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중국 방문
박병석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2월3일부터 2박3일 동안 중국을 방문해 개막식에 참석하고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만났다. 박병석의 방중은 리 위원장이 2020년 12월 국회의장 회담에서 공식 방중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박병석은 2월3일 올림픽 개막식을 참관한 뒤 5일 리 위원장과 회담을 했다. 박병석은 이 회담에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 콘텐츠 개방 정도가 불균형하다고 지적했다.
박병석은 “문화 콘텐츠 개방 불균형이 심해 두 나라 국민 사이 우호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며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전면 개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병석은 중국이 개막식에서 한복을 소수민족의 의상으로 소개하는 등 ‘문화침탈’을 하는 것과 관련해 리 위원장에게 한국 안에서 나오고 있는 우려와 논란을 전달했다.
박병석은 리 위원장 회담한 뒤 언론사 베이징 특파원들과 만나 “리 위원장에게 한국에서 나오고 있는 논란 및 우려와 관련된 입장을 전달했다”며 “한복이 한국의 대표 문화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리 위원장은 “한국의 입장을 담당 부서에 전달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 ▲ 박병석 국회의장이 2022년 1월6일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개헌 제안 전면으로
박병석은 취임 이후 줄곧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박병석은 2022년 3월9일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개헌에 나서야 한다고 대선후보들을 설득하고 있다.
박병석은 2022년 1월6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은 결국 개헌”이라며 “대선 직후에는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하며 대선후보들은 개헌과 관련된 태도를 밝혀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석은 1월27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개회식에서 “국회에서 밀도 있게 논의하면 기후변화와 지방분권 등을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투표에 붙일 수 있을 것”이라며 “권력구조와 선거개편 등은 좀 더 논의를 심도 깊게 진행해 2024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고 구체적 일정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병석은 2020년 7월17일 열린 제72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2021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라며 국회에 헌법 개정을 촉구했다.
박병석은 “헌법이 개정된 지 33년이 지났는데 한 세대가 지난 헌법으로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며 “대전환의 파도 앞에서 우리 국민을 지켜내고 미래를 열기 위해서 개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병석은 개헌 시기와 관련해서는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내년(2021년)까지가 개헌의 적기인 만큼 코로나19 위기를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며 “권력구조 문제는 이미 충분히 논의했고 이제 결단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박병석의 제안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헌 제안은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왜 바꾸자는 것인지 구체적 내용이 없다”며 “대선이 1년쯤 남은 시점이 개헌의 적기라고 판단하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준비해서 내년 4월까지 개헌을 완성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박병석은 2021년 2월1일에도 다시 한 번 개헌 이야기를 꺼냈다.
박병석은 이날 열린 2월 임시국회 개회사에서 “국민의 뜻이 균형 있게 반영될 수 있도록 권력분산을 이뤄내야 하는데 국민통합의 제도적 완성은 개헌”이라며 “내년 3월에 대선이 있는 만큼 올해 안으로 개헌과 관련된 국회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6월21일에는 “각 당은 개헌의 절박성을 인식해 공론화에 나서달라”고 촉구했고 7월17일 제헌절 경축사에서는 “2022년에 대선이 있다고 해서 개헌을 미룰 수는 없다”고 말했다.
2021년 11월17일 국회의장 직속기구인 국회국민통합위원회 오찬 간담회에서는 “대선 기간에 논의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새 정부 출범 이후 논의를 하면 되지 않냐고 각 당을 설득하고 있다”며 “이번에 개헌의 틀을 갖추지 못하면 또 5년을 허송세월하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해 12월7일 개헌국민연대와 가진 간담회에서는 “개헌 문제는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당리당략을 배제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2022년 대선 직후에는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중재법 관련 갈등 관리
박병석은 여야 사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언론중재법 협상을 두고 ‘협의 우선’ 원칙을 내세워 여당의 반발을 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21년 8월25일 새벽 3시53분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이후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자 박병석은 8월31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주재했다. 이 회동에서 여당과 야당은 여야 의원과 전문가 등이 참여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8인 협의체를 구성하고 9월27일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하기로 뜻을 모았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의 본회의 강행 처리를 포기한 것을 두고 여야 협의를 원하는 박병석 의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인데 박 의장이 어깃장을 놓았다”는 불만도 나왔다.
