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사진)은 DDR5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선제적으로 양산하며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체질을 개선할 방안을 찾고 있다. < SK하이닉스 > |
[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가 DDR5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제품을 중심으로 다시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3사' 가운데 선제적으로 고부가제품을 양산하면서 최근 인공지능 칩으로 주목받는 엔비디아처럼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5월부터 D램을 중심으로 월별 판매량이 반등하기 시작하면서 메모리반도체 업황 개선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에는 인공지능(AI) 칩 관련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업황 회복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D램 가격은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공급은 줄어드는 반면 수요는 늘고 있어 조만간 가격도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존 예상보다 업황 회복이 빠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D램 판매량 확대에 힘입어 SK하이닉스의 영업손실 규모는 올해 1분기 3조4천억 원에서 2분기 2조 원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업황 악화가 장기화되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만큼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올해 4월 2조2377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해 현금을 추가 확보한 것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여유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교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한 것은 반도체 업황이 다시 개선되는 시점에 맞춰 바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다”며 "현재 현금성자산은 충분히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반도체 업턴(상승국면)에 주목하고 있다.
박정호 부회장이 4세대 HBM 제품인 HBM3과 DDR5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 확대를 통한 체질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다음 반도체 상승국면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3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HBM3을 개발해 양산을 시작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인 H100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HBM3 다음 세대인 HBM3E도 엔비디아로부터 샘플 요청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또 SK하이닉스는 최근 인공지능 반도체 MI300X을 공개한 AMD에도 HBM3을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9월부터 HBM3를 양산하는 삼성전자보다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22년 기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점유율은 50%로 삼성전자(40%), 마이크론(10%)보다 높다.
▲ 사진은 SK하이닉스가 개발한 HBM3(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 < SK하이닉스 > |
SK하이닉스는 현재 주력 제품인 DDR4에서 다음 세대 제품인 DDR5 생산으로 전환하는 작업도 가장 선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서버용 DDR5는 대부분 SK하이닉스 제품이며 고가의 128GB DDR5는 사실상 SK하이닉스가 독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5월 16GB DDR5 양산을 시작했으며 하반기부터 DDR5 물량이 대량으로 풀릴 것으로 전망된다.
DDR5 가격은 DDR4 대비 30% 정도 높다.
SK하이닉스가 이처럼 고부가제품 양산에 집중한 것은 완제품 대비 현저히 낮은 메모리반도체 가격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다.
메모리반도체는 소품종 대량생산 제품이기 때문에 가격변동이 매우 크고 반도체업체들이 가격결정권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박정호 부회장은 올해 3월 SK하이닉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우리 HBM 가격은 200달러(약 26만 원) 미만인 반면 엔비디아 인공지능 GPU A100은 1만 달러(약 1300만 원)”라며 “1년에 20조 원 넘게 투자하고 6개월 동안 600개 넘는 공정으로 만든 메모리반도체 제품이 단돈 몇 센트에 팔린다”고 토로했다.
박 부회장의 발언은 SK하이닉스도 엔비디아처럼 독보적인 기술우위를 통해 가격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메모리반도체 3사의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고부가제품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D램은 2019년 이후 저성장 산업으로 변모했으며 인공지능 투자 열풍에도 저성장 국면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제품 양산과 함께 HBM3의 판매가격은 30% 이상 급락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바라봤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