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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2)

류인학 khcrystal@hanmail.net 2023-02-24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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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2)
▲ 구례 유부자댁 운조루에는 가난한 이를 위한 '타인능해' 뒤주가 있다. <문화재청>
[비즈니스포스트] 유이주 선생이 직접 설계한 운조루에는 다른 가옥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건물과 공간이 있습니다.

옛날 부잣집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고, 아녀자들은 안채에서만 기거했습니다. 사랑채는 남자들과 남자 손님들을 위한 건물이었습니다.

양반 부잣댁 아녀자들은 바깥 활동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녀자들이 해야 할 바깥일은 노비들이 했고, 양반 여성들은 거의 집안에서 지냈습니다. 그것도 구중심처 깊숙한 안채에서 지냈으니 갇혀 사는 것처럼 답답했을 것입니다.

유이주 선생은 이런 아녀자들의 심정을 헤아려 운조루의 설계를 아주 특별하게 했습니다. 운조루에는 남자들의 사랑채와 함께 아녀자들의 사랑채도 따로 지었습니다.

동쪽에는 아녀자들의 사랑채를, 서쪽에는 남자들의 사랑채를 배치했습니다. 아녀자들의 사랑채가 있으니 아녀자들의 활동 공간이 그만큼 넓어졌습니다.

또 운조루의 안채에는 특별한 다락방이 있습니다. 2층 방의 창문을 열면 운조루 바깥 풍경이 환히 눈에 들어옵니다. 운조루 앞에 펼쳐진 드넓은 들판과 크고 작은 산들이 보입니다.

바깥출입이 어려운 아녀자들이 집안에서도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던 것입니다. 이 하나 만으로도 약자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하고 존중했던 유이주 선생의 고매한 인품을 익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닥에 구들을 놓고 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우리나라의 집들은 모두 연기가 나가는 굴뚝이 있습니다. 그리고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잘 빠지고 불도 잘 탑니다.

그런데 운조루에는 굴뚝이 없습니다. 구들이 끝나는 곳 건물 벽 맨 아래에 큰 구멍이 있고 여기로 연기가 배출됩니다. 연기는 바닥에서부터 흩어져 사라지니 좀 떨어진 곳에서는 연기가 안보입니다.

옛날에는 나무로 불을 때 밥을 지었습니다. 밥을 지을 때마다 굴뚝에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부자들은 끼니때마다 밥을 지어 먹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습니다. 식량이 떨어져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부잣집의 밥 짓는 연기를 바라보는 심정은 참 괴로웠을 것입니다.

유이주 선생은 그 참담한 심정을 헤아려 굴뚝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뒤주를 만들었습니다. 이 뒤주엔 타인능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그 뜻은 `타인이 열 수 있다`입니다.

운조루에선 이 타인능해 뒤주에 곡식을 가득 채우고 먹을 양식 없는 누구나 마음대로 가져가게 했습니다. 그 덕으로 운조루 인근에는 굶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또 양식이 떨어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욕심 내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 마을의 풍속도 매우 아름다워졌습니다.

운조루가 있는 오미리 마을의 청룡과 백호는 서로 가볍게 안아주는 형상입니다. 아주 다정한 모습으로 뻗어있습니다. 마을의 청룡 백호가 이런 모습이면, 마을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사이좋게 지냅니다.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런 터에다 유이주 선생처럼 지혜롭고 후덕한 인물이 함께 살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많을 덕을 베풀었으니 화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습니다.

유부자댁은 운조루를 세우고 여기서 살기 시작한 뒤로 가세가 점점 더 번창했습니다. 부와 명예가 증진되고 많은 행운이 따랐습니다. 재산이 늘어나는 만큼 더 큰 덕을 베푸니 갈수록 덕망이 높아지고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부자댁 사람들은 어려운 이들에게 곡식을 많이 나눠줘서 곳간이 비워가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고 합니다. 또, 이웃들을 적게 도와 곳간에 곡식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명당 복지의 빼어난 정기에다 많은 사람의 민심을 얻은 덕으로 운조루 유부자댁의 복덕은 경주 최부자댁처럼 자손 대대로 이어졌습니다. 자손들은 큰 환란을 겪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며 유복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운조루를 지켜왔습니다.

