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 감독 및 검사 강화의 일환으로 금융지주 이사회와 정기적으로 면담을 진행하기로 한 것을 두고 ‘신(新)관치’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권에서 나온다.
금감원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 등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지만 결국 이사회의 역할과 판단을 제약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 이복현 금감원장의 위상에 비춰볼 때 금감원과 금융지주 이사회의 면담이 관치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달 안으로 KB금융지주, KB국민은행 이사회와 면담을 진행한다.
금감원은 전날 ‘은행 부문 주요 감독·검사 현안’ 관련 기자설명회에서 4월부터 연간계획에 따라 금융지주 및 은행 이사회와 상시 면담을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이 첫 번째 대상인 셈이다.
금감원이 검사 대상 은행에 대해서는 검사 종료 뒤 이사회 면담을 추진하겠다고 한 만큼 마지막 타자는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앞서 3월20일부터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을 대상으로 정기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지주 이사회와 면담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참여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이 여론을 의식해 압박 수위를 다소 낮췄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관치금융’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지 않다.
일단 금감원이 금융지주 이사회와 접점을 대폭 확대하는 것에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금감원은 금융지주 이사회와 면담에서 은행별 지배구조 취약점, 내부통제·리스크관리 관련 이슈 등을 논의한다는 계획이지만 금융지주 이사회로서는 면담 과정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지 간에 흘려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 들어선 뒤 금감원과 금감원장이 어느 때보다 높은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금융지주 이사회의 부담을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상생금융’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 원장이 방문할 때마다 해당 은행이 서민금융 지원방안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이 원장의 위상을 고려할 때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지주 이사회가 100%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금융당국과 이사회의 면담이 정례화하면 추후 새로운 관치의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관치금융’ 우려와 관련해 여러 번 선을 그었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미 ‘관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금감원이 금융지주 이사회와 면담을 추진하는 것은 결국 ‘회장 장기 집권’과 ‘거수기 사외이사’로 대변되는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것인데 회장 장기 집권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금융당국의 의도가 관철됐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복현 원장이 취임한 뒤 금감원은 금융지주 회장 장기 집권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고 금융권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임기가 만료된 최고경영자를 줄줄이 교체했다. 문재인 정부 때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갖은 사퇴 압박에도 자리를 지켰던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등의 책임을 앞세워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전 회장의 사퇴를 강하게 압박했고 이에 못 이겨 사퇴한 손 전 회장의 자리에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관치금융’ 논란과 함께 올랐다.
NH농협금융지주는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다음 회장으로 선임하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일었다. NH농협금융지주가 관료 출신을 회장에 선임한 일은 특별한 게 아니지만 이석준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원장은 앞서 2월22일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제 금융기관은 이사회가 CEO를 감독하는 데 적절한 기능을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감독기구에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이사회와 면담은) 내부통제 실패, 다양한 위험 요소를 제거할 방법이라고 믿고 있어서 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