민주당 미디어특위 김승원 부위원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병석 정말 감사합니다. 역사에 남을 겁니다. GSGG.” 라고 적었다가 국회의장에게 욕설(개XX)을 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김 부위원장은 “Government Serve General G(정치권력은 공공선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8인 협의체가 출범한 뒤 9월26일 마지막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박병석은 9월27일 여야 원내대표와 만나 최종 담판을 시도했지만 역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9월28일과 29일에도 두 당 원내대표의 담판이 이어졌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박병석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문제가 21대 국회 전반기 안에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박병석은 2022년 1월6일 화상회의로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민주주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큰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며 “앞으로 5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 언론자유라는 헌법 정신을 지키면서도 언론을 통해 받는 피해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치를 포함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 박병석 국회의장(왼쪽 세번째)이 2021년 8월31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 두 번째) 등과 회담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윤호중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 논의
박병석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 사이 논쟁의 한가운데 섰다.
박병석은 2020년 7월1일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추천을 요청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박병석의 요청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회의장과 집권여당은 난폭하게 개문발차 해놓고 태연자약하다”며 “민주주의를 설배운 사람들이 의회독재에 빠져들었다”고 비판했다.
박병석은 8월21일 “정기국회 개회(2020년 9월1일) 전까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을 추천해달라”고 미래통합당에 공문을 보냈다.
미래통합당은 국민의힘으로 이름을 바꾼 뒤 2020년 9월9일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가 마무리되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을 추천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후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추천을 마무리하면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2020년 10월30일 첫 회의를 열고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박병석은 추천위원회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배제하고 법의 정신과 국민의 여망에 부응할 수 있는 분을 추천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10인의 후보를 추천한 뒤 그 가운데 2명을 최종 후보로 정하기로 했지만 3차례의 회의에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2020년 11월18일 활동을 종료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들은 후보추천위 활동 종료 다음 날인 11월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 출범을 막는 반개혁 세력에 단호히 대응하며 연내 공수처 출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야당의 공수처장 임명 비토권(거부권)을 제한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 움직임을 두고 “법치주의 파괴, 수사기관 파괴, 공수처 독재로 가는 길을 국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공수처장 추천요건을 추천위원 7명 가운데 6명 이상 동의에서 5명 이상 동의로 완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더라도 나머지 5명의 찬성으로 공수처장 후보를 최종 추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박병석은 2020년 11월23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회의를 다시 소집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후보추천위원회 회의가 다시 열렸지만 역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종료됐고 더불어민주당은 12월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12월10일 본회의를 열어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공수처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후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12월18일과 28일 회의를 열어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2월23일 김 연구관을 공수처장으로 최종 지명했다. 김 연구관은 2021년 1월21일 초대 공수처장 임명장을 수여받고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의회외교 성과
박병석은 국회의장으로 일하면서 러시아와 체코, 베트남, 스페인,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아제르바이젠 등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외교무대에서 성과를 냈다.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박병석이 2021년 한 해 동안 여러 나라를 순방하면서 이동한 거리는 14만km에 이른다.
일례로 2021년 5월 러시아와 체코를 방문해 남북문제, 원전수주 문제 등에서 성과를 냈다.
박병석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발린티나 마트비옌코 상원 의장, 바체슬라프 볼로딘 하원 의장 등을 만나 남북 국회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체코에 가서는 5월27일 밀로시 제만 대통령, 5월28일 안드레이 바비시 국무총리 등을 만나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수출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박병석은 체코가 추진하는 두코바니 원전 사업과 관련해 제만 대통령에게 “한국은 원전의 시공, 운영, 원가, 공기 등 모든 면에서 어느 나라와도 경쟁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바비시 총리에게는 “한국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원전 24기를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최적의 파트너”라며 “두 나라의 경제협력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석은 한국 국회의장 최초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2021년 10월10일 카이로 대통령궁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을 만났다.
박병석은 △카이로 메트로 전동차 추가발주 사업 △엘다바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 △수에즈 운하 인근 조선소 건설 사업 등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한국의 K-9 자주포 패키지 수출에 관해 협의했다.
