 수돗물의 수질을 믿지 못해 필터 달린 샤워기 등을 챙겨가는 일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호텔에서부터 수돗물을 그냥 마시라고 아무렇지 않게 안내한다. 특별히 식수와 관련해 먼저 질문을 던졌던 것도 아니다.

그만큼 싱가포르는 상수도 수질에는 자신이 있는 나라다.

싱가포르 수돗물의 수질은 미국 예일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가 공동으로 연구해 2년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 환경성과지수(EPI)에서 2022년 기준으로 21위를 차지했다. 23위를 차지한 한국, 26위를 차지한 미국 등 보다 높은 순위다.

싱가포르의 수자원 관리를 취재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만큼 취재 기간 내내 식수를 수돗물로 해결해 봤다. 수돗물과 음수대에서 나오는 물을 마셔보니 모두 염소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일반 생수의 맛이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기자는 출장 기간은 물론 귀국 이후까지 별다른 신체적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 기자가 출장 기간에 묶었던 호텔 객실 내 세면대 수도꼭지 옆에 설치된 음수대의 모습. 싱가포르에서는 그냥 나오는 수돗물도 음용이 가능할 정도의 수질이나 호텔에서는 간단한 필터처리를 거친 음수대를 따로 제공하고 있었다. <비즈니스포스트>
◆ 싱가포르의 주요 상수원, 하수를 재처리한 물 ‘뉴워터(NEWater)’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수십 개 나라에서 음용 가능한 수돗물이 공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싱가포르 수돗물의 수질은 크게 주목할 만한 특징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수돗물 가운데 상당 비중이 하수를 재처리한 물로 만들어진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싱가포르는 자국 내 상수도 공급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PUB(Public Utilities Board)를 두고 있다. PUB는 지속가능성 및 환경부(Ministry of Sustainability and the Environment) 산하의 법정위원회(Statutory Board)다.

PUB는 싱가포르의 상수원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4대 수도꼭지(Four National Taps)로 불리는 주요 상수원은 지역 집수(Local Catchment), 수입(Imported Water), 해수담수화(Desalinated Water)에 더해 뉴워터(NEWater)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뉴워터는 하수를 재처리(reclaim)한 물이다. 새로 태어난 물이라는 의미에서 한자로는 신생수(新生水)라고도 표기된다.
 
[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 뉴워터 비지터 센터의 전경. 싱가포르는 뉴워터 생산 시설을 공개시설로 만들어 뉴워터 수질을 향한 신뢰를 높이고 자국의 수자원 관리 수준과 정책을 홍보하는 용도로도 활용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열린 공간인 뉴워터 생산시설, 수질·신뢰·홍보 다 잡다

PUB는 뉴워터 생산 시설을 ‘뉴워터 비지터 센터(NEWater Visitor Centre)’로 만들어 시설 내부를 공개한다.

뉴워터 비지터 센터는 단순히 뉴워터 생산 시설을 넘어 싱가포르의 물 관리 정책을 알리는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9월13일 뉴워터 비지터 센터를 방문하니 맑은 물로 차 있는 넓은 연못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건물 주변으로 난 물길에는 잉어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건물 내부에는 싱가포르의 물 관리 정책을 설명하는 자료와 함께 뉴워터의 역사, 생산 과정 등이 전시돼 있었다.

센터 안내인은 “뉴워터는 개발에만 30년이 걸렸고 15만 가지의 과학적 실험을 거쳤다”며 “수질은 음용을 위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을 만족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뉴워터는 크게 미세·초미세여과, 역삼투, 자외선 소독 등 세 단계의 생산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각 과정을 설명하는 전시물은 실제 생산 시설의 단계별 위치에 맞춰 배치돼 있었다.

