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입에서 또다시 ‘위기’라는 말이 나왔다. 새해 인사모임에 이어 최근 최고경영자 전략회의에서도 구 회장은 ‘위기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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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2일 서울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새해인사모임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신년사를 전하고 있다. |
해외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LG그룹은 지난해 글로벌 경제침체 여파로 주력 계열사들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 특히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스마트폰 시장에서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LG전자의 실적악화가 뼈아팠다. 세계시장에서도 삼성전자의 벽은 높았고 후속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LG는 ‘만년 2위’라는 유감스러운 지위마저 위태롭게 됐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은 경영진들에게 신년사에 이어 최고경영영자 전략회의에서 잇따라 해외사업 전략 재검토를 주문하면서 위기론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5~16일 양일간 진행된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직접 경험하고 절실하게 느꼈겠지만 우리가 처한 경영 환경은 위기 상황"이라며 "우리가 가진 자원이 다소 부족한 경우라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구 회장의 ‘위기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일 경영진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새해 인사모임에서도 구 회장은 "지금이 위기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위기 극복에 대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말해 LG그룹이 처한 상황을 위기라 진단한 바 있다.
구 회장의 ‘위기론’은 으레 하는 '엄살'이 아니다. 글로벌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전체 매출의 70% 정도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LG그룹은 지난해 해외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엔저 현상이 국내 기업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고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재정구조가 취약한 신흥시장의 금융 리스크가 높아질 전망이어서 그룹의 미래도 밝지 않은 상황이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도 향후 글로벌시장 전망에 대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시장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신흥국을 포함한 그 외 시장은 올해도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룹 매출과 자산의 60%를 차지하는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전자부문이 지난해 해외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그룹전체 실적악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룹이 성장동력으로 육성중인 스마트폰사업 담당인 MC사업본부는 지난해 3분기 79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문제는 지난해 8월 LG가 야심차게 내놓은 스마트폰 ‘G2’에 쏟아 부은 마케팅 비용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G2의 마케팅 비용은 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IT 시장조사업체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시장에서의 G2 판매량은 225만대로, 목표치인 300만대에 못 미친 수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전망보고서에서 올 1분기 LG의 시장점유율이 5.9%로 삼성전자(36.2%), 애플(17%)에 이어 3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기업으로는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한 LG전자이지만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지난해(삼성전자 33.1%, LG전자 4.8%)보다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화웨이, 레노버 등 중국 신진 업체들이 LG전자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어 입지 굳히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주력사업인 TV사업을 담당하는 HE사업본부 역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와 초고선명도(UHD) TV 등으로 시장을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5%를 넘나들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분기 0.5%, 2분기 1.9%로 바닥을 헤매다 3분기 2.5%로 회복 기미를 보였지만 4분기 다시 하락했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1월 부진한 실적 탓에 권희원 HE사업본부장사장이 경질되기도 했다.
LG는 세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밀려 ‘만년 2등’에 머물고 있고 스마트폰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업체들이 치고 올라오는 형국이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구 회장이 그룹의 위기상황을 재차 강조하면서 LG그룹 최고경영진 40여명이 참석한 ‘글로벌 CEO 전략회의’의 올해 화두로 ‘시장선도를 위한 해외사업 전략’을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구 회장의 주문에 따라 최고경영진들은 이틀간의 전략회의에서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 기술 혁신과 변화, 국제 정세 변화 등 세 가지 주요 변수에 대응할 전략과 방법 등에 대해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