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셜벤처 '에코인에너지'는 폐플라스틱 열 분해유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사진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인 에코인 에너지 대표.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지구에 남는다.
소각된 플라스틱은 기체가 돼 대기를 떠돌아다닌다. 죽은 고래 뱃속에 들어간 고체 플라스틱은 고래의 몸이 녹고 부서져 형체가 없어져도 거뜬히 남아 생태계를 순환한다.
플라스틱은 재활용에도 한계가 있다. 여러 번 재활용된 플라스틱의 강도와 물성은 떨어진다. 재활용된 폐플라스틱도 결국 소각장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한 소셜벤처가 지구환경 파괴의 주범, 폐플라스틱을 화학적 재활용 기술로 사업화하겠다고 나섰다. '에코인에너지’가 그 주인공이다.
2015년 창업한 이 업체는 폐플라스틱 열분해 기술을 바탕으로 고품질 '열분해유'를 생산해 지난해 연 매출 10억 원을 달성했다.
‘열분해유’는 플라스틱을 녹여 분해하는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생산한 유류로, 플라스틱을 만드는 원료인 납사(나프타, Naphtha)를 생산할 수 있다. 기존에는 원유에서 생산하던 것을 대체할 수 있다.
2020년에는 SK이노베이션 구성원(직원)에게서 5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아모레퍼시픽과는 투자 유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업체는 어떻게 폐플라스틱에서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왜 대기업들은 이 업체에 투자하기 시작했을까.
이인 에코인에너지 대표를 6일 서울 성수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날도 그는 모 대기업과 투자 논의를 하러 서울에 왔다고 했다. 에코인에너지는 대전 대덕구의 예비 사회적기업이자 소셜벤처다.
소셜벤처는 혁신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기업을 뜻한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대기업들이 이런 기업에 꽤 큰 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이유를 묻자 이 대표는 명료하게 답했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시장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폐플라스틱 열 분해유 시장은 유럽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플라스틱 용기 중 30%를 재생 플라스틱으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한국에서도 시장이 싹트고 있다. 2021년 산업부는 국내 정유 3사인 SK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통과시켰다.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서 얻은 열분해유를 통해서 플라스틱 제조 원료인 납사를 추출하고 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는 SK지오센트릭,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와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사들이 관련 공장을 설립하고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회사들은 에코인에너지의 미래 고객이 될 수 있다.
“저희의 미래 고객은 정유사와 석유화학사가 될 것입니다. 열 분해유의 사용이 늘어날 때 이를 가장 많이 쓸 고객으로 예측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대기업은 고객이자 동시에 경쟁사다. “이미 정유 및 석유화학계 대기업들은 울산, 당진 등에 자체적으로 열분해유 생산 시설을 짓기 시작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에코인에너지만의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이동설치가능 모듈형 열분해설비’라는 보유 기술이 만들어주는 틈새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저희가 노리는 것은 틈새시장입니다. 플라스틱은 어디든 쓰입니다. 때문에 분해 장비는 규모가 큰 곳에서도, 작은 곳에서도 필요합니다.”
에코인에너지의 폐플라스틱 열분해 유화장치는 이동이 가능하다. 1세트 당 최소 30평이면 설치할 수 있어 기존 창고시설 등 유휴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 플랜트설비 대비 동일처리용량 기준으로 30% 이상의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기존 공공폐기물처리시설 내 설치 시에도 유리하다.
이 대표는 “인구 10만 명 이하 소형 지자체 공공 폐기물처리시설에도 손쉽게 설치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자랑했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 대표는 “경쟁사 중에는 한 세트 설비를 100억원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곳도 있다”며 “에코인에너지는 동일 처리용량의 설비를 50억원 대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고객사에 직접 품질에 관한 피드백을 받으며 기술개발에 반영하고 있는데 고객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보통 열분해유는 2차에 거쳐 생산됩니다. 첫 번째 분해 과정에서 수분과 불순물이 많은 열분해유가 생산되기 때문에 2차 정제 과정을 거치는데요, 에코인에너지의 경우 1차에서 생산된 열분해유 자체의 품질이 좋습니다. 휘발유에 가까운 라이트(Light)한 유류로 생산하죠.”
여기까지 순탄하지 않았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기름이 과연 상용화가 가능한지에 관한 의심이었다.
이 대표는 이를 묵묵히 견뎠다. ‘저급’이라는 선입견을 뚫기 위해 묵묵히 정부 지원 사업에 임하면서 연구개발(R&D)에 힘썼다. 그동안 낸 특허만 해도 10여 개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환경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기후변화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변화가 일어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 전역으로 확산된 2019년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02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ESG, 탄소중립, 기후변화 대응 등이 키워드로 떠올랐죠. 엄청난 인식의 변화, 그에 따른 시장의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이 대표의 꿈은 “김밥을 마는 분들도, 배달을 하는 분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탄소중립을 다함께 공유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소셜벤처기업으로서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것뿐만 아니라 임팩트적인 면에 있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탄소중립, 일반인들에게는 먼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후가 이상해졌어’라고 하면 누구나 공감을 합니다. 저희는 비즈니스적으로 이를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박소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