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풀린 유동성을 흡수했던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정책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도 과도한 긴축경계론이 비등해지는 상황을 의식하며 오는 9월을 기점으로 한 기준금리 인상 중단을 저울질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금리인상 중단 나아가 인하로의 정책 변화가 가져올 나비효과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중국발 경기침체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장기침체 시나리오(L자형, 상저하저)에 시의적절한 통화관리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가 긴축 막바지에 다다른 국내외 정책당국, 시장, 업계의 분위기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① 2년여 물가와의 전쟁, 고금리와 ‘헤어질 결심’ 기로에 선 미국
② 부채 역습에 경기침체 그늘, 한은 금리 선택지 줄어든다
③ 이자잔치 사실상 끝났다, NIM 하락 대응책 골몰하는 시중은행
④ 고금리에 숨죽였던 여전사, 연체율 관리 자금조달 숨통 기대
⑤ 금리인하 관련 상품 준비 분주한 금융투자업계
⑥ 위험자산 선호심리에 가상화폐 시장 기대감 커진다
⑦ 고금리시대 종언이 바꿔놓을 금융투자시장 판도는
[비즈니스포스트] 카드사를 비롯한 여신전문금융사(이하 여전사)들이 기준금리 인상 종료가 임박하면서 업황 개선에 따른 실적 반등 기회를 노리고 있다.
여전사들은 기준금리 인상에 직격탄을 맞아 올해 상반기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치솟은 연체율에 실적에 부담을 안아야 했던 만큼 기준금리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준금리 인상이 종료되면 한결 나아진 연체율 관리로 여신전문금융사들이 실적 반등을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3.50%로 5연속 동결했다. 한은의 제1목표로 여겨지는 물가상승률도 이달 초 정책목표인 2%대로 하락해 이 총재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시장에서는 긴축 종료에 대한 기대감도 감지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상이 멈추거나 내리게 되면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연체율 관리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바라봤다.
그만큼 금융권은 기준금리와 함께 치솟은 연체율에 시름했다. 특히나 카드사가 직격탄을 맞았는데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해 수익성도 자연스레 악화돼서다.
올해 상반기 8개 전업카드사 가운데 가장 큰 폭(71.6%)으로 순이익이 감소한 BC카드가 대표적이다.
BC카드는 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으로 올해 상반기에 지난해 상반기보다 무려 157% 늘어난 361억3686억 원을 쌓았다. BC카드는 상반기 연결기준으로 순이익 306억3502만 원을 냈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내놓은 ‘2023년 상반기 신용카드사 영업실적’에서 “8개 전업 카드사들은 총수익을 늘렸지만 이자·대손비용이 증가해 총비용도 늘어 순이익이 감소했다”고 바라봤다.
8개 전업카드사는 상반기 순이익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075억 원(12.8%) 줄어든 1조4168억 원을 냈다. 이자비용은 6928억 원이, 대손비용은 5262억 원이 증가해 영향을 끼쳤다.
그만큼 연체율을 둘러싼 카드업계 분위기는 그동안 좋지 않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카드사 연체율은 1.58%로 지난해 말보다 0.38%포인트 올랐다. 세부적으로 보더라도 신용판매 연체율은 0.87%로 지난해 말보다 0.22%포인트, 카드대출 연체율은 3.67%로 0.69%포인트 상승했다.
1금융권으로 불리는 은행 연체율 상승세도 매섭다는 평가가 나와 긴축 종료는 업계가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일이기도 하다.
최근 발표된 6월말 국내은행 대출 연체율 자료를 보면 대기업을 제외한 모든 차주 연체율이 지난해보다 올랐다. 중소기업 연체율은 0.43%로 0.19%포인트, 가계대출 연체율은 0.33%로 0.16%포인트 상승했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대기업을 제외한 모든 차주 연체율이 전년 대비 10~30bp(1bp=0.01%포인트) 속도로 함께 오른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통계치가 발표된 2007년 이래 올해가 처음이다”고 평가했다.
연체율 관리 뿐 아니라 자금조달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긴축종료는 여전사에 좋은 소식이다.
은행의 예금이나 보험사의 보험료처럼 자금 수신 기능이 없는 여전사들은 보통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긴축이 종료되면 여전채 금리 하락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여전채 금리(무보증, AA 3년)는 23일 4.565%였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기 시작한 1월13일(4.894%)보다 20bp(1bp=0.01%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여전채 금리는 3월23일 3.968%선까지 내려가는 등 기준금리가 동결된 8달 동안 3%대까지도 떨어졌다는 점에서 긴축 종료가 현실화하면 여전채 부담은 덜어질 수 있는 셈이다.
▲ 이창용 한은 총재가 서울 한국은행 본관에서 24일 금융통화위원회 뒤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한국은행>
다만 기준금리 조기 인하 가능성이 아직은 낮다는 점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최근에는 미국 연방제도(Fed, 연준)이 ‘중립금리’를 올릴 수 있어 한은 기준금리 방향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립금리는 이론상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는 금리 수준을 의미한다. 미국의 중립금리 수준이 올라간다면 한은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총재가 괜히 이날 금통위 정례회의 전 “금통위보다 ‘잭슨홀 미팅’이 더 뉴스거리”라고 한 게 아닌 셈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25일 와이오밍 주에서 열리는 잭슨홀 미팅에서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연설을 진행한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