박병석은 엘시시 대통령에게 "한국은 24기의 원자로를 훌륭하게 운영한 경험이 있고 조선기술 역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며 "K-9 자주포 수출은 단순히 무기 수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현지 기술자 양성 등 장기적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석은 2021년 1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에 참석했다. 당시 한국은 '요소수 공급 대란'을 앓고 있었는데 박병석은 오만, 바레인 등 요소수 생산 국가의 의회 의장들을 만나 한국에 요소수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박병석은 2020년 10월31일부터 11월5일까지 베트남을 방문해 응우옌 푸 쫑 당서기장 겸 국가주석, 응우옌 쑤언 푹 총리, 응우옌 티 낌 국회의장, 쩐 반 뚜이 한국·베트남 의원 친선협회장 등을 만났다.
11월2일에는 삼성전자 박닌 공장을 찾아가 “삼성전자는 한국과 베트남 경협의 상징적 기업”이라며 “생산뿐 아니라 복지사업, 사회공헌사업 등을 통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박병석은 총리와 당서기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과 베트남 사이 정기항공편 재개를 요청했다. 또한 한국과 베트남 사이 특별입국절차 제도화와 간소화 등의 조치도 요청했다.
낌 의장은 한국 정부가 베트남의 수해와 관련해 베트남의 수교국 가운데 가장 먼저 30만 달러의 지원금을 보낸 것을 두고 “베트남 국가주석과 당, 베트남 국민을 대표해 한국의 선물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박병석은 베트남 방문 중 국부로 존경받는 호찌민의 묘소를 참배했다.
| ▲ 박병석 국회의장(오른쪽)이 2021년 5월13일 국회를 방문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21대 국회 원구성 중재
박병석은 국회의장에 취임한 뒤 여야 원구성 협상을 중재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놓고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어 상임위 정수 개편부터 먼저 논의하게 했다.
당초 민주당은 원구성 법정 시한을 맞추기 위해 표결을 통한 상임위원장 선출 방안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박병석은 상임위원 정수 문제부터 정하자는
주호영 원내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타협의 실마리를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원구성 협상이 끝내 결렬되자 박병석은 2020년 6월15일 법사위, 기재위, 산자위, 외통위, 국방위, 복지위 등 6개 상임위에 통합당 측 위원을 강제 배정하고 상임위원장 선출을 진행했다. 나머지 12개 상임위원장 선출은 6월19일 본회의에서 선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6개 상임위 강제 배정에 반발해 사의를 표하고 미래통합당이 국회 일정 참여를 거부하는 등 야당의 반발이 거세자 박병석은 여야 사이 합의를 촉구하며 본회의를 연기했다.
이후 주 원내대표가 국회에 복귀하고 박병석이 6월26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 원내대표를 만났지만 3시간 만에 다시 협상이 결렬됐다. 6월29일 오전에 마지막으로 시도된 합의 도출도 무산됐다.
불어민주당은 국회부의장 협의가 반드시 필요한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선출했다. 여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국회의장 취임
박병석은 2020년 6월5일 제21대 국회 첫 본회의에서 193표 가운데 191표를 얻어 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박병석은 국회의장에 선출된 뒤 “아쉬움 속에 출발한 21대 국회이지만 우리 국회를 마칠 때 국민의 국회,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박병석은 2020년 5월 21대 전반기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민주당 안에서 5선인 김진표 의원과 경합했는데 선수가 낮은 김 의원이 후보 등록을 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회의장에 추대됐다.
박병석은 당내 경합 과정에서 초선 의원들에게 손편지를 보내고 의원들에게 케이크를 보내는 등 ‘아날로그 감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박병석은 6선 의원으로 21대 국회에서 여야를 통틀어 최다선이며 3번의 도전 끝에 국회의장에 올랐다.
앞서 제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경선 때는 정세균·문희상 후보에게 밀렸고 후반기 의장 경선 때는 문희상 전 의장에게 고배를 마셨다.
박병석은 비서실장에 복기왕 전 의원, 정무수석에 최종길 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정책수석에 이용수 전 보좌관, 공보수석에 한민수 전 국회 대변인을 임명했다.
△의정활동 이력
박병석은 세종시를 지역구로 둔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함께 민주당 국회 세종의사당 추진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는 데 공을 들였다.
박병석은 운영위에 계류 중인 관련 국회법 통과를 위한 공조를 강화하고 세종의사당 설계용역비 증액 반영, 세종의사당 부지 현장방문 등을 추진했다.
제21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에 선출되며 특위 공동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후임으로 대전 유성을을 지역구로 둔 이상민 의원이 이해찬 대표와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박병석은 2008년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가축법에 관한 여야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공전하던 국회를 정상화하는 데 기여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국제금융위기 때는 당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1천억 달러 정부 지급보증 동의안’을 처리하는 등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 밖에도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의제매입세액공제 확대, 택시 감차 근거 마련, 경로당 난방비 지급 등을 추진했다.
