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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횡령 사고로 고개 숙인 은행장들, 엄벌 없는 약속은 공허하다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22-10-12 16: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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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횡령 사고로 고개 숙인 은행장들, 엄벌 없는 약속은 공허하다
▲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시중은행장들이 일반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줄 왼쪽부터) 진옥동 신한은행장,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임동순 NH농협은행 수석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5대 시중은행장이 모두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돼 큰 관심을 받은 11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장.

주요 현안으로 꼽혔던 것은 횡령 사고였다. 각 은행들의 내부통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당연했다. 

“횡령 사고는 100번 사과를 드려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원덕 우리은행장)

“은행의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아 심려하고 계신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 (진옥동 신한은행장)

“횡령 사고 등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임동순 농협은행 수석부행장)

이처럼 국감장에 증인으로 선 시중은행장들은 내부통제 미흡으로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사과 이후에는 재발방지를 위해 힘쓰겠다는 약속을 이어갔는데 모두들 '조직문화 개선'과 'CEO(최고경영진)의 노력'을 언급했다.

“사실 금융인으로 가장 중요한 게 직업윤리다. 내부교육과 CEO 의식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끼고 있다. 직원들의 윤리의식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 (진옥동 신한은행장)

“무엇보다 중요한 건 CEO인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부통제 체계가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조직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겠다.” (박성호 하나은행장)

“다른 은행장께서 말씀하셨듯 조직문화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윤리의식, 고발의식, 경각심 등 조직문화를 바꿔나가도록 노력하겠다.” (이원덕 우리은행장)

이처럼 시중은행장들은 횡령 사고를 막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으로 윤리의식 강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는 데는 은행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으로 보인다. 

조직문화 개선이나 CEO 노력은 이미 각 은행들이 과거부터 하겠다고 약속했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러번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내부통제 미흡에 따른 금융사 직원의 횡령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들이 금융당국 국감을 앞두고 내는 자료에는 매년 횡령 등 내부통제 미흡에 따른 사건 사고가 빠지지 않는다. 당장 기사만 찾아봐도 2002년부터 금융권 횡령 관련 국감 기사가 검색된다.

그때마다 은행권과 금융당국은 조직문화 개선과 내부통제제도 강화를 이야기했지만 통계숫자가 주는 개선과 강화의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국회 정무위 양정숙 의원(무소속)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융기관 횡령 사고 규모는 2018년 112억 원에서 2019년 131억 원, 2020년 177억 원, 2021년 261억 원, 2022년(8월 기준) 876억 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미흡한 부분을 찾고 여기에 변화를 추진해야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텐데 은행장들은 이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 등에서는 내부통제 강화와 관련해 금융권의 미흡한 부분으로 엄벌주의, 즉 강한 처벌 등을 꼽는다.

시장에서는 횡령 사고와 관련해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적은 금액에 손을 대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한번 확인하면 점점 큰 돈에 손을 댄다는 것인데 실제 규모가 큰 횡령 사고는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뤄진다는 특성을 지닌다.

횡령 규모가 크지 않고 변제를 하면 적당한 선에서 덮는 온정주의, 평판 리스크 등을 고려해 쉬쉬하며 넘어가는 관행 등도 소 도둑 육성에 일조하는 요인으로 꼽히는데 엄벌주의를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날 국감에서도 강력한 처벌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다. 

진옥동 행장은 “지난 5년 동안 십 몇 만 원을 횡령한 직원에게 6개월 정직 처분을 한 것을 빼고는 다른 횡령 직원들은 모두 징계면직을 시켰다. 일벌백계의 자세로 분위기를 잡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처벌 강화를 통한 예방 효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측에서는 은행의 처벌이 자체 징계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은행권에서 적발된 횡령과 자금유용 사고 92건 가운데 31건이 수사기관 고발 없이 면직 등 자체 징계로 마무리됐다.

국감장에서 일벌백계를 강조한 신한은행조차 최근 5년 동안 적발된 횡령 사고 14건 가운데 수사기관에 고발한 건수는 2건에 그쳤다.

자체 징계를 받는 것과 수사기관에 고발돼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징계의 무게가 다르다.

단순히 회사의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전과기록까지 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면 직원들의 경각심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최고경영진이 단기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경영구조도 은행에서 횡령 사고가 근절되지 않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빼놓지 않고 꼽힌다. 

최고경영진이 수익성 등 단기성과에 집중하는 만큼 비용으로 인식되는 내부통제 강화에는 소홀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은행권 내부통제 강화와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제도들은 횡령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국감에서 “각 은행들이 내부통제에 쓰는 비용을 객관적으로 산출해서 공개하는 방안을 논의 중에 있다”며 “경영 상층부 성과지표(KPI)에 내부통제 관련 지표를 반영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각 은행들이 내부통제시스템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쓰는지 객관적으로 집계해 공개하고 이를 최고경영진의 실적으로 인정한다면 시중은행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부통제 비용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6일 정무위의 금융위원회 국감에서 금융당국이 2014년과 2018년 각각 만든 ‘금융기관 내부통제 강화 방안’과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 보고서’ 자료를 들고 나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금융당국이 금융권 내부통제제도개선TF(태스크포스)를 다시 만들었는데 2014년 2018년과 문제의식, 계획이 동일하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최근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밖에 없다. 금융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금융당국은 사고가 날 때마다 TF를 만들고 있다.”

김 의원은 “무슨 올림픽도 아니고 금융당국은 4년 마다 동일한 업무를 하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같은 방안만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올림픽이라면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이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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