센터 안내인은 “여과와 역삼투만 거쳐도 식수로 쓸 수 있는 정도의 수질이 나오지만 더 나은 수준의 수질을 위해 한 번 더 자외선 소독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 뉴워터 비지터 센터 내에서 볼 수 있는 역삼투 설비의 모습. 뉴워터는 크게 여과, 역삼투, 자외선 소독 등 3단계 처리를 거쳐 생산된다. <비즈니스포스트>
하지만 대중에 공급되는 물은 수질이 깨끗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물은 사람이 직접 섭취하는 것이므로 수질만큼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싱가포르 정부가 뉴워터를 처음 공개하며 수질의 안전성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한 당시 기사와 사진 등 전시물은 인상 깊었다.

뉴워터는 2002년 8월 건국기념일에 맞춰 처음 공개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뉴워터를 건국기념행사에서 무료로 국민에게 나눠줬고 고촉통 당시 총리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직접 뉴워터를 마시는 모습을 공개했다.

PUB는 2022년에 지역 양조장과 함께 뉴워터를 사용해 만든 맥주인 ‘뉴브루(NEWbrew)’를 시중에 판매하기도 했다. 뉴브루는 물 재활용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 판매됐으나 생산 물량이 빠르게 동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뉴워터를 생산하는 시설을 공개시설인 뉴워터 비지터 센터로 만든 것도 뉴워터 수질을 향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 뉴워터 비지터 센터에 전시된 역삼투 필터 내부의 모습. 뉴워터 비지터 센터에서는 뉴워터 생산과 관련된 설비를 자세하게 살펴 볼수 있도록 전시물이 마련돼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성공 모델로 자리 잡은 뉴워터, 반기문 “싱가포르의 성공을 축하”

오늘날까지 싱가포르의 수돗물은 꾸준히 물 관련 주요 국제기구, 기관 등이 매기는 순위에서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으며 뉴워터 역시 세계적으로 성공한 수자원 관리 모델로 평가를 받는다.

특히 물 부족이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뉴워터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찾을 정도다.

센터 안내인은 외국 정부나 기관에서 이곳을 얼마나 찾아오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며 “몇 년 전에 한국 수자원공사에서도 뉴워터 비지터 센터를 방문했었다”고 대답했다.

전시관 한편에는 뉴워터 비지터 센터를 방문했던 주요 인사들의 어록과 방문 사진 등도 놓여 있었다. 전시물 가운데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반 전 총장은 재임 당시인 2012년 3월 싱가포르의 뉴워터 비지터 센터를 방문한 뒤 “물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핵심으로 이곳에서 본 모범 사례와 혁신적 사고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실현될 수 있다는 큰 희망을 품게 됐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게 한 싱가포르의 성공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르포] 대표적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 하수 재처리한 ‘뉴워터’로 활로 찾다
▲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은 2012년 3월 싱가포르를 방문해 뉴워터 관련 시설들을 돌아본 뒤 "많은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게 한 싱가포르의 성공을 축하한다"라고 말했다. 뉴워터 비지터 센터에는 반 전 총장의 당시 사진과 반 전 총장의 방문을 다룬 기사가 전시돼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뉴워터의 성공은 하수를 새로운 상수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실증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러워진 하수를 정화해 다시 상수원으로 활용하면 할수록 수자원 확보에 부담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는 쓴 물을 모두 정화해 다시 쓰면서 별도의 취수 없이 물의 소비 과정에서만 자체적으로 순환이 가능할 수도 있다.

센터 안내인은 “싱가포르 정부는 2060년까지 상수원에서 뉴워터의 비중을 50%까지 늘리려 한다”고 말했다.

하수 재처리를 통해 상수원의 절반 이상을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싱가포르의 수자원 관리 수준은 분명 세계 어느 곳보다도 앞서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여전히 전방위적으로 수자원 관리에 고삐를 죄는 모양새다.

싱가포르 수자원 관리에 어떤 노력을 더 기울이고 있나? 그리고 무엇이 싱가포르를 이토록 수자원 관리에 온 힘을 쏟도록 만들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CDP한국위원회를 맡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국내외 주요 기업과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대응사례를 발굴해 보도한다. 최신 동향과 해법 관련 기사들은 비즈니스포스트 워터리스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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