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오너일가가 함께 기업을 경영하는 독일 제약사 ‘머크’식 경영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일까?
머크는 오너일가가 회사의 장기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세부적 사안은 전문경영인이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한미약품도 장기적으로 이런 경영체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의 2세 경영인들이 점차 일선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경영권 승계작업도 조만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임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를 2012년부터 이끌고 있고 장녀 임주현 부사장은 한미약품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차남인 임종훈 부사장은 한미헬스케어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20일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임종윤 사장이 3.65%, 임주현 부사장이 3.55%, 임종훈 부사장이 3.14%를 보유하고 있다.
임성기 회장의 지분은 34.27%다.
임 회장은 아직까지 한미약품의 주요 결정을 직접 내릴 만큼 건강상 큰 문제가 없지만 1940년 출생으로 81세의 고령인 만큼 경영권 승계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2010년 한미약품이 지주사로 전환한 것도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임 회장은 2010년 한미약품의 지주사 전환 당시 7명의 손자, 손녀에게 한미사이언스 지분 1.08~1.05%를 증여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결정을 두고 임 회장이 오너일가가 함께 기업을 경영하는 ‘머크’식 경영모델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머크는 350년 동안 13대째 이어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회사다. 머크는 상장기업이면서도 오너일가가 공동으로 경영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의 지배구조를 갖췄다.
머크의 지분 70%는 모기업 ‘이머크’가 보유하고 있고 이머크는 머크 일가 130명이 지분 100%를 공동으로 소유한다. 머크의 사업상 중요한 의사결정은 10명의 가족이 ‘가족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내린다.
가족이라고 해서 회사 경영에 마음대로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고위임원이 된 뒤 그 경력을 인정받고 준비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재 한미사이언스는 임 회장과 친인척 19명이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런 지분구조는 머크와 매우 비슷한 형태다. 임 회장은 2013년 방한한 케네스 프레이저 머크 회장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임 회장은 머크의 경영체제가 세대가 변해도 기업의 핵심가치를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크가 최장수 제약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너가가 기업의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면서도 전문경영인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상황에 맞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크는 국내 기업에서 자주 발생하는 총수일가의 지분 싸움도 한 번도 없었다.
세계적으로 200년 이상 장수한 기업은 일본은 3886개, 독일 1850개, 영국 467개, 프랑스 376개, 미국 157개에 이른다. 반면 국내 1천 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28.9세에 그친다.
한미약품은 이미 머크와 같이 전문경영인체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업회사인 한미약품은 현재
권세창 , 우종수 한미약품 공동대표이사 사장이 이끌고 있다. 권 사장은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을, 우 사장은 한미약품의 경영관리를 책임진다.
또 한미약품의 글로벌 전략은 임 회장의 왼팔로 불리는
이관순 부회장이 맡고 있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머크가 장수 제약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긴 호흡의 투자가 혁신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라며 “한미약품이 국내에서 독보적 신약 개발역량을 갖추게 된 것도 임 회장의 장기적 안목과 전문경영인의 실행력이 시너지를 낸 결과”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