또 유부자댁의 덕행은 이웃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유부자댁이 솔선수범하여 선행을 베풀고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한 덕에 운조루 일대 마을들은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운조루의 명성을 듣고 운조루의 풍수 입지를 살펴보러 오는 풍수가도 많았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운조루터가 호남의 3대 명당 중 하나라 했고,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3대 명당에 든다고 평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이라고 극찬했습니다.

풍수가들의 이런 호평이 널리 알려지고 회자되었습니다. 유부자댁이 여러 대에 걸쳐 백여 년 동안 운조루에서 별 탈 없이 유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운조루터가 정말 특별한 명당이라고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옛날 어느 풍수가는 운조루 일대를 답사하고 여기에 빼어난 명당 세 곳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금환낙지형, 금귀몰니형, 오보교취형, 이 세 명당이 있는데, 셋 모두 아주 훌륭한 명당이지만, 그 중에 오보교취형의 명당이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오보교취형이란 금, 은, 진주, 산호, 호박 이 다섯 가지 보석이 모여 있는 형상의 명당입니다.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세 명당 중 한 곳은 운조루터일 것이고, 나머지 두 곳은 비워진 채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남은 명당을 찾아 거기에 살면서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려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1931년, 일제 총독부에 근무하던 무라야마 지준이란 사람이 저술한 `조선의 풍수`란 책이 간행되었습니다. 무라야마는 1929년에 전국 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풍수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는 명당을 찾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각지에서 운조루 일대로 이주한 집이 백여 호에 이르며 그 중엔 지체 높은 양반 부호들도 많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이 그 명당에서 살면 천운으로 쉽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양반 부호들이 더 큰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서 여기로 이주했지만, 꿈을 이룬 집안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거의 모두 가진 재산도 많이 잃고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실망하고 다른 데로 떠난 집안도 많습니다.

운조루터처럼 정말 좋은 복지가 있다면, 그 터와 인연 닿는 이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가문의 부귀영화만을 바라는 이들에겐 그런 인연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조선조 말기 우리나라는 세도정치와 탐관오리의 횡포, 대지주들의 탐욕으로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졌습니다. 또, 일제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외세에 의해 나라가 둘로 나뉘었고 한겨레가 원수처럼 싸웠습니다.

이런 암울한 역사의 격동기에도 운조루와 이웃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돕고 보호하며 역경을 이겨냈습니다.

해방 후에는 대지주의 땅을 국가에서 유상으로 수용하여 소작인들에게 유상으로 분배하는 토지개혁이 있었습니다. 이 때 유부자댁은 많은 땅을 마을 공동체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육이오 전쟁 때는 북한의 인민군 일부와 남한의 사회주의자들이 지리산에 들어왔습니다. 빨치산이라 불리운 그들과 토벌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지리산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크고 작은 전투가 1만 회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빨치산들은 부자들의 가옥을 많이 불태워 없앴습니다. 운조루도 그런 수난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인근 마을 출신 빨치산들이 유부자댁의 덕행을 알리고 적극 막아서 그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유씨 가문의 종부와 종손이 상주하며 운조루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운조루의 명성을 듣고 많은 분들이 방문하여 유부자댁의 미담에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갑니다.

재물을 잘 쓰면, 사람을 살리는 영약이 되고, 아름다운 향기가 사방으로 퍼집니다. 재물을 잘못 쓰면 사람을 해치는 독이 되며 악취가 납니다. 운조루의 특별한 미담이 섬진강 지리산과 더불어 오래 오래 기억되고, 그 아름다운 향기와 선한 영향력이 멀리 멀리 번져가길 기대해 봅니다.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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