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추상은(임지연 분)은 ‘매 맞는 아내’다. 어느 날 상은은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차에 태워 저수지로 밀어 넣어 남편을 살해한다. 남편을 살해한 부인이 남편 재산의 상속인이 될 수 있을까? < KT스튜디오지니 > |
[비즈니스포스트]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추상은(임지연 분)은 ‘매 맞는 아내’다. 어느 날 상은은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차에 태워 저수지로 밀어 넣어 남편을 살해한다. 이때 상은의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던 상은은 남편이 생전에 본인이 사망하면 ‘상속인’에게 5억 원이 넘는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을 살해한 부인이 남편 재산의 상속인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 민법에 규정된 ‘상속결격’의 문제이다. 상속결격은 본래는 상속인이지만, 어떤 사유로 인해 상속을 받을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사례와 함께 이야기해 보자.
먼저 민법상 상속결격 사유는 다음과 같다.
민법 제1004조(상속인의 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1.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2.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
3.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한 자
4.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5.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변조·파기 또는 은닉한 자 |
앞에서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고의로 피상속인인 남편을 살해했다. 당연히 상속결격자이다.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다.
이 경우 상속인은 주인공의 배 속에 있던 아이다. 민법은 ‘태아’일 때 아버지가 사망해도, 태아가 무사히 출생하면 그 아이에게도 상속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법의 상속결격 규정에 따르면 태어난 아이가 ‘보험금’을 전액 상속하는 게 맞다.
여주인공은 자신이 남편을 죽인 사실을 숨긴 채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받아서 태어난 아이와 살아간다.
현실은 어떨까? 최근 아내를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해 억대 보험금을 타낸 남편이 3년 만에 구속되어 살인죄로 처벌을 받게 된 사례가 있다. 초동 수사에서 단순교통사고로 내린 결론을 검찰이 3년 만에 뒤집었다. 해당 사건은 ‘살인,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등’으로 남편을 기소했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실제로 상속결격 규정의 적용이 어려운 사례가 많다.
최근에 문제가 된 사례를 살펴보자. 형이 지적장애인 동생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강가에 내버려 둔 채 자리를 떠난 사건이 있었다. 동생은 결국 강에 빠져 죽었다.
형제는 부모의 사망 뒤 34억 원 상당의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형과 동생은 이 상속재산과 관련해 법적 분쟁 중이었다.
검찰은 형을 살인죄로 기소했고 1심 법원은 살인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만약 형에게 살인죄가 인정된다면, 형은 ‘고의로 상속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한 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남긴 34억 원의 유산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2심과 대법원은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동생이 졸린 상태로 현장을 배회하다 실족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라며 “형이 부모님이 사망한 후 4년간 동생과 함께 살았고,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동생을 살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형이 동생을 강가에 방치했고 사망하게 한 점은 유죄로 인정되어 ‘유기치사죄 등’으로 10년 형이 선고되었다.
유기 치사죄는 ‘보호해야 할 사람을 내버려 뒀는데, 그가 사망한 경우’에 성립하는 죄로, 사망에 대해서는 고의가 아니라 ‘과실’이 인정되는 범죄이다. 즉 고의의 유기죄와 과실의 사망이 결합한 형태이다.
문제는 우리 법은 상속결격 사유로 ‘고의’로 같은 순위 상속인을 살해한 경우만 규정하고, 유기치사와 같이 사망 자체가 과실 때문인 경우는 상속결격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안에서 형은 부모가 남긴 34억 원을 전액 단독 상속할 뿐 아니라 동생의 사망으로 지급되는 보험금 3억 원까지 상속하게 되었다.
‘피해자가 사망했다’라는 사실은 가해자의 고의 여부에 따라 살인죄가 될 수도 있고 상해치사, 유기치사, 과실치사 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가해자가 살해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만약에 칼로 사람을 찔렀다면 찌른 부위가 목·가슴 같은 주요 부위였다면 살인의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크고, 허벅지 같은 곳을 찔렀다면 상해의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똑같이 사람을 찔러서 죽였더라도 목을 찌르면 살인죄, 허벅지를 찌르면 상해치사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유로 폭력배들 간 싸움에서는 살인죄의 적용을 피하고자 허벅지를 찌르는 사례가 다수 있다.
우리 법은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 대한 상해치사죄만 상속결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칼로 찔러 사망하게 한 경우 살인죄가 인정되면 상속결격이고 상해치사죄가 인정되면 상속결격이 아니게 된다.
두 가지 죄 모두 사람을 해할 고의는 있다. 그런데 살인죄는 상속결격이고 상해치사죄는 왜 아닌가? 그리고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행해진 상해치사와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에 행해진 것을 달리 취급해야 할 합리적인 차이가 있는가?
상속결격에 ‘사망’이라는 사건이 개입되는 것은 사실 예외적이다. 실무에서 상속결격인지 아닌지를 다투는 경우는 일부 상속인이 유언장을 위조·변조·파기하거나 숨긴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음 사안은 심심치 않게 보이는 내용이다.
부모에게 살인미수, 상해치사의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패륜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부모가 사망하면 상속을 받는 데 지장이 없다.
많이 알려진 ‘가수 구하라 사건’처럼, 자식에 대한 양육·부양의 의무를 전혀 하지 않은 생모도 자식이 사망하면 상속을 받을 수 있다. 20~30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다가,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보험금이나 상속재산을 탐내어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다.
2019년에 사망한 가수 구하라 씨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구하라 씨가 9살일 때 가출해 20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구하라 씨는 오빠와 의지해 오랜 세월을 살아오다가 사망했다. 이 경우 구하라 씨의 재산은 어머니가 단독상속하게 된다.
구하라 씨의 오빠는 3순위 법정상속인이기 때문에 구하라 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다. 만약 구하라 씨가 오빠에게 전 재산을 남긴다는 유언장을 작성해 놓았더라도 어머니는 그 재산의 절반을 유류분으로 가져갈 수 있다.
처음 구하라 씨가 사망했을 때 정치인들은 ‘구하라 법’ 운운하며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에 대한 상속결격을 규정하는 법률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은 아직까지 통과되지 않았다.
다만 공무원 유족급여에 관련해선 이를 제한하는 법률이 생겼다. 이를 ‘공무원 구하라 법’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법에 따를 때도 공무원 유족급여가 아닌 개인 재산에 대해서는 기존과 똑같이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에게도 상속된다.
앞에 말한 장애인 동생 유기치사 사건이나 구하라 사건은 관련 규정의 미비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해당 규정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 상속결격 규정의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