박병석은 재선 의원이던 2006년 제17대 국회 후반기에 정무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이때 국방위 김성곤 의원, 행자위 유인태 의원, 문광위 조배숙 의원, 복지위 김태홍 의원, 건교위 이호웅 의원, 예결특위 이강래 의원 등 재선 의원들이 대거 상임위원장에 임명됐다.
박병석은 정무위원장 시절 서민금융 활성화와 경기 회복을 위한 법적·제도적 보완에 힘을 기울였다. 출자총액 제한제도 폐지와 생명보험사 상장, 각종 보훈 관련인에 대한 예우 개선 등이 당시 현안이었다.
박병석은 2003년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신행정수도건설위원장을 맡았다.
신행정수도의 충청권 건설을 위한 법안을 공동 발의하고 그 추진을 위해 정부 관계자들과 수시로 만나는 등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일대일 토론을 제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감의 뜻을 밝혔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 사실상 ‘천도’라며 문제제기를 했고 박병석은 신행정수도 건설은 대선 공약으로 검증받았고 2003년 12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관련 특별법이 통과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에 반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문재인정부는 2018년 3월21일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개헌안을 발표했다. 이 개헌안이 통과됐다면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추진할 수 있었으나 개헌은 무산됐다.
| ▲ 박병석 국회의장이 2021년 1월6일 국회에서 열린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회 안 중국 전문가
박병석은 국회 안에서 몇 안 되는 ‘중국 전문가’로 꼽힌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중국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한국 정부대표 단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박병석은 이 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 의견을 교환했다.
2019년 7월 국회 한중의회외교포럼 대표로서 천추파 중국 랴오닝(요녕)성 당서기를 만나 한국과 랴오닝성 사이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박병석은 1982년부터 1983년까지 대만 정치대학에서 공부할 때 외국인 중국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한 적이 있다.
홍콩특파원 시절에는 총영사관 행사 때 통역을 하기도 했고 신화사(중국 뉴스통신사) 홍콩지사와 런민(人民)일보 인사들과 교분을 나눴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던 1999년 12월에는 잭슨 조 미국의소리(VOA) 중국지국 수석특파원과 45분 동안 중국어로 인터뷰했다. 서울의 특징과 시정 과제, 중국·대만과의 교류협력 증진 방안 등을 중국어로 말했다.
잭슨 조 특파원은 "기자생활 40년 동안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과 중국어로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라며 "녹화에서 단 한 번의 NG를 내지 않는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19대 국회부의장 취임
박병석은 19대 전반기 국회 의장단 선출을 위한 투표에서 재석 의원 277명 가운데 271명의 찬성을 받아 국회부의장에 올랐다.
박병석은 당선 연설을 통해 “국민은 신뢰할 수 있는 국회를 요구하고 있고 여기 있는 의원들도 보람과 자긍심 넘치는 국회를 희망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려면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온 나쁜 행태를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박병석은 2000년 제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뒤 당 대변인에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이 박병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대변인 활동과 관련해 언론으로부터 ‘말의 품격을 높인 여당 대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박병석은 고건 서울시장 때 40대 나이로 차관급인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다.
정무부시장 재임 당시 차관급 공직자로는 최초로 판공비를 공개하는 등 공직사회 개혁에 앞장섰다.
총선 출마를 위해 부시장직을 사퇴하려고 했을 때 고건 시장이 적극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석은 2003년 서울시 부시장 재임 시절의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황조근정훈장은 공무원으로서 직무와 관련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으로 청조근정훈장에 이어 2등급으로 분류된다.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으로 정계 입문
박병석은 1998년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외환위기 때 '국민의 정부'와 여당의 일원으로 경제정책 조정에 관여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거쳐 2000년 16대 총선 때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대전시 서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중앙일보 홍콩특파원 시절 천안문 사태 관련 특종 보도
박병석은 중앙일보 홍콩특파원 시절인 1989년 ‘중국 자오쯔양 총리 체포 구금’이라는 특종을 냈다.
당시 천안문 사태로 중국에서 수백 명이 사망하고 외신기자들도 모두 떠나는 상황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들어갔고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켰다.
박병석은 이 기사로 한국기자협회로부터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