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산업은행 총재와 회장 가운데 3년의 임기를 제대로 마친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대부분이 검찰수사 등으로 불명예퇴진했고 평균 재임기간도 절반(18개월)에 그쳤다.
이 점을 고려했을 때 이 회장은 이미 평균 재임기간을 넘긴 셈이다.
당장 이 회장 이전에 이름이 같았던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도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전 회장은 산업은행 회장으로 임명된 지 1년7개월 만에 임기 1년5개월을 남겨두고 물러나면서 역대 산업은행 수장들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됐다.
그는 대표적 친박인사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교체설이 나돌았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지원, 금호타이어 매각 등 굵직한 사안이 남아있었던 만큼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결국 내려왔다.
이에 앞서 노무현 정부가 2003년 출범하자 당시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는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사퇴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김창록 전 회장,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강만수 전 회장이 물러났다.
이런 흑역사는 낙하산 논란과 무관치 않다. 전임 홍기택 회장도 취임할 때 산업은행 노조로부터 낙하산인사라는 공격을 받았다. 홍 전 회장은 “나는 낙하산이 맞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금융위원회에서 관할하는 금융공공기관이다. 정부가 인사권 등을 쥐고 있는 데다 이익적립금으로 손실을 보전할 수 없을 때 정부의 자금지원도 받게 되는 만큼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슷한 이유로 산업은행 수장의 마지막 뒷모습도 대부분 좋지 않았다.
강만수 전 회장은 구속돼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았다. 대통령 경제특보와 산업은행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홍기택 전 회장은 서별관회의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발언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B) 부총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 뒤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 실패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다.
산업은행 수장이 총재로 불리던 시절도 마찬가지다.
이근영 전 총재는 현대상선 불법대출 논란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징역형(집행유예)을 받았다. 이 전 총재의 뒤를 이은 엄낙용 전 총재는 대우자동차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다가 대북 송금사건을 둘러싼 평가를 놓고 정부와 대립하면서 취임 8개월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정건용 전 총재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았고 2006년 결국 집행유예를 받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은 이변이 없는 한 3년 임기는 무난히 채울 것으로 보인다”며 “이 회장이 취임 때는 전임 수장들처럼 낙하산 논란 등을 안고 시작했지만 이전 수장들과 달리 정부 입김에 휘둘리기보다는 스스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면서 이런 인식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회장에게도 취임 초기에 낙하산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리며 대선 때 대선캠프 비상경제대책단에 참여해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