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취임 1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
[비즈니스포스트]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7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첫 검찰 출신’, ‘최연소’, ‘윤석열 사단의 막내’. 이 원장에게 따라붙는 이런 수식어들은 임기 초반만 해도 부정적 뉘앙스를 풍겼지만 현재는 이 원장이 1년 동안 이뤄낸 금융시장 안정화와 금감원 조직 쇄신,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등의 원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 공무원 프로세스에서 검사 프로세스로
“예전에는 사건이 터지면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됐는지 따지는 게 먼저였는데 이 원장이 취임한 뒤에는 사건의 해결 방안부터 찾는다고 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 원장의 ‘검사 DNA’와 ‘적극적 소통 행보’가 금감원의 문제 해결 능력을 끌어올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원장이 취임하고 1년 동안 유독 금융시장을 흔든 굵직한 사건·사고가 많았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사태’도 그 중 하나다.
이 원장은 이들 사태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자 곧바로 관계기관의 전방위적 대응을 주도하며 금융시장 조기 안정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흥국생명 사태’ 때는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하도록 직접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과 물밑에서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취임식에서 강조한 ‘소통’을 통해 성과를 냈다. 그는 취임식 때 “우리 모두가 의견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주저함을 잠시 내려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실제 위기 때마다 빠르게 시장에 신호를 보내고 금융권과 소통하면서 시장안정에 힘을 쏟았다.
이 원장 이전에는 경제관료 출신이나 경제 전문가가 금감원장을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원장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에다 회계사 자격증도 있어 ‘경제 문외한’은 아니지만 금융권은 특히 그가 검사 출신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이 원장이 금융 경험이 많지 않은 검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지나친 조사로 금융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선이 임기 초반 적지 않았다.
◆ 금감원 조직 쇄신, 역대 최연소의 힘
“이 원장이 취임한 뒤 금감원 직원들의 자부심이 높아진 게 느껴진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이 원장 취임 뒤 나타난 한 가지 변화로 금감원의 조직 분위기를 꼽았다.
금감원은 이 원장이 금융시장의 굵직한 이슈를 빠르게 해소하면서 외부에서 받는 시선이 크게 바뀌기도 했고 이 원장 취임 뒤 조직 구성도 많이 달라졌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열린 2023 XBRL 국제콘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특히 1972년생인 이 원장은 역대 최연소 원장다운 인사로 조직에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원장은 지난해 8월 단행한 대규모 수시인사와 12월 연말 정기인사에서 ‘세대교체’와 ‘공채 출신’ 중심의 물갈이 인사를 시행했다.
금융감독원 부서장 인사에서 1969년~1971년생 직원들을 기획조정국장, 감독총괄국장, 보험감독국장 등 주요 부서장에 전면 배치하며 세대교체를 진행했고 부서장 승진 인사의 절반가량을 공채 출신에서 선발해 그동안 연공서열 위주로 이뤄지던 인사 관행에서 벗어났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 원장의 ‘파격 인사’가 금감원 직원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원장이 인사에서 조직 안정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자리 이동이 많으면 직원들로서도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 원장은 또 금융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자율복장제를 확대 시행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은 2020년 5월부터 금요일마다 자율복장으로 출근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해 왔는데 지난해 9월부터 이 제도를 모든 요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 ‘관치’ ‘총선 출마설’ 부정적 수식어도 여전
‘누가 뭐래도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 이 원장을 향한 이런 평가에 반박하는 이를 적어도 지금 당장은 금융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인연이 깊어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린다.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과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수사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 수사팀에 파견돼 삼성그룹 승계 문제를 수사한 이력도 있다.
이는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이나 금융권 상생금융 확대 등과 관련한 이 원장의 행보에 ‘관치’ 논란이 따라붙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해 말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에 제동을 걸었지만 이를 순수한 의도에서만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선은 금융권에 많지 않다.
당장 올해 3월 우리금융지주만 해도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회장에 선임되면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적지 않았다.
금융권의 상생금융 확대도 결국은 윤 대통령의 ‘돈잔치’ 발언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이 원장이 윤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대신 은행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2월 은행에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돈잔치’는 안 된다는 말을 내놨다. 이후 이 원장도 은행의 독과점 구조를 비판하며 연일 쓴소리를 냈고 이는 은행권의 압박으로 작용해 ‘상생금융 방안’이 쏟아진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이 원장은 총선 출마설과도 싸움 아닌 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받고 있기도 하고 역대 금감원장 가운데 이렇게 높은 존재감을 보여준 이가 없었던 만큼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이 원장의 총선 출마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