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는 올해 들어 3분기 만에 이미 지난해 연간 거둬들인 영업이익 합계인 7조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합계 5조 원의 영업손실을 본 뒤 지난해 반등에 성공했고 올해는 이익규모를 2배 이상 늘린 것이다.
정유4사는 올해 에너지 대란과 수요 회복에 따라 국제유가 및 정제마진이 대폭 상승하며 역대급 실적을 거두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1~11월 평균 국제유가는 배럴당 약 97달러로 지난해 평균 배럴당 69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인 상반기에는 최대 배럴당 120달러를 기록하는 등 평균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하반기 들어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와 공급부족 완화로 유가가 다소 하향 안정화했다.
정제마진도 2분기 평균 배럴당 20.8달러까지 치솟았다. 하반기 수요둔화 우려와 경기 불확실성에 하락세를 보였지만 올해 1~11월 평균 배럴당 10.9달러로 지난해 평균 3.4달러와 정유사 손익분기점인 4~5달러를 크게 넘어섰다.
올해 정유4사는 역대급 실적을 기반으로 각자 추진해오던 ‘탈정유’로의 사업구조 재편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정유4사는 2020년 대규모 적자에서 볼 수 있듯 유가에 큰 영향을 받는 사업구조의 안정성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 대표적 탄소배출 산업인 정유업에서 친환경사업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0월 분사한 배터리 자회사 SK온을 통해 배터리사업 확장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SK온은 올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탑재량 기준으로 글로벌 5위 업체로 도약했다. 이에 더해 배터리 생산능력을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인 2025년 220GWh, 2030년 500GWh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수십조 원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 7월에는 포드와 공동으로 설립한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 ‘블루오벌SK(BlueOvalSK)’를 공식 출범하고 공장 3곳, 129GWh(기가와트시)에 이르는 생산기지를 확보하기로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타고 가파르게 성장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 선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쓰오일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도 궁극적으로 친환경에너지원으로 전환을 위해 생산, 운송, 활용 등 수소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올해는 이에 앞서 석유화학부문을 앞세운 중단기 비정유사업 확대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에쓰오일은 올해 9조 원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하는 ‘샤힌 프로젝트’ 투자를 결정했다.
에쓰오일이 2018년 마무리한 5조 원 규모의 1단계 석유화학 프로젝트의 후속인 샤힌 프로젝트는 울산에 연간 320만 톤가량의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 완료 뒤 생산물량 기준 석유화학 비중을 현재 12%의 2배 이상인 25% 수준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2018년부터 공들여온 대규모 석유화학설비의 본격 가동에 최근 돌입했다.
GS칼텍스는 2조7천억 원을 들인 여수 올레핀 생산시설(MFC)에서 연간 에틸렌 75만 톤, 폴리에틸렌 50만 톤, 프로필렌 41만 톤 등을 생산한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 세운 합작사 현대케미칼에서 3조 원 이상을 투자한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HPC)를 통해 연간 에틸렌 85만 톤, 프로필렌 50만 톤 등을 생산한다.
특히 정유사는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를 원유 정제 과정에서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기존 석유화학사들보다 우수한 원가경쟁력을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는 각각의 대규모 석유화학설비에 나프타뿐 아니라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다른 부산물인 부생가스, 액화석유가스(LPG), 석유정제가스, 탈황중질유 등을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모두 정유 부문과 비정유 부문의 균형 있는 사업 구조를 갖추는 데 힘쓰고 있다”며 “이는 유가에 좌지우지되는 이익창출 변동성을 줄여 안정적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